취옹, 풍경을 마시다
왕희지 외 지음, 서은숙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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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취옹醉翁의 뜻은 본래 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산수 자연에 있었다.
산수 자연의 정취를 마음으로 느끼고 술에 기탁한 것이다.”--구양수<취옹정기>중에서.


 

경치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정자를 짓고 친구를 불러 모아 절경을 같이 감상하던 구양수는 자신의 호 취옹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한다.(내가) 취하긴 취했으되 그건 술때문이 아니다,바로 이 눈앞에 보이는 경치 때문이다 라고.. 그 절경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저런 소리를 했을까 싶지만,그보다는 이 얼마나 멋진 풍류가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었다.그렇게 경치에 취할 줄 알고 또 그 즐거움을 글로 남길 줄 알았던 중국 문인들의 역대 기행산문중 대표적 작품 34개를 추려 만든 산문집이다.귀에 어느정도 익숙한 필자들을 나열해 보자면 왕희지,이백,역도원,유종원,구양수,왕안석,소식,주희,공자진,방포,운경,임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모두 개성 강하고 인생 역정 파란만장한 필자들이다 보니 자연히 같은 소재라 해도 전혀 다른 감성들과 해석들을 들려 주고 있었다.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 책의 묘미중 하나기도 했다.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동생은 그 시절 가장 잘 했던 일로 무리다 싶을 만큼 여행을 많이 갔던 걸 꼽는다.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동생이 찍은 사진뿐인데 어설픈 사진속이라도 중국의 절경들이 어찌나 스케일이 크고 신비롭던지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우리나라에선 절대 볼 수 없는 풍광들을 자랑하던 중국의 자연들,중국 기행 산문의 연원이 위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걸 보면 그 경치에 넋이 나가는 것은 비단 현대 사람들만은 아닌 모양이다.어디 반하기만 했겠는가? 소위 배웠다는 점잖은 사람들 마저도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떠드는걸 보면 절경은 인간으로 하여금 누군가에게 들려 주고 싶어 애 타는 마음을 자극하는게  아닌가 싶다.고즈넉하고 한적했으며 유려하면서도 안빈 낙도를 지향하는, 때론 철학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글들,감정에 휩슬려 격정을 토로하면서도 그 순간마저도 찰나임을 한탄하던 옛 문인들의 글을 읽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인생이란  인간이 기대 한만큼 길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미뤄 짐작한 만큼 짧은 것도 아니지 않는가 싶었기 때문이다.인생무상,죽고 나면 누가 우리를 기억하리요 하던 그들이 만일 아직까지도 우리가 본인들의 글을 읽고 있다는걸 알게되면 뭐라 할지 궁금해진다.비감하고 비관적인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나시려나?

 

멋진 문장이 많았고, 글 사이 사이 중국  유명 문인의 그림과 서예,사진들이 박혀 있어 읽는 맛을 더했다. 한 산문이 끝 날 때마다 원문이 실려 있었는데,어찌나 짧던지 원문인줄 몰랐다.나중에 알고나선 중국문자의 경제성에 대해 감탄할 정도였으니까.(한국 말로 5페이지 정도가 원문 반페이지 정도 된다.)알고보니 고문古文을 현대적 감각에 맞춰 현대 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그럼 그렇지...문득 학창시절 공자왈 맹자왈 한자를 배우면서 행간에 새까맣게 주석을 달던 때가 떠올랐다.공자만이 아니라 이런 글도 배웠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다가 그럴려면  학창시절이 무진장 늘어나야 했다는데 생각이 미쳐 바로 꼬리를 내렸지만서도.그렇다! 이 아니 좋지 아니한가? 고문을 이렇게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좋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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