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행진
세르히오 피톨 지음, 전기순 옮김 / 박영률출판사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30여년전 발생한 살인 사건을 주축으로 그 사건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진실은 무엇인가 물음을 던지고 있던 소설이다. 멕시코의 근대기 역사와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한스런 독백이 중첩적으로 얽히면서 공적인 기록에는 남지 않을 개개인의 시대사를 조망하고 있었다.

 

역사학 교수 미겔솔라르는 자신의 책 "1942년"을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다가 어린 시절 살았던 미네르바 아파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독일 스파이가 관련되어 있다는 정황을 알게 된다.당시 멕시코는 안으로는 혁명의 소용돌이가 바깥에서는 2차대전의 파국이 맞물려 지극히 혼란스런 상황이었다.누가 적이고 친구인지 구분이 불가능하던 암흑 시대에 고급 아파트에서 일어난 고위층 자제 살인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가져 온다.하지만 그 파장에도 불구하고 누가 진범인지 살해의 동기는 무엇인지 가려지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고 만다.

 

그 후 30년이 지닌 뒤 ,그 살인 사건의 실체가 궁금해진 미겔은 생존 관련자들을 인터뷰 한다.연줄과 인내로 속마음을 드러내려 하지 않던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한 그는 그들이 조금씩 흘린 이야기의 조각들을 맞춰 나간다.결국 그는 그 사건이 당시의 정치상황에 연관이 있었다는 심증을 굳히긴 하지만,여전히 배후와 진범은 오리무중으로 남는다.과연 진실을 찾아 헤매던 그의 진실의 복원 프로젝트는 성공할 것인가.

 

귀족가문에서 자랐지만 혁명의 와중에 몰락한 여자,미천한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아버지가 혁명군 수장이 되면서 부자가 되어 버린 여자...공통점이라고는 서로를 증오한다는 것외에는 없는 두 사람의 꼬인 인생 역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던 소설이다.마녀 같은 두 여자의 미묘한 신경전을 통해 한 시대를 조망해 볼 수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진진한 전개방식이었다.

미결 살인 사건의 실체를 파헤쳐 가는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기는 하지만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했다.그보다는 역사 소설에 가까워 보였다.일본 영화 <라쇼몽>이나 영국 소설 <핑거 포스트>처럼 등장인물들의 주관적인 시선을 모아 객관적 사실 하나를 그려낸다는 수법을 쓰고 있는데,한 사람의 주관적인 진실이 다른 사람에 의해 거짓으로 전복되는 과정을 통해 객관적인 진실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지적인 플레이를 하는 영리한 소설이었다.

 

예민하고 지성적이며 통찰력있는 목소리를 가진 작가였다.처음엔 맥시코의 대단한 작가를 발견한 줄 알고 잠시 흥분할 정도였으니까. 작가가 어린 시절 병약했던 나머지 책만 끼고 살았다던데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마무리만 완벽했다면 수작 소리를 들어도 될만큼 탄탄한 책이던데,마무리가 어정쩡하게 끝나서 정말 아쉬웠다.살인 사건의 배후나 진범을 가리지 못한 채 우물쭈물 끝이 나 버리는 바람에 책 전체가 주야장천 변죽만 울려댄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혹 내가 멕시코 사람이라면 당시의 시대 상황을 음미해 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꼈었을른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인에  멕시코의 역사에 대해 그리 정통한 편이 아니니 역사의 이면을 본다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결국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으로 책을 덮었는데 그렇게 책을 덮으면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작가에게 되묻고 싶어졌다.그리하여 이 책을 읽고 난 후 깨닫게 된 교훈을 들자면 이렇다.

 마무리를 잘 합시다!

 

<밑줄 그은 말들.>

 피나를 만나거든 이렇게 전해요.도대체 속마음을 안 보이고 어디까지 가려느냐고.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건 사는게 아니에요.--244

 

이봐요 선생,그때 혁명군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정말 비천한 집안 출신들이었어요.그런 사람들을 평가하면서 선생은 그 사람들이 멕시코 대학을 나온,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을 요구하더군요.

그들에게는 동물적인 정치 감각과 먹고 먹히는 적자 생존의 법칙만이 모든 것이었어요.우리 아버지들은 법도 없고,전통도 없고,아무런 보장도 없는 늪에서 성장한 사람들 이라는걸 알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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