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집 - 어느 가족의 기묘한 이야기
앨리슨 벡델 글 그림, 김인숙 옮김 / 글논그림밭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레즈비언인 작가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였던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과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만화책이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에 집에 돌아온 작가는 눈이 마주친 동생들과 비실 비실 웃음을 교환한다.장례식에 찾아 온 문상객들의 일상적인 조문에 삐딱하게 반발 하는 그녀,도대체 그녀의 아버지는 어떤 인간이었길래 자식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일까?

 

인테리어에 대한 취미와 문학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지만 결코 자식들에겐 인간적인 온기를 나눠 주지 않았던 사람, 신혼 여행지에서 남자 애인과  바람이 피워 아내를 슬프게 했던 사람,아이들의 베이비 시터로 남자 청소년들을 고용하거나 그를 대동해 가족 여행을 떠났던 정신 나간 사람,소아 성추행이라는 죄명으로 재판을 받았던 추악한 사람,자식들에게 철저하게 무관심하거나 폭력적이었던 사람,결혼 생활 내내 아내에게 거짓말로 일관했던 사람,삶이 여의치 않자 자살로 추측되는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았던 사람...바로이 것이 작가가 들려준 그녀 아버지의 초상이다.

 

도무지 이런 사람을 아버지로 두면 기분이 어떨까? 읽는 내내 끔찍했다.작가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로 중화를 시켰음에도 굳은 얼굴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소설 속에서야 허구의 인물이 겪은 가상의 일들이라지만,이 책은 자서전이다. 한 가족이 겪었을 지옥같은 고통이 그대로 그려져서 저절로 숙연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전적으로 아버지를 고발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보면 안 된다.그보다는 그를 이해하기 위해 쓴 거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평생 감춘 채 살았던 아버지,딸은 그의 숨겨진 비밀이 가족의 혼란과 고통의 시발점이었다고 추측한다.그는 가정을 꾸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적어도 여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됐었다.단지 낳기만 한다고 아버지로써의 의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딱히 게이라는 성 정체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부모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들 모두에 해당되는 상황을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알고보면 그런 사람은 널렸으니 말이다.

 

무책임하고 잔인했으며 이기적이었던 아버지를 그래도 아버지라고 이해하려 애를 쓰던 작가의 애잔한 자서전,재미난 집(Fun home)이란 제목은 실은 장례식장(Funeral home)을 줄인 것이니 문자 그대로 재미난 집을 상상하고 책을 집어 드시진 마시길 바란다. 아버지 직업이 장의사여서 사람들은 어릴적 그녀의 집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그것이 얼마나 냉소적인 작명인지 사람들은 아마 짐작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타인의 곤혹스럽고 고통에 찬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만 빼면 수작이라고 봐도 좋은 작품이다.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제발 이런 수작 안 만나도 좋으니,아이들만은 제대로 된 환경에서 커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어린 아이들의 고통에 찬 비명을 듣는 것은 언제나 고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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