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 서머싯 몸이 뽑은 최고의 작가 10명과 그 작품들
서머셋 모옴 지음, 권정관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서머싯 몸이 소설가의 입장에서 10대 명작의 목록을 만들어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평론집이다.소설은 재밌어야 한다는 자신의 지론을 바탕으로 그가 고른 작품들을 보자면 <톰 존스>-헨리 필딩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적과 흑>-스탕달 <고리오 영감>발자크 <데이비드 코퍼필드>--찰스 디킨스 <보봐리 부인>--플로베르  <모비 딕>허먼 맬빌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스토예프스키 <전쟁과 평화>--톨스토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없다는 점만 뺀다면 수긍이 가는 선정이다.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책을 제대로 고를 줄 아는 작가의 안목에 있지 않았다.글을 너무 잘 썼다는 점에 있었지.

 솔직히 별 기대 없이 집어든 책이었다.원래 평론집을 그다지 신뢰하는 편이 아니다.현재까지 읽은 수많은 평론집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거라곤 르네 지라르의 이름도 거창한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이 유일하니 대강 평론집을 대하는 내 기분이 어떨지 짐작하실 것이다.이것도 뜨악류에 지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오마나, 이게 왠일? 그가 선정한 소설 못지 않게 잘 쓴다.깜짝 놀랐다.탄탄한 문장에 군더더기 없는 묘사,완벽한 구성에 일관성 있는 서술 태도에 성실한 사전 조사,무엇보다 그 역시 탁월한 소설가란 사실이 새삼 떠올려 질만큼 작가들에 대한 모순 없는 통찰력까지.완벽했다.열명의 작가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작품 자체에 대해서도 너무도 흥미 있고 설득력있게 서술하는 바람에 그 책 만큼이나 즐거웠다.평론이 해당 책보다 더 나은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더군다나 그가 선정한 책을 보라! 한결 같이 대가들 아닌가? 다른 사람이 했다면 분명 졸작에 변죽만 울려대다 말 작업이었을텐데도, 쉽고도 우아하게 남들 다 아는 것을 알려 준다는 식으로 써내려 가는걸 보자니 경이로울 뿐이었다.옛날 사람들도 이렇게 잘 썼구나 기가 죽었다.

 이 책이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많겠지만서도,특히 내 눈에 뜨이는 것은 천재 소설가 반열에 올려 놓아도 무방한 서머싯 몸이 다른 천재 작가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려주는 것들이었다.우리 같은 둔재들은 천재의 휘광에 눈이 부신 나머지 그들이 가진 인간적인 결점은 눈감아 버리거나 묻지마 신화로 만들어 버리기 마련이다.다시 말하면 환상 속의 그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하지만 서머싯 몸에겐 그런 환상이 끼여들 여지가 없었다.천재가 어떻게 탄생하고 자라며 글을 쓰고 삶을 살아가는가에 대해 본인이 잘 알고 있었기에 천재들의 허세가 그에겐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지극히 냉정하고 초연한 눈으로 응시하던 그의 시선을 통해 평소 존경해 마지 않았던 대가들을 보니 역시 달라 보인다.대가들의 몰랐던 사생활과 비밀을 엿들으면서 시종일관 낄낄대거나 공감의 고개를 주억거렸으니...이해를 돕기 위해 대충만 적어 보자면 이렇다.

 
*톡쏘는 듯한 매력을 지녔다는 제인 오스틴에 대해 비평가인 개로드는 제인이 낭만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일련의 사건들에 의한 이야기는 쓸 줄 몰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하지만 제인은 그런 이야기를 쓸 재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그녀는 너무나 분별있고 유머가 넘쳐서 낭만적인 사람이 될 수 없었다.또한 비상적식적인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것에 흥미를 느꼈다.대신에 그녀는 날카로운 통찰과 반어,그리고 날렵한 재치로 상식을 비상식으로 변주해낼 줄 알았다

*바람둥이가 되고 싶어 안달을 했지만 늘 실패를 거듭했다는 문제아 스탕달에 대해 아이들이란 늘 그렇기 마련이지만,그도 평범한 구속을 과도한 폭정으로 여겼다.강제로 공부를 시킬 때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못하게 할 때,아이들은 자신이 몹시 가혹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이런 점에서 스탕달도 보통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러나 보통 아이들은 다 크고 나면 어릴 적 불만은 다 잊는 반면,그는 53세 때도 그 오래된 원한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점이 그들과 달랐다.

스탕달이 방금 보고 온 연극을 고쳐서 어떻게 하면 자기 작품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염치없는 말을 일기에 되풀이해서 적어 놓은걸 보면,그에게 창착 능력은 그다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탕달은 꾸며내는 재주가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았다.그러나 자연이 어떻게 해서 이 저속한 광대에게 사물의 속성을 정확히 간파해내는 재능과 복잡 미묘하고 변덕이 심하며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부여했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는 자기 주변의 인간들을 매우 하찮게 여기긴 했지만 그들에 대한 흥미를 매우 강렬했다.

*무분별과 허영에 의한 빚이 아니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지 몹시 궁금해지는 발자크 발자크는 전쟁과 평화처럼 서사시적 웅대함을 지닌 소설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처럼 음울하고 마음을 격동 키시는 소설,오만과 편견처럼 아름답고 기품있는 소설은 한편도 안 썼다.그는 어떤 한 작품이 뛰어나기 때문에 위대한 게 아니라 가공할 만한 양의 작품을 생산해냈기 때문에 위대하다.

*우리의 영원한 허영때기 언니 엠마 보바리에 대해 우리는 누구나 터무니없고 가당찮은 백일몽을 꾸고,그 속에서 부자나 잘생긴 사람이나 입신양명하는 사람이 되고 낭만적인 모험의 주인공이 된다.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분별력있고 소심하며 모험심이 없기 때문에,백일몽이 실제 행동에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하지만 엠마 보바리는 환상속에서 살려고 애쓴 인물이라는 점에서,그리고 지나치게 절세 미인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

 나머지는 재밌는 부분들은 책에서 찾아보시길.간혹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긴 했지만,이 작가보다 더 깊이 있게 스탕달이나 발자크,플로베르등을 통찰한 사람은 못 본 것 같다.10명의 작가들에 견주어 상상력이나 통찰력에 있어 조금의 모자람이 없는 작가의 명쾌하고 탁월한 평론집이었으니,재밌는건 기본이고 유익한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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