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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도 말해도
사토 다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뜨인돌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 전통 만담극인 라쿠고 배우인 미쓰바는 말하는 것 만큼은 어딜 내어 놔도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26살의 청년이다.최고의 라쿠고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8년을 버텨온 그는 관객들 반응이 없어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 낙척적인 인생관의 소유자다. 그런 그 앞에 생각지도 않게 라쿠고를 가르쳐 달라고 사람들이 몰려온다.소심한 성격으로 말을 더듬다 테니스 강사 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긴 사촌동생,새침떼기 같은 깍쟁이 미인이지만 정작 필요한 말을 해야 할 때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검은 고양이 아가씨,사투리를 쓰는 바람에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초등학교 4학년생등...말을 잘하기 위해 라쿠고를 배우겠다는 그들에게 미쓰바는 라쿠고는 말을 잘하게 하는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절박한 그들의 귀엔 마이동풍이다.결국 그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한 미쓰바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하바리 불청객들을 제자로 들인다.그런데 이 가관인 사람들도 모자라 한때 못말리는 야생마로 이름을 날렸던 전 프로야구 선수까지 합세 한다.은퇴한 뒤 라디오 야구 중계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는 우락 부락한 생김새와는 달리 마이크 앞에만 서면 입이 얼어 붙는 바람에 다시 퇴출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그렇게 말을 못해 인생이 꼬인 낙오자 넷을 가르치게 되면서 미쓰바는 라쿠고 배우로써 자신은 얼마나 말을 잘할까 의심하게 된다.더군다나 말도 잘 못하는 주제에 모이기만 하면 티격 티격인 제자들은 고마워 하기는커녕 미쓰바의 속을 박박 긁어 놓기에 여념이 없으니..과연 이 중구난방 얼치기 라쿠고 제자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귀여운 소설이었다.만화같은 설정과 이야기 전개로--일본소설이 잘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만화적인 발상과 전개도 한몫 하지 않는가 한다.--소시민들의 각자 나름의 사연 있는 이야기를 소박하고 군더더기 없이 맛깔나게 풀어내고 있었다.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는 어깨에 힘을 뺀 소설이란 점도 맘에 든다.읽어보면 별 것도 아닌데 괜히 무게란 무게는 있는대로 잡고 있는 소설보단 이런 소설이 훨씬 영양가 있다.적어도 재미가 있잖은가?개성있는 등장인물들과 가식없는 인물 묘사로 인물에 개연성이 부여되는 점과 과정 없는 감정 표현이 장면들에 쉽게 공감하게 하는 점도 좋았다.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면서도 다 개성있고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것이 일본 소설의 매력이 아닌가 한다.주연과 조연이 사라진 민주적인 소설이라고나 할까.더불어 일본 전통극을 이어가려는 젊은이의 자부심과 애환을 다룬 점엔 마냥 부럽기만 했으니...일본 작가들이 다루지 못하는 소재는 정녕 없지 않나 싶다.인구가 많으니 상상력도 그만큼 널려 있나보다.인정하긴 싫지만 내가 얕잡아 봤거나 혹은 외면해 온 일본의 저력을 보는 것 같아 약간은 두렵다.아,쿨하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