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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테러리스트
애니 최 지음, 정경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이민 2세대들이 책을 썼다고 하면 이젠 좀 두렵다.또 어떤 식으로 자신의 부모 나라를 폄하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그들은 절대 한국인이 아니다.왜냐면 우리나라 사람다운 정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그들은 외국인이다.한국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는 얼치기 외국인,그리고 그건 우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다가오는 외국인보다 때론 더 치명적이다.그들은 적어도 우리를 존중하려는 마음 은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이민 2세대가 글을 썼다고 하면 겁부터 난다.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 한국인들,괴상하고,멍청하며,시끄럽고,비합리적인데다 비이성적이며 속물이라는 이야기가 어디서 터져 나올지 모른다.그건 솔직히 굉장히 기분 나쁘다.맨처음엔 너희도 한국인이라고 누워서 침 뱉지 말라고 했지만,이젠 안다.그들은 한국인이 아니란 것을,그들에겐 우리가 철저히 타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그래서 한없이 가볍게, 유쾌하기로 작정한 이 책을 보면서도 난 시한폭탄을 바라보는 듯 불안했다.넌 도대체 어디서 터질텐데...하면서.그래서 남들은 등이 휘게 웃다가 한줄기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이 책을 보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빠르게는 읽었다.재밌어서가 아니라 조바심 때문에...원래 등에 폭탄을 지고 있으면 속도가 나는 법이다.
저자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다.엉뚱한 엄마와 그런 엄마와 평화롭게 해후하시는 아빠,뚱뚱하지만 심성은 착하다는 오빠,그리고 수많은 친척들 사이에서 성장한 이야기들이 주르르 펼쳐지고 있다.무엇보다 엄마의 개성이 압권이었다.예일대나 프린스턴대는 하버드 모조품이라고 생각하고,샤넬은 '털이 긴 강아지를 키우는 노부인'의 옷이고,캘빈 클라인은 '배고파 보이는데도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소녀들'을 위한 옷,베-르-샤-췌는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여자들이'입는 옷이라고 간파하는 부분들은 얼마나 예리한가?서투른 영어로도 고집 센 딸네미에게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 근성이야말로 야호감이었다.그런 엄마와 티격태격 미워하는 듯 보이면서도 실은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는걸 잘 알고 있는 딸의 애교섞인 가족투정기. 만약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면 이 책을 재밌게만 봤을 것이다.이름도 생소한 후진국에서 이민 온 가족의 좌충 우돌 적응사로 보면 되니까.하지만 난 한국인이다.그래서 이민자들이 한국인의 정형적인 상으로 박혀지는게 맘에 안 들었다.우린 그보단 더 개성있고 다이나믹하며 다양하다.무대포에 몰지각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일례로 저자는 다른 인종과 결혼한다고 나서면 가족들이 반대할거라면서 걱정하는 장면이 나온다.내 주변엔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이 꽤 된다.그런데 가족들이 반대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당사자도 마찬가지다.자신의 결혼에 남들의 견해가 중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우리들이 이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에 아직도 연연하는 그들을 보자니 언제적 이야기를 하냐 싶다.그런데 이 책을 읽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할게 아닌가?못내 못마땅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