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를 향해 날다.

중력 삐에로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한 작가에게 필 받으면 원래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그래서 책에 대한 정보 없이 작가가 이사카 코타로라는 이유만으로 본 책이다.처음으로 졌다는 생각을 했다.천재라는 말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보통은 넘는 작가는 분명하다.다른 소재를 가지고,자신만의 특징만은 여전히 살려 가면서도 ,다른 분위기의 책을 낸다는 것까지는 뭐 흔하다고 치자.하지만 작품의 질이 고르다는 것엔 놀라웠다.이야기가 넘쳐 난다는 말이니까.억지로 짜내 쓰고 있다는 것이 아니니까.천상 이야기꾼으로써의 자질을 타고 났다는 말이니까.공부하면서 쓴다는 말이니까.그건 다시 말하면 그의 책은 언제나 신뢰해도 된다는 말과 같다.그래서 일본 작가를 대하면서 심드렁해하던 태도를 첨으로 바꿨다.사실 이런 말을 하는데 굉장히 자존심이 상한다.나만은 이런 말을 안 하게 되길 바랐으니까.그래도 어쩌겠나,사실은 사실인 것을...

한 가족의 복수극이다.몇 년전 엄마는 암으로 돌아가시고,이제 달랑 아버지와 장남 이즈미,그리고 사랑스런 동생 하루,이렇게 셋뿐인 가족.잘 생긴 외모에 엉뚱함으로 무장한 하루는 엄마가 10대 연쇄 강간범에게 강간을 당해 태어난 아이다.아버지는 그런 하루를 이즈미와 똑같이 아들로 받아 들여 키웠다.키워 준 아버지와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이 마음 아픈 하루는 생물학적 아버지가 강간범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성에 대해 결벽증을 갖게 된다.그러던 어느날 이즈미는 동생의 전화를 받는다.다니는 회사 빌딩에 불이 날테니 조심하라는 메시지,결국 방화가 일어나고,그것이 연쇄방화라는 것을 알게된 이즈미는 하루가 어떻게 미리 안 것일까 곤혹스러워 하는데...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전해야 한다는 작가의 모토가 무색하지 않는 소설이었다.자신의 쾌락을 위해 남이 고통당하는 것을 즐기는 강간범과 그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면서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과장되지 않게 가볍게 그려지고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메시지가 약한 것은 결코 아니다.남들이 강간범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똘똘 뭉쳐 아이를 키워 내는 부모,그런 부모와 형의 사랑에 충분히 보답하는 하루,그리고 그런 하루를 보호하려는 가족애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으니까.많은 부분들에 공감을 했다.바타유의 에로티즘에 대한 반격은 특히나...인간보다 동물을 더 좋아한다고 하는 작가,하지만 올곧게 인간적이다.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진지하게 파고드는,하지만 그렇다고 무게도 잡지 않던 작가,드디어 인간적으로 공감을 할 수 있는 일본 작가를 만나게 되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