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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집에서 보낸 사흘
프랑수아 베예르강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만약 내게 아들이 있어서 공을 들였건 안 들였건 간에 어쨌거나 키워 놨더니 50이 넘어서 책 앞에 엄마 이름을 떡하니 붙여놓고 이런 책을 냈다면 난 아들에게 뭐라 했을까? "예끼 ,이놈아! 넌 그래 엄마 팔아서 할 이야기가 이것 밖엔 없더냐!"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후레자식 같으니라고!" 라는 말도 점잖치 않은 톤으로 덧붙여서.써놓고 보니 이보다 더 딱 알맞는 단어는 없겠네 싶다.
작중의 화자는 작가다.한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5년째 글이 써지지 않아서 인생 파탄 직전이다.선인세를 받은 출판사에선 독촉을 하고 그건 빚쟁이들도 마찬가지다.아내와 딸들,그리고 누이들,수많은 애인들이 걱정스럽다면서 뭔가 해볼 것을 촉구하고,엄마는 이러다 내가 널 못보고 죽겠구나 장탄식이다.작가는 이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 집으로 가서 글을 쓰기로 결심을 한다.제목도 <엄마집에서 보낸 사흘>이라고 먼저 지어 놓고.그런데 정작 엄마집에 가게 되질 않는다는 것이 문제었으니...
표지에 공쿠르 상 수상작이라는 말은 사실이라니 넘어가자.하지만 표지에 쓰인 솔직함과(적어도 거짓말은 아니다.)순수함(오,마이 갓,순수함이 언제 개 이름이 되었다냐?)으로 무장한 '독자성'이 돋보인다는 말엔 사기꾼의 닳고 닳은 소리를 듣는 듯 소름이 끼친다.50이 넘어서도 여전히 철없는 아들이 엄마를 찾아 간다는 "엄마 찾아 삼만리"식의 설명은 또 어떠한가?사실 이런 아들이 찾아 온다고 하면 엄마가 먼저 도망가지 않을까 싶구만,차라리 그런 내용이었다면 재밌었을 텐데 아쉽다.
속았다 싶은 것은 정작 엄마집에서 보낸 사흘에 관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그저 작가는 습관처럼 엄마에 대해 써야지,엄마 집에 가서 쓰면 뭔가 나오겠지 하는 말뿐,진짜로 엄마집에 가서 뭔가를 하는 것은 없다.그럼 도무지 그는 이 책을 뭘로 채워 놓았을까?전부 그가 20대시절부터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마저 질리게 했다던 <지치지도 않고 자세히 늘어 놓는 그의 애정행각>이다.지나가는 말로 자신이 섹스 중독자라고 하던데 진지하게 상담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그의 섹스 탐닉은 심각했다.뭐,그가 심각하건 말건간에 상관 없다.그건 그의 문제니까.단지,독자들이 그의 애정행각을 그렇게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나르시즘이 참을 수 없었다.쓸 게 없으면 그냥 책을 내지 말던가.할 말이 없을 때마다 등장하던 그의 과거 애인들,천밤을 보낸 여자부터 하룻밤을 보낸 여자들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한 여자들과의 비참한 추억들을 되씹는데 짜증이 절로 났다.20살이 넘어도 철들지 않는 사람을 보면 눈살이 찌프려진다.철들지 않는 한심한 50대를 보여주면서 "나 이뻐?"라고 묻는 이 작가를 보면서 솔직하다고 칭찬하고픈 맘은 전혀 들지 않았다.애야,철 좀 들거라.그리고 철 들 생각이 없거들랑 그냥 조용히 살던가...철 없다는건 절대 자랑이 아니란다.알겄제?
클린턴이 보면 아마도 동지라면서 반색을 하지 않을까 싶던 프랑스 작가,한국에서 이책이 번역이 되어 나온다는 말에 반가워 하는 다정한 서문이 맨 앞에 적혀 있었다.딱 거기만 읽을 걸...거기만 봤을땐 그래도 이 작가가 그나마 사랑스러웠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