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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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가리에 대한 모든 전설은 잊어 버리기로 하자.그가 무려 40년동안 쓴 것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무시하자.청춘과 장년을 거쳐 예순살이 넘어 완성되었다는 문구에 현혹되진 말아줬음 싶다."자기 앞의 생"이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유럽의 교육"을 읽은 사람들이 애잔한 심정으로 이 책을 드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왜냐면 난 그 모든 과정에서 탈락한 결과 이 책을 보았기 때문이다.그리고 실망했다.대가의 작품 중에서도 실패가 있다는것은 알지만 이건 좀 심했다.얼치기 신인도 아닌 작가가 이런 책을 써내다니...그의 조울증 편차 만큼이나 다른 책들과 간극이 컸다.이런 횡설수설을 왜 출간한 것일까.세상에 대한,독자에 대한 조롱밖엔 안 되는 이런 글을 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였는지 세상에 선포하고 싶어서? 안타까웠다.그가 자살한 것은 이해하지만,그의 정신마저 오락가락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듯 보이는 그의 글들,읽는 것마저 고역이었다.

광기를 없애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나,문학을 위해 자신이 희생한 댓가가 엄청나다고 불평중이다.그의 재능을 이용하려는 삼촌은 그가 글을 쓰게 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그를 가두고,나가고 싶으면 글을 쓰라고 한다.마침내 책이 나오자 사람들은 그의 존재가 실재하는 것인지를 의심하고,그 역시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다.과연 그가 쓴 글은 자신이 쓴 것인가?아니면 재능이 말라버린 그의 삼촌이 쓴 것일까?<자기 앞의 생>을 썼을 당시의 논란과 혼란을 로맹가리 자신은 어떻게 받아 들였는가가 그대로 투영된 책이었다.

 제 정신이 아닌 듯 느껴지는 횡설수설,익명으로 남기를 원하는  결벽증은 익명에 저항하는 그의 속물근성에 부딪혀 늘 좌절되고,자신이 근친상간의 결과물은 아닌가 하는 의문,아버지를 모른다는 불안감,자신의 뿌리에 대한 집착과 미련, 착하고 성스러운 엄마의 과거를 의심해야 하는 괴로움,부정의에 대한 절망,광기의 고통,그 모든 것을 이겨 내고 살아간다는 것의 중압감,그를 혼란스럽게 하던 모든 것들이 한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전혀 정제되지도,통제되지도,여과되지도 않은 채...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들이 앞면이었다면 이 책은 그의 뒷면을 보여준다.그리고 그 뒷면은 좀 정신사나웠다.말년의 그의 정신세계가 심난했다는걸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으니...책이 좋다해도 작가의 인간성이 좋다는걸 보장하는건 아니라고 그가 말한다.물론이다.책만 가지고 인간성을 짐작할 수는 없다.하지만 적어도 작가의 정신상태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한다.혼란스러운 글이었다.작가의 허물어가는 정신을 눈앞에서 보는 듯해서 적잖이 당황스럽고 난처했다.읽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거란 생각을 하며 내려 놓았다.빨리 머리에서 휘발되길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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