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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 1
로버트 그레이브스 지음, 오준호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로마사에 별로 관심이 없다.아니 실은 역사에 그다지 관심 없다.네로,칼리굴라?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건 간에 내 알 바 아니다.로마시대 책 중에선 재밌게 읽은게 기억에 없다.고로 이 책을 집어들면서 전혀 기대 안했다.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긴 뒤 위의 모든 생각이 달라졌다.그리곤 중얼거렸다.이렇게 좋은 책을 왜 아무도 이야기 해주지 않은 거지 ?라고.
뛰어난 황제로 후대에 알려졌다는 로마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소재로 한 책이다.황제가 1인칭 시점으로 들려주는 내 살아온 이야기.자신의 선조부터 본인의 탄생,그리고 황실의 천덕꾸러기로 근근히 생존을 연명했던 시기의 일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권력을 잡기 위해 남편과 두 아들을 독살시킨 할머니 리비아는 황제 아우그스투스의 아내가 되어 막후에서 모든 것을 조정한다.칠삭동이로 태어나 절음발이에 말더듬이로 황실의 조롱감인 클라우디우스는,바보로 취급되는 설움을 겪지만 덕분에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어 살아 남는다.로마 황실의 권력을 쥐기 위한 피비린내나는 다툼과 음모, 배신,독살과 이간질속에서도 그가 끝내 황제가 되어 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재밌다.통찰력있고, 군더더기 없는 묘사에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척관계와 정치집단간의 알력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서 술술 읽기만 하면 됐다.역사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지식과 통찰력이 얼마나 탁월하던지,자칫 딱딱하거나 유치할 수 있는 역사서를 매끄럽고,유연하며,막힘 없이 풀어가는 솜씨가 대가다웠다.
그런데,읽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정치상황과 비교 ,연상이 된다.정치란 어떤 것을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입맛에 따라 사람을 독살을 시키거나 쥐락펴락하는 독사의 혀를 가진 여인이지만,일에 관한 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처세로 일관했다는 리비아,무능해서 하는 일마다 어긋나기만하는 티베리우스황제,덕스럽지만 남을 믿은 나머지 자멸하는 게라마니쿠스등등.무능력이나 순진함이 독기보다 더 큰 해를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현실인 것을 어쩌랴.2천년전의 사람들이나 현대 사람들이나 본질은 다를게 없는 것이 우린 자신이 2천년전보다 개화되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사는데 그건 착각이었다.그런 면에서 정치적인 인간에 대한 통찰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황실 이란게 언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자리임에도 거기 못 껴서 난리인 사람들...부귀영화가 있을 땐 처참한 죽음이 그려지지 않는 법인가 보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의 양아들 제도였다.양아들로 일단 받아 들이면 친아들과 차별을 두진 않지만 그 이면엔 정이 없었다.하긴 자기 자식도 독살을 하는 마당에 남의 핏줄을 독살 못할게 뭐가 있겠는가?
독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가식없는 권력다툼,당연히 재밌었다.
그런데,로마인들은 불륜이 얼마나 만연되었든지,자기 자식이 아닌 것은 다반사였고,여자들마저 바람 피우는데 걸림돌이 되기에 아이는 뒷전이었다.천륜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가운데,선한 심성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끊임없이 궁싯거리던 클라우디우스.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이 책에선 아직 그는 황제가 아니나 그의 이야기는 황제급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