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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유미주의니 수작이니 걸작이니 하도 호들갑을 떨어대길래 호기심에 한번 들어다 봤다.
과연 유미주의란 말이 과장이 아니군 싶게 문장이 유려하게 흘러가는 것이 첫장을 넘기기도 전에 느껴진다.아름다운 것에 대한 찬미와 허무주의,비관주의,자신의 비루함을 잊기위해 존재하는 절대적 미의 상징 금각사,거부당할 것이 두려워 생겨난 성에 대한 퇴폐적 환상들이 공존하던,미를 질투해서 금각사를 불태웠다는 한 사미승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는 소설이다.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1/3쯤 읽는데 읽는데 갑자기 "이 사람은 분명 자살을 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작가 연보를 살펴보니,역시나, 45살에 할복자살 했다고 적혀 있다.
겉으론 항의를 위한 자살처럼 보였겠지만,아마 그건 자살을 위한 연극이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자살을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명분에도 자신의 이름을 내 걸었을,죽고 싶어 환장했을 듯한 사람,왜냐면 그의 글속에 느껴지는 세상을 향한 민감함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그 정도의 민감한 감수성이라면 아마 사는게 지옥같았을 것이다.살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을지 대강 짐작이 됐다.먹먹했다.
줄거리는 말더듬이에,가난에,추레한 부모에 줄곧 열등감에 시달려온 주인공이 성공을 위해 절에 사미승으로 보내 지지만,결국 누구와도 융화하지 못한 채,금각사를 불태우는 범죄자가 되리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단순한 사건 자체보다는 심리상태나 인식의 변화에 촛점이 맞춰져 어떻게 평범해 보이던 주인공이 금각사라는 절대미를 파괴하려는 변태적인 결심을 하게 되는가를 디테일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일본인들이 세부적인 것에 목숨을 건다고 하더니 감정 하나하나 쪼개고 또 쪼개며,더 이상의 것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파고 들어가는 작가의 서술태도는 지극히 일본인답군,이란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이 책을 읽고...
1.유미주의가 내 취향이 아니란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이 작가는 글을 얼마나 유려하게 잘 쓰던지,읽어 가는데 막힘이 하나도 없다.바람을 가르는 매처럼,물살을 헤치고 헤험치는 고래처럼 유연하고 매끈하게 흘러가던 문장의 이어짐. 대단했다.그런데 난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의 글은 나무만 보고 있자니 숲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갑갑했다.깨달음이 없는 말들의 현란한 잔치,공허하기 이를 데 없었으니...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다.부처도 죽이라는 마당에,젊은 작가의 글을 내가 죽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2.한낱 범죄자에 불과했을 현실속의 사미승을 이렇게 극단적인 미의 숭배자로 만들어 놓다니 ,작가의 상상력에 헛웃음이 나왔다.현실속의 범죄자는 정신병력을 전전하다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하던데,작가는 마지막 구절에 이렇게 쓴다."살아봐야 겠다"고.
조악한 충동에 의해 행동했을 뿐일 범죄자에게 이렇게 근사한 옷을 입히다니...것도 허상이 아닐까?
범죄자의 행동에 어떤 고상한 이유가 있기를 바라는 보통사람들의 우직한 충정은 이 책을 읽으면 충분히 보상을 받을 것이다.그게 옳은 분석이건 아니건 간에...하지만 그가 입힌 옷은 정말로 근사했다.마치 실제 범죄자의 독백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난 일본작가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예전에 읽어본 것이 몇개 되지 않아서 일거라고 생각했는데,이 책을 읽으면서 보니 그저 일본적인 것들이 내겐 맞지 않을 뿐이더라.
사람들의 호들갑 때문에 읽게 된 책,수작이긴 했지만,내겐 호들갑을 떨어야 할만큼 대단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편견없이 그걸 확인하게 되서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