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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르트의 바닷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1
줄리앙 그라크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06년 2월
평점 :
1.<현존 최고 프랑스 작가의 공쿠르상 수상작이며,초현실주의적인 꿈과 경이로움을 담은 독특한 문학세계.& 탁월한 시적 감각과 상상력으로 빛나는 그의 문체가 풍경과 시간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나약하지는 않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표지 문구다.내게 표지를 맡겼으면 <너무도 끔찍하게 지루해서 비명이 절로 나오는 책> 이라고 썼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표지를 흘겨 보고 있다.맞다. 삐딱선 ,제대로 필 받고 있는 중이다.
2.고등학교때 지학 선생님은 소설책을 의식적으로 안 읽는 분이셨다.한번은 차이콥스키가 좋아져서 그에 관한 책을 샀는데, 한 장 반을 읽도록 등장 인물이 문을 열고 나갈까 말까를 묘사하는 것을 보고서는 집어 던지셨다면서 '우리 이공계 사람들은 그런거 못 읽어요'라고 투덜대셨다.어디 이공계 뿐이랴.나 역시 쓸데없이 묘사만 길어지는 책은 싫다.그런데 이 책은 새삼스레 그 지학 선생님의 말이 귓가를 쟁쟁거리게 할 만큼의 대단한 묘사력(?)을 지닌 책이었다.예를 하나 들어 보자면...
<"그 눈은 깜빡이지도 빛나지도 심지어 바라보지도 않았다.고르게 빛나는 물기는 시선보다는 오히려 어둠 속에서 크게 입을 벌린 조개를 생각게 했다.그것은 다만 미역이 휘감긴 희고 이상한 달 같은 바위 위에 떠돌며 거기에 벌어져 있었다.바람에 곡식이 쓰려진 밭처럼 혼란스러운 머리칼 속에서 그 고요한 덩어리의 움푹 들어간 자리는 마치 별이 빛나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입 또한 해파리의 작은 분화구처럼 헐벗은 모양을 한 채 마치 손가락 아래서처럼 수축하며 떨었다.한쪽 끝이--검은 물이 부풀어 오르는 아침의 간석지 필로티처럼--나른한 물결의 공동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바네사의 곁에서 보낸 그 밤들로부터 나는 음산한 환희를 느꼈다.나를 지치고 텅 빈 상태속으로 빠뜨리는 어떤 체액의 소실 같은 것이 풍경의 열기 어린 패배에, 복종에 ,의기소침에 나를 조율하는 듯했다.">
골자가 뭔데...라는 비명이 절로 나온다.이렇게 말만 무작정 아름답고 실체가 없는 것을 누군가는 좋아하겠지만 난 아니다.마치 파리 패션쇼에나 등장하는 현란한 장식의 기성복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다는 점에서 특히.하긴 옷은 눈요기꺼리라도 된다는 것은 감안하면 이 책보단 낫다고 하겠다.고문을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면 호들갑 떤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랬다.
3.줄거리는 너무도 권태로운 나머지 전쟁이라도 만들어 나라를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려는 지도층과 그 음모를 알게 되면서 전쟁을 저지를 하려 하지만 무기력하게 끌려 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줄거리만 보면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지만,결코 그렇지 않다.핵심은 빼고 그저 분위기 잡는 묘사만 죽어라 하고 하고 있는 책이니까.고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나 지성적인 말들은 하나도 없다고 보심 된다.수 백만이 죽어나가는 기아의 현장에서 시를 읊고 있는 시인이라던지, 길 거리에서 종말을 외치고 다니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의 기분과 대강 맞아 떨어지는 책이었다.적절하지 않고, 비현실적이며, 핀트가 맞지 않는 듯한 이야기들이 느른하고 우울하며 암울하게 ,거기다가 지겨울 정도로 느리게 묘사 되어 있다.나 같은 사람에게 읽으라고 주면 성질 버리기에 딱 알맞는 책이었다.
4.문학가들 사이에선 감격스런 책이란다.암시과 복선과 출중한 묘사와 누구도 감히 흉내내지 못하는 정취묘사가 담긴.내게는 인물 성격이나 제대로 화끈하게 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은 책이었으니, 역시 난 독자가 어울리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가 보다. 아님, 그저 이 책이 내 취향이 아닐 뿐일지도 ...며칠전에 뒤러를 읽으면서 한동안 이보다 지루한 책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속단이었다.이보다 더 지루한 책을 한동안 만나긴 어려울 거라고 다시 한번 말한다면 그것도 속단이 되려나...
오,설마..그렇게까지 재수가 없으리라곤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