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신부의 일기
베르나노스 / 민예사 / 1989년 10월
평점 :
절판




<영화 시골 사제의 일기 중에서 한장면>

 
                                                    
이 책을 산 것이 89년이니까 장장 17년만에 다 읽은 셈이다.
당시 재미 없다고 어딘가 처박아 두었다가, 얼마전 읽은 책에서 이 책이  걸작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보고서는 골방을 뒤져서 찾아냈다.감개 무량하다.
역시 나이를 헛 먹는것은 아닌가 보다.예전에는 이해가 안 되었었던 것이 이젠 너무 이해가 잘 되니 말이다.죽지 않고 버틴 보람을 느낀다.
(이 말은 올해 해리 포터 7권이 나오면 써먹을 려고 아껴둔 말인데, 말이 닳는 것도 아니니 그때 가서 또 써먹을 생각이다.)

 

내용은 어느 시골의 고지식한 신부의 일기를 바탕으로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 것이다.인간을 대하는 것이 선천적으로 서툴어서 고통스러운 이 어버리 떠버리 신부는 그래도 자신의 천분을 다하기 위해 동분 서주하지만, 그에게 돌아 오는 것은 감사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의 선량함과 악을 키우려 하지 않는 성품을 악용해,그를 음해하고  맘대로 휘두르며,탐욕과 무지로 괴롭히지만 ,그는 묵묵히 감수하며 헌신으로 인내한다.

그런데,본의 아니게 백작네 가족의 가정사에 끼여는 그는 백작 부인이 심장 마비로 숨지자  더욱 더 궁지에 몰리게 되고 , 이에 그의 고결함을 아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그를 걱정하기 시작하는데...

 만만하게 쉽게 읽히는 책은 전혀 아니다.
요즘 책들을 보면서 느끼는 불만은 이젠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처럼 책이 되어져 나온다는 것이다.매끄럽게 잘 빠졌고, 흠 잡을 데 없이 아름다우며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군더더기는 조금도 없는 책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작문 강의실에서,그리고 작문 책들이 어떻게 하면 잘 읽히는 글이 되는지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 덕분인 듯한데, 그런 책들의 특징은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
진심이, 오래 끙끙대고 머리를 싸맨 흔적들이, 고통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통찰력이 없다.
그런 책들은 빠르고 쉽게 읽혀지지만 또 재빨리 잊혀 진다.
그런 책들은 읽어도  심성만 사나와 진다는 느낌을 받아서 난 그런 종류의 책은 되도록 안 읽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종류의 급조된 책이 아니었다.
천천히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는 책이었다.
착한 심성과 선한 의도를 가졌지만, 주변 인간들의 이해 관계과 본성에 얽혀 결국 실패만 해대는 이 신부를 보는 것이 재미 있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진실,고통스럽고 잔인하며 회피하고 싶은 진실을 들려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신부는 조용히 자신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에겐 아마도 해방이나 다름 없었을 죽음을...
아무리 아름다운 시라도 정말 반한 사람에게는 서투른 고백을 떠듬거리며 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은 서투른 고백들이 넘쳐나는 글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보다 더 마음을 울렸다.
굳건한 신심을 가졌지만, 그의 의도가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시골 신부를 보면서 생각한다.아쉽게도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살아도 살아도 세상속에선 서툴기만 한 나약한 인간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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