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을 수 있다면 1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가 별로여서 ,이 책도 그다지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하지만 이거 왠일이란 말이냐.읽어내려가면서 별 다섯개! 를 외치고 있을만큼  재밌다.
프랑스 소설의 특유의 선량함과 약간의 신랄함,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해결 하려는 태도,장자크 상페의 만화책을 연상시키는 묘사와 안나 가발다 특유의 아기자기함,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따스한 정들이 넘치는 매력적이 책이었다.
너무도 매력적이라서 새롭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사실 인생의 낙오자, 실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들은 넘쳐 난다.
그런 의미에서 별로 신선할 것도 없는 소재--세명의 낙오자들이 우연히 한 아파트에서 동거를 하게 되다가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에서 신선함과 감동을 느끼게 할 수 있다니.가발다에게 감사 카드를 보내고 싶어질 정도다.
종종 예기치 않게 이런 책을 만난다는 것이 내겐 뜻밖의 횡재인 동시에 책을 계속 읽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가 한국에 온다고 하면 아마 싸인을 받겠다고 수줍게 서있을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이 마냥 사랑스러웠다.

 천재화가의 재능을 타고 났지만 자신을 파괴하는 선택만을 골라 한 결과 삶을 포기한채 살고 있는 청소부 카미유와 입이 험해서 딱 깡패처럼 보이는 요리사 프랑크,그리고 귀족 가문의 영광스런 과거에 짓눌려 기죽은 채 항우울증약에 의존해 살고 있는 필리베르 세사람은  살아야 겠다는 의미도 상실한 채 그날 그날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우연히 필리베르의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그후 그들의 인생에도 변화란 것이 찾아 오는데...과거도 취향도 현재도 다른 세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게 되면서 자신의 가족보다 더한 정을 나누다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람들이 되어가는 과정들이 가슴 찡한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다른 장점은 작가가  좋아하는 책이나 그림,음악, 영화등에 대한 생각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상페의 그림을 보면서 상페가 자신이 표현하려는 것들을 너무도 쉽게 묘사한다고 부러워 하는 장면이나 뒤러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을 보는 것은  새로운 지적 자극거리였다.
사실 그녀 역시 어려워 보이지 않는 묘사 몇 개로  삶을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눈앞에 보이는 듯이 묘사해내는 데엔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작가였다.상상력도 대단해서 책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살아서 말하고 움직이는 듯하다.그런 그녀가 그녀만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프랑스의 현재 문화의 모습을 살짝 엿보게 해주었는데,그것을 읽는 것도  만만찮은 재미였다.
다음은 그녀가 상페의 그림을 보면서  묘사한 것인데, 이 글을 보면서 안나 가발다와 상페 둘의 성격을 어느정도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 "세월이 흘렀고나는 다른 남자와 인생을 다시 시작했어.하지만 말이야 로베르토,난 당신을잊은 적이 없어."부인은 과자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남자가 갓 구워낸 바라루아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모자였다.
그저 펜촉으로 두세번 살짝 스치듯이 잉크 자국을 냈을 뿐인데, 부인의 속눈썹이 팔락 팔락 움직이는게 보였다.게다가 그 눈에는 옛사랑에 대한 미련에서 오는 나른한 우수가 어려 있었고,자기에게 아직도 성적 매력이 있는 줄 알고 있는 아줌마들,파리 교외의 소읍을 주름 잡으며 스스로를 애바 가드너 쯤으로 여기는 여자들, 흰머리를 염색으로 감추는 나이에 아직도 자기에게 남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의 지독한 태연함이 배여 있었다.>

                                                                                 ---장자크 상페,복잡한 속셈---

 한적함, 보듬어 안는 인간의 정과 따스함이 있는 책이다.그리고 가발다의 인생을 이해하는 마음과 선량한 시선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책이기도 했고.서로를 아끼는 넉넉한 마음들이 이뤄내는 기적을 보고 싶거나, 타인에게 마음의 공간 비워두고 살아간다는 것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통속 소설과 같은 결말이지만, 통속소설에는 없는 격이 있으며, 단문으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장면들이 할 말은 다 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지적이며 훌륭한 묘사 역시 압권이다.

여성분들에게 특히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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