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아드 -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
마릴린 로빈슨 지음, 공경희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비교적 얇은 책인데도 읽는데 시간이 걸렸다.

감동을 삭여가며 쉬엄쉬엄 읽는라 속도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답다"라는 것이 책을 처음 읽어 내려가면서 든 인상이었는데,한줄 한줄 심지어는  불탄 교회를 치우려고 모인 신자들이 비를 맞아가며 일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조차 가슴 뭉클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깜부기라는 단어가 문장안에서  적절하고도  매혹적인 말이 되는 것을 보고선 그 단어에 호감이 생기더라는 희한한 경험도 했다.단어들이 인간처럼 살아 있었다는 말이다.(그런 의미에서 역자의 문장력은 찬사를 받을 만하다.)

 

에임스 목사의 마지막 편지라고 커버에 쓰여져 있듯이 이 책은 칠순의 아버지가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되어 있는 소설이다.

너무도 사랑하지만, 커가는 동안 옆에 있어 주지 못할 것이 분명한 아들에게 ,에임스 목사는 조곤조곤 그가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아들에게 자신이 깨우친 것들을 건네주고 있었다.

미래의 아들을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엔 없는 것은 에임스 목사의 품위과 겸손,사려 깊음과 언제나 인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 이성과 신학 사이에서 어디로도 치우치지 않는 지성,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때문이었다.

책 내내 깃들여 있던 긴장감은 한치도 누그러들지 않았고,유치하거나,나르시즘에 빠지거나,쓸데 없는 주제로 빠지거나,격이 떨어진다 싶은 구절도  없었으며,삶에 대한 관조와 통찰은 놀라웠고 , 문장의 아름다움은 어느 한 구절도 허투루 읽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작위적인 냄새도 전혀 없어서 ,소설이 아니라 실존했던 목사 에임스가 쓴 편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며, 거기다 감동도 옵션이 아니었다.

이렇게 완벽하게 쓸 수 있다니,그것도 성경 문구를 잔뜩 (하지만 적절하게 ) 인용하면서도 반발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쓸수 있었으니 ,풀리처상을 탄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적인 냄새가 배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이 한 종교의 경전임에 앞서 랍비들의 삶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는 책이란 것을 안다면 이 책이 단지 종교를 설파하기 위한 책이 아니란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계기가 생각났다.

대학생때 필수 교양 과목으로 듣게 된 강좌에서--듣기 전에는 엄청나게 투덜댔던- 해방신학을 배우게 되었었는데 ,그때 느꼈던 것들이 바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의 냉소를 잠재우고,종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던 그 강의에서 난  종교라는 것이 어쩜 삶을 더 착하고 진지하며 고뇌하며 살아가는 자세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걸 배웠고,그것이 내겐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해석의 틀이 되었었다.

이 책은 바로  내가 어디선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인간적인 삶을 산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런 사람을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작가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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