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2차대전때 독일의 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정신과 전문의의 의사가 증언하는 수용소 체험기.

 엘리 위젤의 "night"를 읽고서 궁금함 맘에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두 책이 비교가 되었는데,덕분에 명확히 그곳 수용소의 실상에 대해 파악을 할 수 있었다.왜냐면 수용소를 두 사람이 그려내자 윤곽이 더 뚜렷해져서  각자의 주관만으로 그려낸 실상을 양면으로 겹쳐보니 현실적으로 보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말하는 수용소에는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었다.
공통점은 당연히 같은 장소에 수용되어 있던 사람으로써 느끼는 온갖 감정들과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기에 별로 특이하달 것이 없었지만 ,내가 특이하게 생각한 것은 다른점이었다.

무엇보다 위젤의 경우는 15살의 나이로 끌려가서는 정말 살기 위해 기를 썼지만,결국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이었고.프랭클의 경우는 어느정도 성인이자 지성인으로 끌려 가서는 때로는 포기도 하고 신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기도 하면서 지냈지만 그는 살았다는 것이었다.그래서인지 둘이 묘사하는 수용소의 풍경은 위젤의 경우가 더 살벌하고 황량하며 가슴이 아플정도로 절망적인 반면 프랭클의 경우는 그래도 위젤의 묘사에 비하면 낭만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의 경우를 보자.

 <"빙판길에 엎어지고 넘어지며 몇 마일을 나아가는 동안 우리들은 서로 부축하고 이끌기를 수없이 되풀이 했을 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그러나 우리는 서로 자기 아내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내 생애 처음으로 시인들이 노래하고 그토록 많은 사상가들이 궁극적인 예지라고 단언했던 진리를 보았다. 그 진리는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열망할 수 있는 궁극적이고도 지고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 그리고 신앙이 전달코자 했던 가장 위대한 신비의 뜻을 파악했다.'인간의 구원은 사랑으로, 그리고 사랑안에서 이루어진다.'나는 이 세상에 남길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짧은 순간이나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명상함으로서 여전히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있다는 이유를 이해했다. .....">

너무도 유명한 구절이었고,그 누구나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글귀일 것이다.한 10여년쯤 전에 내가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다.그때 난 수첩에 받아적고는 가끔씩 꺼내 읽거나 남에게 베껴 주어서 거의 외울 정도었었다.

그런데,가슴 아픈 것은 위젤의 경우는 그런 감정적 사치마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비참하게 죽어가면서 외아들인 자신을 불러대는 아버지를 외면한 죄책감에 평생 괴로워하면서 살아가니까...게쉬타포의 이목을 끌까봐 아버지의 애원을 원망하다가, 간밤에 아버지를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도 안하고 시체 소각장으로 끌고 갔다는 것을 알고서는, 슬픔면서도 또한 안도감이 들었다는 것 때문에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위젤의 경우를 보면 ,한가로이 사랑을 운운하는 프랭클이  감상적이고 순진해까지 보인다.만일 그때 그의 아내가 자신의 옆에 있어서 그녀의 생존이 자신의 걸림돌이 되었다면 그때도 사랑 운운 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정신과 의사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정신적인 변이를 분석할 수 있었던 프랭클과는 달리 위젤의 경우는 순진한 나이에 끌려가 자신의 정신이 변하는 것을 너무도 괴로워하고 굴욕 적으로 느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위젤의 경우는 자신을 변호할 그런 분석기제가 없었던 것이다.고로 그는 자연스런 반응인 무관심이나 부정의에 저항못하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따라서 둘의 책중 위젤의 경우가 훨씬 더 읽기 어렵다.위젤의 고통과 굴욕, 그리고 수치심이 곳곳에 박혀 있으니까.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인간적이지 못했다는 자책이 섞어있는.그에 비해 프랭클의 책은 마치 인간 교육의 장으로서 아우슈비치가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진다.서바이벌 게임에 강제로 참여하게 되었다가 인간의 정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는 무사히 살아남은 자의 보고서처럼 읽혀진다는 것이다.그는 살아남았고 거기다가 인간적일 수도 있었으며 거기다 교훈까지 덤으로 얻었더랬다.위젤에 비하면 남는 장사를 한 듯하다.

10여년전 프랭클의 책을 읽었을 때 난 그의 말은 무엇이든지 진리처럼 느껴졌었고 그 같은 고매한 인간이 되고 싶어 했었다.지금도 물론 그의 말이 틀리다거나 진리가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젠 좀 다르게 보인다.

난 이제 위젤의 편이다.옳은 말만 구구절절하는 프랭클이 이젠 별로 믿음직 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인생에서 닥치는 고통들을 단지 사랑하나 만으로 땡하고 처리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에는 너무도 변수가 많고,어쩌면 인간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박제된 듯한 설교보다 참회하는 인간의 울부짖음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고나 할까?

혹은 어쩌면 인간은 아주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일 것이다.프랭클의 책은 너무도 근사하지만 그처럼 살 수 있는 인간은 별로 없다.그래서 보통 인간인 엘리 위젤이,절규하듯 통곡하는 그가 더 맘이 쓰여지는가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