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 - 찰스다윈 자서전
찰스 다윈 지음, 이한중 옮김 / 갈라파고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찰스 다윈이 말년에 자신의 손자들에게 그의 발자취를 알려주려는 마음으로 가볍게 쓴 책으로 '이 할아버진 말이다...'정도의 뉘앙스를 담은 자서전이 되겠다.

학창시절 못이 박히게 듣긴 했음에도 찰스 다윈의 저서를 읽긴 처음이라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기우였다. 너무 쉽게 쓰시는 바람에 작가로 나서서도 성공하셨겠다 싶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그간 내가 다윈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통해 켜켜히 머리속에 저장된 정보가 다윈과는 거리가 멀었기 문이었다. 다윈이 실은 머리도 그다지 좋지 않고 재능도 없는 부잣집 놈팽이였는데, 운좋게 비글호를 타고 여행을 한 덕분에 과학사에 족적을 남기는 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도무지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본인조차도 그가 그토록 대단한 이론을 내 놓았던 것을 기적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과학계의 풍운아라는 이야기도 말도 안 되는 사실이라는걸 이 책을 보고서 알았으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댄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마디로 다윈이 신이 편애한 별볼일 없는 인물인줄 알고 있었던 나는 그가 정말로 천재라는 사실을 알고는 망연자실했다. 사실을 왜곡하는 소문을 진짜인줄 알고 있던 나는 과연 뭐란 말인가 싶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된 다윈은 내가 여지껏 상상하던 다윈과는 많이 차이가 있었는데 그걸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재치있는 사람이었다. 근엄하거나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고정관념에 박혀 있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둘째는 자신도 잘 모르고 있지 않는가 싶던데 그가 천재란 사실을 말이다. 당대의 많은 진짜 과학자들이 자신을 왜 끼워주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하던데,  물론 그것이 그의 말대로 운때문일리는 없었다. 다른 이들의 장점만을 보고 배우느라 정작  자신의 뛰어난 점을 인식하지 못하던 그로써는 이해가 안 되었을지 모르지만 분명 그는 천재였다.


셋째,그는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의 시대 기준에서 봐도 돋보이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의 정신이었다. 노예제도를 혐오하고,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이를 반박하며,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종교) 믿는 척한다는것에 양심에 꺼려하고, 아귀가 안 맞는것은 지옥에 간다해도 (사실 지옥이란것을 믿지 않았지만) 믿지 않는 그의 현실적이고 솔직한 사상에 마음이 뻥 뚫리는 듯 시원했다. 그를 보니 새로운 사상이 태어나는 것은 그저 영감만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그가 그렇게 혁명적인 이론과 책을 내 놓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의 인격이 밑바닥에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네째,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다윈의 열정과 야망과 집중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니, 그는 결코 운이 좋아서 희대의 과학자가 된 사람이 아니었다.

다섯째는 자신이 가지는 의문에 대해 누구보다 철저하게 자기 검증을 거치는 사람이었으며,그 의문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기에 그런 위대한 사상을 자신있게 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여섯째  그의 가족들에 대한 면면이었다. 화목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꼈으며 자랑스러워 했던 그 가족들을 보자니 얼마나 부럽던지...한없이 겸손하고 자애로운 그를 보면서 난 현재의 다윈의 자손들이 궁금해졌다. 이런 훌륭한 유산을 지닌 선조를 둔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시대를 막론하고 우뚝선 탁월한 지성과 통찰력을 가문의 유산으로 남긴 다윈과 그의 할아버지,아버지를 보면서 부럽고 시샘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마디 이 책을 통해 이성적이고 지성적이며 객관적이고 냉철하지만 인자한,  머리는 차갑되 가슴은 따스한 사람으로서의 인간 다윈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본질을 볼 수 있는 힘과 통찰력'은 아무에게나 저절로 생기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윈 자신은 본인이 왜 뛰어난지,어떤 면에서 뛰어난지 자각하지 못하는 듯 보였지만, 내가 그를 천재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본질을 보는 눈을 타고 태어난 데다 그런 본인의 능력과 힘을 세상의 편견과 사상을 뒤엎어 놓는 일에 올곧이 썼기 때문이었다. 그런 다윈의 진면목을 허술하게나마 알 수 있게 쓰여진 이 책은 유머스럽고 과학자답게 잡소리가 없이 필요한 것만 서술한데다, 편하게 잘 쓰여져 있어 읽는데 부담이 없는 것이 장점이었다. 더군다나 자화자찬이나 나르시스트적인 진술이 전혀 없다는 것이나 다윈의 겸손하고(태생인 듯함) 따스한 성품을 느끼기에 좋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단지, 찰스 다윈이 작정하고 쓴 글이 아니라서 다소 빈약한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이 흠이라고 할 것이다. 보다 세세히 연대순으로 꼼꼼하게,사생활도 시시꼴꼴 다 써주셨더라고 좋았을텐데 말이다. 아마도 당시엔 편집자가 무능했거나 그가 너무도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감히 닥달하지 못하는 바람에 여기서 그친 모양이었다. 다윈의 인간적인 면모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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