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즈 데이비스 - 거친 영혼의 속삭임 현대 예술의 거장
존 스웨드 지음, 김현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를 쓰기 전 별점을 매기면서 잠깐 고민을 했다. 난 마일즈 데이비스를 잘 모른다. 즉 그의 음악에 대해 아주 깜깜한 문외한이라고 보심 된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긴 했지만 내가 그걸 다 이해했는가 하는 것에는 확신이 없다. 고로 내가 매긴 별점은 전적으로 이 책을 쓴 작가 스웨드의 글솜씨를 평가한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이다. 한 사람의 평전을 이처럼 잘 쓴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거의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제목에서 떡 하니 알 수 있듯 군더더기 없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평전이다. 그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음악, 성격, 여성 편력, 가족사, 당대의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류, 그에 관한 전설과 오해들, 천재성에 실수들까지...

 

부유한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타고난 재능으로 트럼팻 주자가 되어 한시대를 풍미했지만 마약과 끊임없은 여성 편력,술,폭력으로 자신의 삶을 파괴시켜나갔던 사내. 수줍음을 거만함으로 무례를 쿨한 것으로 해석해버린 그에 대한 오해와 지루한 것은 단 한순간도 못참았다던 괴팍함, 그리고 직관대로 음악을 이끌어갔다던 일화들은 천재성과 더불어 그의 면면들을 알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연습 없이 곧바로 녹음에 들어갔다는 사람, 음악은 감정이라 반복해선 그 감정을 되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는 사람, 말끔하고 멋진 옷차림으로 여자들에게 성적 매력을 과시했다는 사람, 어떤 여자건 사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정작 자신이 얼마나 멋있는 사람인가는 몰랐다던 사람, 그를 특징짓게 하는 냉소와 솔직함, 질투와 집착, 그리고 어느정도는 나르시스트라고 보여지는 그의 극단적인 성격에, 그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거부하기 힘들었다는 매력과 천재성, 무엇보다 불쾌한 인간성이나 가십들을 매몰시켜 버릴만큼 위대한 그의 음악들까지...어떻게 그가 자라고 대성했으며, 파괴해가다 말년에 다시 팝의 인기 스타가 되어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지의 여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평전을 다 읽고 나니 그에 대한 어렴풋한 그림이 그려진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흑인 음악가로, 그 재능에 더해 시대를 읽어내고 그 흐름을 따라갈만큼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사생활에서는 가히 개차반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한마디로 자기 멋대로 살았던 사람이라는. 덕분에 그를 경외해 다가간 사람들마저도 조만간 등을 돌리기 일 수인 함께 하기엔 힘든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한 것은 마일즈의 일생이 아니었다. 음악가로써의 그의 일생은 특이하달게 없었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에다 그 재능을 말아먹는 마약과 성적편력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때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들이 전설이 되어가는 과정들이나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음악적 가치 때문에 가려지고 미화된 사생활들까지.. 음악적 재능에서 좀 차이가 날 뿐 몰락하는 과정들은 현대 팝스타들과 다를게 없었다.

오히려 감탄했던 것은 그의 일생을 기술하는 저자의 시각이었다. 그는 정말로 음악을 좋아하고 경외해서 이 책을 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지 가십으로 도배를 해도 충분한 그의 일생을 이처럼 차분히 그의 음악적 성과를 충분히 알리려는 취지가 분명한 톤으로 써내려 갈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즉 이 책은 마일즈가 성격 파탄자였다거나 마약중독자였고 섹스 중독자나 어쩌면 에이즈로 죽었을 수도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쓴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음악들을 창조해 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쓴 것이다. 어찌나 우아하고, 지성적이며 ,가차없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쓰려 노력하던지 존경심이 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저자의 시대와 음악에 대한 놀라운 이해와 통찰력, 그 모든것을 분석하고 정리해낸 그의 지식과, 마일즈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일즈의 비문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하는 배심원들이 구성되겠지.내가 살면서 이룬 업적과 저지른 실수들을 저울질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왠지 난 그들이 이렇게 얘기를 할 것 같아.

"글쎄,트럼펫을 저렇게 연주할 줄 아는건 저 놈 밖엔 없으니 그냥 천국에 들여보내자."...

 

 장담컨대 이 책은 마일즈의 천국행을 증명하는 티켓이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가 위대했던 것은 음악때문이지 전설때문이 아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의 천재성에 대해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보다 그를 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었으니까. 본인조차도 천국행을 장담할 정도로 탁월했던 그의 트럼펫 소리와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그가 분투했던 것들을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담아서 말이다. 결국 이 책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성공인 동시에 저자 존 스웨드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재현해내긴 힘들 것이며, 더군다나 저자는 너무도 매력적으로 마일즈의 공과를 그려냈으니 말이다.

"그냥 내버려 둬, 신경 쓰지 말고 듣기나 하라고, 이제 알겠나? 나는 그렇게 좋은 놈이 못 된다네."
그래, 바로 이것이 마일스 데이비스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말일 것이다. 그가 어떻게 살았든지간에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려 한 것은 그의 음악이었다는 것을... 비록 우리가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의 재능에 탄복한 나머지, 더불어 그의 음악에 도도히 흐르는 그의 영혼 이 궁금해 참을 수 없을 때라도, 그래서 그를 더 잘 알고 싶어진다 하더라도, 그는 말할 것이다.

 

알겠나? 그건 다 쓸데없는 짓이라니까. 그러니 난 신경쓰지 말고 듣기나 하게. 그게 내가 가진 전부니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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