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두르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1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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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집어든 계기는 착각 때문이었다. 작가가 "서양 미술사"를 쓴 곰브리치인줄 알았 거든. 세상에...이렇게 특이한 "곰"자로  시작하는 성을 가진 작가가 둘이나 되는줄 누가 알았겠나?(난 작가 이름을 잘 못  외우는 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미술도 잘 아시는 분이 소설도 쓰셨네? 오지랖도 넓고만...하면서 집어들었다 이 작가가 내가 생각하는 그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안 이후에도,한참을 웃고 난뒤 난 책을 내려 놓을 수 없었다.

이유는 오랜만에 만나는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책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줄거리는,희한하다.서른이 된 잘나가는  유조는 어느날 교수 핌코의 방문을 받은 뒤 자신이 다시 10대로 작아져 돌아가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핌코의 손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무능하고 멍청한 선생들의 손에 고문(?)을 당하던 그는 청소년기 그대로 기가 꺾여 달아날 엄두도 못내게 된다.거기에 핌코는 그를 영원히 10대에 묶어두기 위해 현대적 여학생이 사는 집으로 그를 데리고 가고 ,이 모든 핌코의 계략을 꿰뚫고 있는 유조지만 ,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현대적인 여학생의 매력에 첫눈에 빠져 그곳에서 발목을 잡히고 마는데...

 
줄거리로 치자면 사실 이것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는 없다.결국 현대적인 여성에게 도망친 유조가 이모네 집으로 가지만,그곳에서 머슴에 집착하는 친구와 이모 식구들의 가식적이고 허위적인 태도에 질린 주인공이 그 집의 딸을 납치해 도망간다는 ,초현실적인 꿈처럼 정신 사납고 해괴하며, 피카소의 그림을 연작으로 글로 읽는 듯한 그런 책이라고 상상하면 딱 이다.

그로테스크하며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지만, 돌파구를 모색하는 그 진지함에 있어서는 이것이 단지 말도 안 되는 소설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로 숙연해진다.날조된 세상임에도  현실 속의 세상과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이 정색하고 딴지거는 초 강력 울트라 말도 안된다는 소설이 왜 걸작이라는 것일까? 바로 그 줄거리 속에 내재된 작가의 통찰력 때문이다.

이 사람처럼 기발하고 기깔나게 그리고 신랄하게, 현실을 풍자하고 조소하는 사람이 1930년대에 그것도 폴란드란 나라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살만 루시디의 선배 같다.(물론 살만 루시디의 경우처럼 이야기가 풍부하고 화려하진 않다.작가의 인간을 보는 느낌도 다르고...)

이 기막힌 사람은 어떤 것도 그냥 대수롭게 넘어가거나 눈감아 주는게 없다.

우선 학교에 대한 이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자.

서른이 넘어 10대가 된 주인공이 다시 돌아간 학교는 자신이 가까스로 떠나온 그곳과 달라진 것이 없다.

인성 교육 운운하며 별 의미도 없는 것을 반복해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무안을 주는 교사, 개성적인 생각을 하는 교사는 퇴출되어야 한다고, 최고의 학생을 길러내는 것은 프로그램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그런 선생이라고 익살을 떠는 교장.상대방을 한 없이 작아지게하는 기술로 사회의 제대로된 구성원을 배출한다고 자부하는 위선자 핌코 교수 들의 이야기까지... 읽어가면서 내 학창시절이 전 자동적으로 생각 나면서 그러한 실정이 여전히 유효하단 것에 기분이 묘했다.성숙하다 일컬어지는 자들의 미성숙을 까발리는 작가,  삐딱하게 서서는 힐난하는 표정으로 우리네의 현실과 위선, 내숭을 뒤집어 업는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가히 천재적이었다.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시각에는 혀를 내둘를 뿐이다.

이상주의과 감상주의에의 맹신을 불신하는 작가.

순진함의 이면에 있는 잔인함과 무책임성을 들먹이는 사람.

인격적이고 고매한 척을 해대며 시를 읆어대지만 머리속에 단 한가지 생각뿐인  어른들의 위선(핌코를 보라.)을 친절히 알려주고

머슴들을 고상을 떨어가며 교묘히 착취하고, 자신들과는 차별된 사람들이란 것을 따귀를 때리는 것으로 굳건히 하는 이모네 집을 통해 , 귀족주의의 허울뿐인 허영까지 속 시원히 들여보게 해 주는 까발림의 대가.

그의 글을 현대에도 여전히 들어 들어 맞는다.

읽어내려가면서 어쩜 그렇게도 내가 맞닦뜨리는 현실속의 인간들과 똑같던지, 이것이 황당무계한 엘리스의 모험과 같은 책이란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고 , 다른 책에 나오는 이상적이고 교훈적이며 감동적인 세상은 어쩜 단지 우리의 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정답은 둘의 복합일 것이다.
 

좋은 책이었다. 통쾌한 책이기도 했고...

보다 지성적이고 어두운 작가 우디 알렌을 보는 듯도 한, 특이한 작가였고 특이한 책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익살과 해악, 조롱에 정통하고 ,감상적이거나 다른 이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하는 것을 아마도 죄악처럼 피했을 법한 사람의 신랄하고  엄살떠는 소동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어쩌면 웃을 수도 있고 더 잘하면 우리네 세상의 부조리를 뒤집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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