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 매드니스 - 책, 그 유혹에 빠진 사람들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 지음, 표정훈.김연수.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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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지라 제목만 보고 집어든 책이다.

물론 읽자마자 내가 생각하는 그런 책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책을 수집하는데 빠진 사람들에 대한 역사라는 것을 알고는 조금 실망을 했다.그래도 계속해서 읽어내려 간 것은...

우선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과 둘째는 계속 읽어가다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그러니까 로또를 사는 사람과 같은 기분으로) 기대감과 희망,그리고 세째는 이번에 다 못 읽으면 언젠가 다시 처음부터 읽어내려가야 할 거라는 귀차니즘때문이었다. 한 300번 정도는 내가 왜 지금 이걸 읽고 있어야 할까 하는 회의를 해 가다, 끝 장을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책을 다 읽고나자 이렇게 안도감이 밀려들기는 또 오랜만인 듯하다.

 

애서광...책이 좋아서 --오해가 없도록 하자면 이때 책이 좋다는 것은 책의 내용과는 상관 없음--책을 수집하는데 병적인 집착을 보여,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에게 찬탄이나 귀감으로 받들여 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1부는 이들에 대한  역사가, 2부에서는 비교적 근자의 애서광들의 개인적 일대기를 서술했다. 애서광 이란 주제 하나만으로 이렇게 두꺼운 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정말로 신기할 뿐이다. 개인들의 에피소드들로 묶여진 2부가 그래도 읽기는 편한 편이며 가끔 재밌기도 하다.

특히 블룸버그라는 책 절도범은 애처롭기도 하고 희극적이기도 한 그런 인물이었다.

 희귀한 책들과 그 희귀한 책들을 어떻게든 손에 넣기 위해 발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끝도없이 이어지는 것을 읽어대니...한 2부쯤 되니까 희귀서적이라는 것에 대해 무덤덤 해지고(희귀서적이 넘쳐나는 탓에) 곧이어 그 책이 팔려나간 가격에도 아무 반응이 없어졌다 . 그리하여 난 내가  전혀 애서광이 될 만한 자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혀 기대치 못한 우연한 깨달음이었다.

물론 ...그러니까 그런 깨달음이 얼마나 내 삶에 많은 도움이 될까 하는 것과 꼭 알아야만 하는 그런 깨달음이었는가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지만 말이다.

 

 원하는 책을 얻으려고 살인에 ,절도에, 위조에,사기에, 심지어는 결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강박적 수집증, 애서광.

어떤이는 돈이 단지 많아서, 다른 이는 자신의 도서관을 책으로 채워놓기 위해서, 다른 이는 구색을 맞추려고,투자 목적으로, 블름버그 (희대의 책 절도범)같은 이는 대대로 이어지는 유전병 수집증 때문에 책을 사들이고 훔치며 ...다시 파는 사람들. 그 되돌이 , 되돌이.되돌이 ...

집이 휘어지고 무너지며 ,더 쌓아둘 공간이 없어 건물을 다시 짓고, 심지어는 자신이 어떤 책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는채 책을 사들이고 진열하며 전시하고 자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말 아이러니 한것은 이들의 열정으로 우리의 역사가 뚜렷해지고 인간 정신의 증거들이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기여부분이 아니라면 ...이들의 열정은 매력적이지도 칭찬해 주고 싶지도 않았다.

유명 작가의 미 출간본이나  습작들, 서명들을 모은다는 사람들을 보면 ,물론 그것들이 그 작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는 하지만그것이 그렇게 가치가 있는 일일까 싶다..더구나  유명하건 아니건 연대별로 싹쓸이로 모은다는 사람들을 보면 ...미래에도 우리 인간 후손들은 글을 써댈텐데, 그걸 누가 다 읽거나 연구하겠는가?

 

프르스트는 자신의 원고만 남긴채 , 자료로 쓴 노트는 태웠다고 한다.

정신만 남기라...나는 그래서 프르스트가 좋다.

 

다른 시각의 애서광에 대한 언급이 있는 책으로는' 헌 책방마을 헤이온 와이'가 있다. 이는 전문 책장수 시각에서 쓰여진 것으로,그렇게 열정적으로 모인 책들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사태들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그 넘쳐나는 책들에 대해 이 작가의 견해와 다른 시각도 접할 수 있다.--부분적으로는 쓰레기라는--

애서가에 대한 이야기로는 '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책이 있는데 ,열혈 독서광의 입장에서 유머스럽고 군더더기 없이 쓰여져 재밌다. 얇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무시하지 못할 것은

바로 작가가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대체로 재미없으며 ,정신 사나울 만큼 헝클어진 이야기를 이토록 반듯하게 정서해 놓다니 , 그것만으로도 이 사람의 지력은 대단하다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품위있고 절도 있으며 무게 있는 글솜씨가 이 책의 무게를 더해주는게 틀림없었다.좀 더 신랄하게, 명예훼손소송을 염두에 둬가면서 글을 썼더라면 더 재밌었을텐데, 너무 점잖다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더불어 이 책을 번역하신 분들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는데 이걸 번역했다니 ...정말 대단한 인내력이다.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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