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우선, 작가가 놀랄정도로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먼저 해야 겠다.
문학적인 르뽀라고 하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여서, 소설로 봐도 무리가 없을만큼 전개도 빠르고 군더더기 없으며 ,개개 인물들의 내면을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설득력이라든지, 벌어지는 사건들을 (처첨할 정도로 비극적인 것이건, 다소 희극적인 것이건 간에) 명료하게 묘사하는 것등 도무지 흠을 잡으려 해도 흠이 없었다.
기자 출신이라는데, 대단한 통찰력에 글발까지 갖춘 여성작가가 탄생한 듯해 반가울 뿐이다.

 책의 발단은 9,11테러후 2001년 아프간에 도착한 작가가 한 책장수(술탄)를 만나게 되면서였다.아프간의 문화시장을 개척하겠다는 포부를 지닌 ,장사꾼으로서 꽤나 사회실정에 빠삭한
술탄의 개성에 매력을 느낀 작가는 그의 집에 초대되어 간 뒤, 아프간의 현재 가족의 모습을 취재해 책을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술탄의  허락을 받아 그의 집에 기거하면서 그들 가족들의 면면을 기록해 나간다.
대단히 매력적인 면이 있지만(사회적으로는) 가족들에겐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 술탄, 쉰의 나이에 16살짜리 두번째 아내를 맞고, 사업에 대해서라면 편집적인 성향을 여지 없이 보여주는 그는 아마도 읽는 독자에게 지탄과 혐오, 비난을 한몸에 받을 만한 그런 인간이지만 죽을 때까지 자신이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 만한 그런 사람이다.
자기 멋대로 사는 것에 (때론 남을 짓밟고 ,이용하며 ,무자비하지만)철저히 익숙해져버린 가부장제의 전형적인 아버지상이었다.그리고 그런 아버지에 억눌려 사는 다른 가족들.
집안의 온 갖 허드레일을 하면서도 얹혀 산다는 말을 듣는 여동생들.
16시간이 넘게 조그만 가게에 매여 공부도 못하고(술탄이 허락하지 않아서) 일을 해야 하는 술탄의 어린 아들들.
첫번째 아내는 남편을 믿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남편이 어린 (자기 아들보다 어린)아내를 맞자 찬밥신세가 되어버리고, 집이 가난해 원치 않는 남자에게 돈에 팔려 온 두번째 아내는 이제 아들을 못 낳으면 남편이 또 다른 아내를 얻을까 벌벌 떨며 지내고,가족간의 우애를 강조하지만 자신의 변덕대로 다른 친척들이나 가족들을 내치거나 다그치는 술탄 덕분에 가족들은 고통과 불안속에 살지만 딱히 헤어날 길이 없는데....

 
여성들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회, 권력을 잡기 위해 사람들이 죽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회,종교라는 이름으로 갖은 악행을 자행하면서도 그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도 모르는 무지까지,이 책은 아프간의 현 주소를 쉽고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우리나라의 모든 것들에 관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뇌물을 받는다고 ?뭐, 어떤가? 적어도 사람을 개처럼 죽인건 아니잖아?
여자를 우습게 안다고? 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린 그래도 천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무엇보다 종교가 우리 나라를 지배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영혼과 성령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되어 지는 종교에게 과도한 힘이 부여될 시 오히려 인간을 피폐하게 하고 무지하게 한다는 것을 유감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준 것이 이 작가의 탁월한 면이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그들은 무식하고 무지하며 감정이 있을 만큼 똑똑하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묘사하고 그려낸 것이 무엇보다 이 책을 보다 더 설득력있고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사회의 제도가 인간성을 제약할 때 부당함을 알면서도(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부당함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어쩌지 못한채 개인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마치 옆집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그려내는 것을 보니 작가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재밌고 유익하며 잘 쓴 보기 드문 수작이라 아프간의 현재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읽기엔 부담이 없을 듯하다. 사회정치적 맥락이 아니라도,한 가족의 초상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것으로도 대단한 책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 밖에는 없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산체스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두 책이 비슷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 서로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너무도 서로를 적나라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들, 가족을 사랑한다지만 또 자신의 욕망이 먼저인 사람들, 서로를 원망하다 결국  해체의 길을 가는 것등이 말이다.
재밌기는 이 책이 더 나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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