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포스트, 1663 - 보급판 세트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한 성직자의 죽음을 두고 네 사람이 각기 다른 회상을 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역사 추리물.
잘 짜여지고, 통찰력 있는 말들이 넘쳐나 밑줄을 팍팍치게 하는 이 흥미 진진한 책은 이탈리아에서 온 상인의 아들 콜라,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돌아가신 아버지의 누명을 풀겠다며 미쳐 돌아다니는 프렛스콧,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청년의 살해범을 잡겠다며 복수의 칼을 가는 암호풀이 전문가 월리스, 그리고 타칭 고물수집가 혹은 자칭 사학자인 앤소니 우드의 증언을 차례로 들려주면서 17세기 영국을 무대로 혼란스런 정치 상황속에 벌어진 살인을 둘러싼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지적 추리물이다.

 이 책에서  네명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확신을 가지고 지목한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처형이 된 것은 악명높은 반란자의 딸 사라이다.
객관적인 진실은 음모와 거짓속에서 존재를 잃어가고, 그들 네 명은 자신만은 진실을 알고 있다면서 자신의 말을 믿어 달라고 호소하는데, 과연 누가 범인이며 만일 사라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녀는 왜 자신이 유죄라고 자백을 하고 교수형에 처해진 것일까?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교하게 잘 짜여진 책이다.
각 증인의 진술이 끝날 때마다 전혀 다른 진실이 등장해,각자의 증언이 더해질 수록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거기에 더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전개됨으로써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책은,사소한 살인사건이 정치적 음모로 인해 진실과는 멀어지게 되어가는 과정과  등장인물들의 정체가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등  끝까지 긴장감과 긴박함을 유지해 나가는 수작이기도 하다.

 진실이 왜곡되어 가는 과정들,증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일그러진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며,  각 개인들은 선택적인 기억 재생으로 현실을 왜곡해 해석해 나가는 것들을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그 와중에 사라의 모습은 가여운 하녀에서 매춘부로, 주술사로, 음모의 희생자로, 그리고 신의 형상을 보여주는 희생양으로 등장한다.
놀라운 것은 이야기가 더해갈 수록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이 또렷한 윤곽과 풍부한 색채를 더해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정의란 현실화될수 없는 것이고, 진실은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권모술수와 욕망,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한 모습들을 줄줄이 등장해 인간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가를 역설하는 것 같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정의와 신의 자비와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끝을 맺는다.경이롭기 그지 없는 글솜씨였다.
그러니까, 네개의 추한 불완전한 그림이 모이자 상상치 못했던 걸작이 탄생한다고나 할까?
마법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인간의 모순들과 허영, 줄지 않는 증오,편견, 잔인함,악들이 천연덕스럽게 등장해 "그래, 현실은 그런 것이지 하는 체념을 하도록 만들다가 결론은 신에 대한 경의와 인간성에 대한 믿음으로 막을 내리는 구조는 사실 대가들이 그들의 대표작속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소설에서 이런 전개 구조로  설득력과 개연성을 가진 채 성공하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라서(르네 지라르의 책을 참조하시기 바람.) 난 이 책을 보면서 놀랄 수 밖에는 없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의 작품속에서 대가의 솜씨를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감동적이고,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들을 마치 작가 자신이 살았던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냈으며 그 시대의 복잡한 정치와 평등한 사회를 실현해 가려고 하는 반란군들의 절규까지 사실적으로 덧붙인 매우 탄탄한 작품이었다.
재밌으며, 지적이고, 감동적이며, 교훈적이고, 인간에 대한 통찰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도무지 헛점이 안 보이는 책이란 것도 언급을 해야 겠다.

 정의가 사방 팔방을 헤메다 실종하는 듯 보이더니 결국에는 정의가 구현되는 과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는 책, 계속해서 반전을 들이밀며 독자들의 단순함과 순진함을 비웃다, 겸허하게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끝을 맺는 책이니,두뇌 회전을  즐기시는 분들에게 강추!!!
작가의 17세기 영국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읽어가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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