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써루의 유라시아 횡단기행
폴 써루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기차가 지날 때면 나는 늘 거기에 타고 있는 내 모습을 꿈꾸었다.>

그래,기행문이라고 하려면 이 정도는 되야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책이다.

 책을 펼치면 그가 다녀온 여정을 따라 지도가 그려져 있다.
런던에서 ~~~~쭈르르 내려와서 이스탄불,카불,폐샤와르,델리,실론,방콕을 거쳐 싱가포르 찍고 사이공에 동경, 삿포르로 갔다가 ,하바로브스크에서 다시 시베리아 열차를 타서는 모스크바,그리고 런던까지, 넉달동안 주로 기차, 마지못해 비행기,택시,버스,열차, 다시 마지못해 배를 타고 항해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기차에서 만난 여행객에게 지금 이 책을 쓰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하자 그는 작가를 미친사람 취급하면서 더 이상 상대를 안 해주었다고 한다.
그 사람의 생각으로는 누구나 여행을 하기 때문에 기행문은 불필요한 것이라나?
일면 수긍가는 말이다.
이런 수작 기행문이 가끔 씌여지지 않는다면 전적으로 옳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 여행객의 무례도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여행을 가지만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만큼 드무니,자신이 만났던 "그" 미치광이가 이런 수작을 쓸만한 재목인지  짐작 못했다 한들 어디 그게 그의 탓이겠는가 ?

 쉽게 쓴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의 글쓰기는 자연스러웠다.
작가가 되지 않으려 했다가 나이폴의 (노벨상 수상작가--이 작가의 책도 강추천!) 책을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던데, 어떻게 이런 글솜씨를 가지고도 작가가 되지 않을 생각을 했을지 이해가 안 될 정도다.
풍경을 눈앞에 보여 주듯 묘사하고,스쳐 지나가는 여행지와 여행자들의 특성을 즉시 간파하는 탁월한 통찰력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면서도 반발을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귀여운 설득력까지.

나서서 고자질도 하고,이간질도 시키는 얍삽함과 고상이나 위선 떨지 않는 솔직함 ,비겁함엔 냉소를 가차없이 날리는 지성,가난한 아이들의 비참함엔 안스러워 하는 연민,그리고  현지인들의 과장과 위선,허풍,불합리와 광기에 네네하면서 넘기지 못하고 꼬박꼬박 토를 다는 삐딱선에다 여행객엔 어울리지 않는 게으름까지 그의 인간적인 모습에 웃고,공감하며,기막혀 하면서 읽었다.

특이한 것은 마치 내가 그와 함께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난을 보곤 나도 가슴이 답답했고,악취에 코를 움켜쥐었으며,아름다움 경치엔 넋을 잃고,여장 남자 창녀를 만났을땐 혼비백산 해 도망가고,지뢰가 터지는 와중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베트남 사람들의 질긴 생명력에 혀를 내둘렀으며,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탈출을 꿈꾸게 만든다는 싱가포르에선 갑갑함이 절로 느껴졌다.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 나중에 나쁜 소리를 쓰려면 손이 벌벌 떨릴텐데 하며,부담스러워 하는 그에게 미소도 보내가며  함께 한 여행이었다.
그러니 천천히 지렁이 기는 속도로 읽게 되더라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일른지 모른다.
넉달동안 아시아 대륙을 기차로 횡단한것이 아닌가?
그걸 따라다닌 셈이니 ,좀 지치기까지 하더라 하는 건 단지 내 기분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그는 더 이상 아무것에도 감동을 못 받겠다고 투덜대며 열차칸안에서 잠만 잔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질만큼 지친 것이다.
그는 말한다.
그가 속으로 늘 생각했던 것을 실제로 경험했다고.
상상과 실제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게 뭐 대수겠느냐고 반문한다.
사기충천해서 아시아 일주를 나섰던 사내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여정을 흐믓하게 회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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