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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생의 찬미 1~2 - 전2권
서자영.강헌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3월
평점 :

생의 찬미 ㅣ 서자영·강헌 ㅣ 고즈넉이엔티
"그녀는 총명했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거침이 없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고, 허세도 없었다. 단지 그녀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만이 중요했다. 남들의 수군거림이나 그 장소의 숨은 의미 같은 건 그녀에겐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아마 그녀의 삶에 '경계'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아니 경계가 뭔지도 모를 것이다. 단지 제가 원하면, 그뿐이었다. 제가 하고 싶으면, 그게 전부였다. 행동에 스스럼이 없었으나 천박하거나 저열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기준이나 잣대는 심덕에겐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심덕은 다른 차원에서 존재했다. 세상의 언어로 그녀를 단정 짓는 것은 오만이었다."(생의 찬미1 354p)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은 김우진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둘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비관해 죽음을 선택했다고 생각했고 윤심덕이 죽기 직전에 녹음한 '사의 찬미' 앨범이 그들의 죽음 후에 발매되자 그 판매량이 대단했다. 덕분에 미미하던 축음기의 판매마저 덩달아 올랐다. 그런데 윤심덕과 김우진이 배 위에서 바다로 뛰어들며 맞이한 죽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새롭게 떠오른다.
부산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에서 뛰어내린 둘을 봤다는 증언과 그들이 쓴 승선 명부의 이름(김수산과 윤수선) 그리고 객실에 남아 있던 가방만으로 김우진과 윤심덕이 情死했다고 단정지었던 것인데 배 안에는 그 둘이 원래 없었고 유서가 없었으며 당연히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 둘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길 둘은 결코 내연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과 죽음 이후 유럽으로 도피했다~ 이탈리아에서 잡화점을 하는 동양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는 소문이 꾸준히 있어 그 둘이 살아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생의찬미>는 윤심덕과 김우진이 살아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쓴 작품이다.
교회에서 알게 된 광혜여의원의 책임자인 외국인 홀을 통해 심덕은 영어를 배웠고 의사가 되는 조건으로 홀에게 학비를 지원받아 평양여고보에 진학한다. 의사가 되는 것이 싫었던 심덕은 1년 후 음악을 하고 싶어 경성여고보로 진학하고 졸업 후 지방의 음악선생으로 근무한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이 있고 야심이 컸던 심덕은 졸업하지 않은 평양여고보 동창회에 참석해 학무국장을 만나 관비유학생을 뽑는 시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시험에서 1등을 한다. 동경의 아오야마학원에서 공부하게 된 심덕은 일본 귀족출신인 테츠와 사랑에 빠진다. 테츠는 심덕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심덕과 영원을 꿈꾸었다. 지극한 사랑을 받았고 청혼도 받았으나 심덕은 테츠를 버리고 조선으로 와서 무대에 오른다. 그녀는 조선의 첫 소프라노 가수를 꿈꾸었다.
추측과 소문으로만 나돌던 이야기들이 가능성이라는 명제를 부여받아 윤심덕과 김우진의 죽음이 '기획'에 불과하다는 설정은 꽤나 흥미롭다. 등장인물들의 개연성 넘치는 서사와 함께 꽤 탄탄하게 뿌리를 만들고 있다.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워낙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고 아직까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기에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들의 정사 이야기는 그들이 조선시대의 엘리트들이었고 만약 살아있다면 조선의 문화수준의 위상이 꽤 높아졌을 기대가 있기에 그만큼 그들의 죽음이 주는 상실감이 꽤 컸어야 하는데 오히려 몰래 한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 그리고 그들이 결국 죽음으로 사랑을 관철하려 했다는 점에만 초점이 맞춰진, 덧붙여 음반과 축음기의 발매로 상업적인 이슈로 마무리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작가의 글쓰기 시도로 조금은 위로가 되는 마음이다.
심덕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생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에 배팅하기로 결심했다.
생과 사는 정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지장처럼 맞닿아 있었으므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생은 곧 사였고 사는 곧 생이었으니,
생에서 얻지 못했을지라도 사에서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동아일보 기자인 남상철의 조사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조선사회의 사회적 분위기, 지역 분위기에 대해 꽤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윤심덕이 자유연애주의자로 홍난파와 이용문, 김우진 등과 연애를 했다고 하는데 윤심덕의 입장에서 본 그들과의 관계, 그녀에게 있어 사랑의 의미와 일본인 테츠와의 사랑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무서울 만큼의 집착도 보이고 그러면서도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일본인 남자 테츠의 사랑과 순수하면서도 우직하고 강한 남상철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정작 죽음의 동반자였던 우진과의 사랑은 다루고 있지 않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마다의 시선과 캐릭터가 잘 그려져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스터리한 죽음일수록 호기심과 궁금증이 크다. 그 호기심과 궁금증에 적당한 대가를 돌려받은 듯해 만족스럽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는 관동대지진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다. 조선인학살사건에 대해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쉬웠던 건 생에 대한 집착이 컸고 무대위에 오르는 것을 갈망했던 그녀가 모종의 기획을 수용했다는 작가의 의견은 조금 부족하다는 개인적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