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옥 - 노비가 된 성삼문의 딸
전군표 지음 / 난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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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옥 ㅣ 전군표 ㅣ 난다




"그런데 왜 의로운 일을 하는 이가 무참히 죽어야 하는 겁니까. 정통을 지키려고 한 것이 옳은 일이 아닙니까. 왜 하늘은 옳은 자를 돕지 않습니까. 하늘은 왜 말이 없는 겁니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이 세상의 시간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우주 만물은 영원하고 세세대대 생명은 이어진다. 그 긴 시간 속에서야 이기고 지는 걸 판별할 수 있다. 또 세상살이에서 정의가 꼭 불의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사바세계에서 짧은 시간으로 보면 선이 악에게 질 때가 더 많다. 악은 이기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조차도 교활하고 부도덕하지만 선은 그리할 수 없기 때문에 판판이 악에게 지고 만다. 그런데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이긴다는 것도 진다는 것도 별 의미 없다. 죽음과 삶이 하나이듯 이 모든 것이 형체가 없어 無라고밖에 할 수 없다."

"도대체 충절이 무엇이기에 그걸 지키고자 남자들은 삼대가 다 죽어나가고 여자들은 모두 노비가 되어야 하는 겁니까?"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귀한 일이다. 참혹한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를 이어 우러르는 것이다. 나부터도 그 참혹한 일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어찌 그들이 받아야 할 존숭을 같이 받을 수 있겠느냐? 그 삶은 단지 잘 먹고 잘살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소망과는 다르다. 육신을 떠나 고매한 정신으로만 가능한 거다. 그 사람들은 대신 영원한 삶을 산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구나.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아도 매 순간 우리는 죽음으로 향 해 가지 않더냐. 그들도 얼마 안 가 제 운명 속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아무리 용을 쓴들 세조도 한명회도 머잖아 죽을 것이다. 남는 건 이름뿐이다. 짧도다. 부질없도다. 악이 찰나라면 선은 영원한 것..... 너는 어떤 사람이고자 함이냐."




학창 시절 사육신, 생육신에 대해 다들 들어봤고 그에 해당하는 이름을 외우려고 애썼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수양대군과 단종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각색하여 만들어졌다. 흔히들 우리가 세조라고 부르지 않고 수양대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은근 천륜과 정통성을 뒤집어 스스로 왕이 되려 했던 그를 낮춰 보기 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그의 왕위찬탈은 대를 이어 손가락질 받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손가락질보다 스스로가 잘못되었음을 아는 것이 더 큰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꿈에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원혼이 나타나 침을 뱉은 이후로 피부병증이 심해졌다고 하니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되짚으며 크게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조의 피부병이 심해져 치료를 위해 온천욕을 다녔고 문수보살상 앞에서 100일 기도 후 목욕을 하는데 지나가던 동자승이 등을 밀어줬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행여나 상감 옥체에 손을 대고 흉한 종기를 씻어드렸다는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을 받으려는 세조에게 동자승은 상감도 오대산에서 문수동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 했다고 하니 이 둘의 비밀을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상에 금박을 새로 입히던 중 불상 안에서 피와 고름이 묻은 세조의 적삼과 발원문이 함께 발견되어(1984년) 세조의 피부병이 사실이었고 아주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살아생전에 자신의 잘못에 대한 벌을 받고 뉘우쳤다면 그나마 세조는 맘 편히 죽지 않았을까? 한 나라의 왕의 자리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니 권력으로 인명을 해하며 얻은 자리가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조는 큰 아들인 의경세자를 잃고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은 즉위 후 13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해양대군은 한명회의 딸과 혼인하여 원자를 낳았지만 세자빈과 원자 모두 생을 달리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세조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들이 되었다.




수양대군은 단종을 상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세조로 즉위하였으나 후일 단종을 사사하고 사육신을 모두 처형한다. 그리고 성삼문의 딸 효옥은 박종우 대감의 노비로 가게 되는데 해양대군은 박종우 대감의 집에 찾아와 효옥을 부탁한다. 어쩌면 둘은 부부의 연을 맺었을지도 모를 인연이었고 효옥을 본 순간 해양대군은 효옥을 마음에 두었었다. 한 편 세조의 피부병이 심해지고 박종우 대감의 아들 박선규는 효옥을 탐내기 시작하는데...




<효옥>은 세조와 단종의 이야기를 뿌리로 하며 성삼문의 딸 효옥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소설화시켰다. 성삼문이 사육신으로서 고문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 후 그의 부인과 딸은 운성부원군 박종우의 노비로 살아가게 된다. 하루아침에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성종 때 성삼문의 부인과 딸 효옥은 면천된다. 20년이나 노비로 살았던 그들이다. <효옥>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일은 해양대군, 즉 예종은 둔전屯田의 민경民耕을 허락했으며 훈구파와 대립하였다. 개혁정치를 꿈꾸었던 왕으로 만약 그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숙종이나 영조처럼 권력형인 왕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조금 더 빠른 개화의 물결을 타지 않았을까. 그의 죽음이 훈구파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하니 나라가 개혁되었을 때 가장 손해를 볼 것은 그들 훈구파였기 때문이다.



<효옥>은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흥미롭게 서술된 책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며 역사 속 인물들의 생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들을 선사한다. 역사가 어려운 청소년들이나 역사를 재미있게 만나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추천한다. 다만 <효옥>은 소설이기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인 측면인지는 스스로 필터링 해야한다. 자칫 이야기에 빠져 소설을 사실로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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