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카의 여행 l 헤더 모리스 l 김은영 옮김 ㅣ 북로드
"이곳엔 얼마나 있었나?"
"1942년 4월 23일, 막 열여섯 살이 되고서 이곳에 왔어요."
"꽤 오래됐군,"
"끝이 보이지 않았죠."
"1942년 4월부터 여기에서 무엇을 했지?"
"살아남는 일이요."
"그렇군.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했지?"
"살아남기 위해 일했습니다."
"간단하게 묻지, 나치와 잤나?"
"그들은 나의 적이었습니다. 나는 이곳에 끌려온 전쟁 포로였고요."
실카는 겨우 열여섯 살이었고, 그들은 악랄한 나치였다. 실카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자신을 뺏겨가며 살아남았지만 아우슈비츠를 점거한 소련군은 그녀에 대한 기록과 그녀가 다른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감옥에 가두고는 노역 15년형을 선고한다. 그녀는 감옥에서 나와 시베리아 보르쿠타 굴라크 수용소로 떠난다. 그녀는 언제쯤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걸까? 그녀는 열아홉이 되었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가혹하지만 어린이와 여성들에게는 천형 같다. 소녀인 실카가 독일군의 노리개가 되었어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왔지만 그 정신력은 그녀의 자유를 반기지 않았나 보다. 장소만 달라졌을 뿐 다시 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찾아온 기회를 그녀는 멀리한다. 그것은 그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다른 여성들과 달리 장교의 눈에 띄었던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강인함으로 그 트라우마를 이기고 간호사 훈련생으로 일한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생활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던 걸까? 굴라크에서도 다른 여성들을 배려하고 여러 언어를 할 줄 아는 실카는 막사의 여성들을 도와준다. 마치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속 랄레가 했던 것처럼 막사의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려 애쓰는 실카.
각종 사유로 잡혀온 그녀들. 모두들에게 적대적 감정을 표하는 여성도 있고 실카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여성도 있다. 그럼에도 항상 그녀들을 보호하려 애쓴다. 언니를 잃고 혼자가 된 실카. 부모를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일까? 실카에게는 막사의 그녀들이 실카가 지켜야 하는 가족이 된다. 시베리아는 매우 추운 곳이다. 추위와 두려움, 노역,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남자들을 받아내야 하는 실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 생각 하나로 버텨낸다. 이런 강인함은 간호사 훈련생이 되어서도 빛이 난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무너진 탄광으로 들어가는 실카의 용기가 바로 그녀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인 듯하다. 또한 자신에게 온 마지막일지 모르는 기회를 친구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는 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