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주의보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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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주의보 I 정진영 I 문학수첩




대한민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실패는

오직 성공한 자들이 말하는 실패다.

실패자들이 말하는 실패에 귀 기울여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실패는 세상에 수많은 사소한 실패 중 하나로

남게 될 것이다.




<매일한국> 디지털뉴스부의 박대혁 기자는 인턴기자들의 교육을 맡았다. 그중 김수연은 나이가 스물아홉에 부장인턴이라는 별명을 지녔다. 지방대 출신응로 여러 연론사의 인턴을 거쳤기에 <매일한국>이 마지막 기회라는 조바심을 갖고 있었다. 며칠 후 박기자는 국장과 둘이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뒤에 인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체로 국장은 "실력은 김수연이 뛰어난데 학벌이 모자라 채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하게 되고 이를 들은 김수연은 다음 날 매일한국 사옥 5층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사건은 대서특필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유서에 남긴 No Gain, No Pain이란 글귀로 페이스북에서는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계정이 만들어진다. 한국의 비정규직에 대한 기업의 처우부터 부당해고 등에 대한 글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면서 기업들은 우왕좌왕한다. 김수연의 동생은 <매일한국>을 상대로 고소하기에 이르고 <매일한국>은 이번 정규직 전환형의 인턴기자들을 전부 채용할 계획이었으며 인턴 과정 중에 차별은 없었다고 입장을 밝힌다.



박대혁 기자는 정규직 전환형의 인턴이었던 김원용이 김수연이 죽자 인턴직을 그만두었고 LED 반도체 업체인 여산전자의 막내아들이며 그가 사귀는 여자가 매일한국 오너의 조카딸이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국장에게 확인하니 국장은 당장 오너와의 식사자리를 마련하며 다음 날 기조실로 발령이 난다. 뜻밖의 인사로 박기자는 당황한다. 한편 오너는 김수연 사건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어떠한 변명없이 대표직을 사임한다. 오너의 이러한 행보는 만년 적자 언론사를 취임 첫 해부터 흑자로 돌려놓고 차세대 리더라는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너가 정치계에 입문하려는 수순이었을 뿐이다.



여산전자의 아들을 <매일한국>에 무리없이 입사시키려했던 모종의 비리가 있었고 그것을 알게 된 박기자를 적에서 아군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는데 온라인에선 No Gain, No Pain 계정을 악용하며 여기에 더해 김수연의 죽음이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은데다 오너의 행보로 김수연 잘못도 있었을거란 분위기로 변질된다. 박기자는 고민한다. 자신이 이사건의 앞에 나설 것인가 상황에 순응할 것인가?





무조건 침묵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 조직, 아니 대한민국에서 힘없는 놈의 용기만큼 

공허한 것도 없더라.

네가 문제를 지적하고 쿨하게 조직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동요는 잠깐 뿐이야.

곧 누군가가 네 자리를 대체하게 될 테고,

조직은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굴러가게 될거야.




<침묵주의보>를 읽으며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한참 커리어를 쌓아갈 무렵은 IMF로 나라가 힘들 때였다. 물론 회사들도 부도를 맞았고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내 밥그릇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으로 직장을 다니며 밤에는 영어학원 새벽에는 일어를 공부하던 그 때, 여직원들의 승진이 너무나 어려워 반드시 승진하고자 했고 나의 이 투쟁의 길을 후배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여전사처럼 뛰어다녔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청년들을 생각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처우가 제자리 걸음을 하다못해 역성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하고 화가 났다.



수연의 죽음과 관련해서 박기자는 자신의 선배가 더 흥분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차분히 선입견을 가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회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가 아니고 이익의 충돌이라고. 박기자는 혼란스럽다. 어디서 용기를 내야하고 어디서 물러서야할지. 입을 다물기에는 불의를 참아야 하고 입을 열자니 자신의 밥그릇을 뺏길 것이고.



열정적으로 일하던 기자들의 매뉴얼이 되었던 국장은 지금은 기생충이 되었고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고 싶던 선배는 기자직을 그만두고 이 나라를 떠난다고 하고 실력은 있으나 학벌로 인해 부장인턴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수연, 이러한 캐릭터들이 너무나 생생해 책 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현재 비정규직과 인턴제도에 대한 비꼬임, 조직의 악의 축들에 대한 선의의 입장을 너무나 명확한 필체로 보여주는 정진영의 <침묵주의보>. 기자인 본인의 경험을 그대로 녹여 놓은 현장감이라든가 사회의 부조리를 밝히는 일에 앞장서는 언론사의 뒤떨어진 시대상은 현재 우리나라가 어디쯤 서있는지 좌표를 알려준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사건을 튼튼한 필력으로 무장한 현실지적은 비단 기자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근로자가 모두 공감할 이 시대의 자회상을 그리고 있다. 오늘 밤에 JTBC에서 '허쉬'라는 제목으로 드라마화 되어 방영된다고 하니 드라마는 원작과 달리 어떻게 그려갈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용기는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아니다. 

두려운 데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자세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만용이다.

나는 대책 없이 포화 속으로 뛰어드는 군인이 용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용기 중 하나는 

직장인이 사표를 제출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사표 제출은 앞으로 먹게 될 밥의 질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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