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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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I 채사장 I 웨일북




"자아와 세계는 하나다."

우주의 창조와 소멸을 말하고 물질의 탄생과 생명의 의미와 모든 존재하는 것의 가치를 논하는 자,

이렇게 놀라운 초월적 존재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당신이다.

당신이 세상을 보는 유일한 자이고, 세상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최후의 존재다.




저자는 이번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에서 세계와 자아는 하나다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는 왜 이야기 하려고 하는가? 바로 인문학이라는 거대한 사유가 다루는 세 가지 범주가 이 명제 안에 함축되어있기 때문이다. 세계란 무엇인가, 자아란 무엇인가, 세계와 자아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은 한 권으로 현실 세계를 통달하는 지식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는 한 권으로 현실 너머를 통찰하는 지식 여행서라는 부제가 달렸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은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라는 부제가 달렸다. 다시 말하자면 지대넓얕 1은 현실세계를 지대넓얕 2는 현실 너머를 다뤘는데 시기 상으로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다뤘고 세계관은 이원론의 시대였다. 지대넓얕 0은 고대부터 고대 이전까지 다루며 이 시기의 세계관은 일원론(세계와 자아는 하나다)의 시대였다. 지대넓얕 0은 우주, 인류,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에 대해 다룬다.  



다시 저자의 이 책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서 말하자면 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며 그것을 위대한 스승들의 거대사상을 통해 밝히려한다. 그는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때문에 우주부터 살핀다. 오랜시간동안 우주는 유일하고 시간의 시작이 빅뱅부터라고 생각해왔지만 최근의 연구로는 시간 이전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다중 우주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이런 우주를 이해하려는 것, 왜 우주를 이해하려는가에 대한 답으로 "그것은 우주의 자기반성 과정이다."라고 한다. 그는 이제 인류에 대해 얘기한다. 138억년의 시간 속에 지질 시대를 살펴보며 최초의 생명 탄생을 지켜보았다. 인류의 조상을 만났고 문명이 탄생되며 문명으로 인해 인간은 유례없는 풍요와 안전을 보장받았지만 인간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이로 인한 새로운 갈등과 욕망이 인간의 내면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고대인의 삶도 지금 현대인의 삶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저자는 베다와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를 통해 위대한 스승들을 알아본다. 그들은 축의 시대에 등장했다. 축의 시대란 카렌 암스트롱에 따르면 인류 정신사에 거대한 전환점이 된 시대였다. 4천 년 전, 인도 서북부 지역에 정착한 아리아인의 경전이었던 베다는 인도 사상의 근간을 이루며 베다, 우파니샤드, 힌두교로 전통이 이어졌다. 그 핵심은 범아일여였다. 범아일여란 '세계와 나는 하나다'라는 의미이다. 첫 여행지로 인도 대륙을 횡단했고 다음은 중국 사상의 대륙을 횡단한다. 바로 도가에 대해서 알아보는데 노자와 공자, 그들이 가졌던 근본물음은 동일했다. 중국 사상에서는 인도의 범아일여 사상처럼 우주와 자아의 관계를 밝히고 자아의 내면에서 우주의 본질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를 만나보았다.



불교를 통해 붓다의 가르침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세계나 자아를 인정하지 않고 자아의 내면 안에서 세계의 실체를 이해하려는 일체유심조를 알아보았다. 인도와 중국을 아우르는 고대 동양의 근원적인 사유방식은 자아와 세계를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일원론에 기반을 둔 것을 알아보았는데 과연 서양은 어떨까? 서양은 동양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고대에서 시작된 이원론적 세계관은 철학과 종교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근대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18세기 칸트가 초월적 관념론을 제시함으로써 일원론적인 탐구를 시작했다. 동양은 고대의 일원론으로 시작해 근현대에 그것을 잃어버리고 서양의 이원론을 받아 들인 것에 비하면 서로 상반되는 것이다.

플라톤 이후의 서양 철학이 세계를 이데아와 현실로 나누고 세계와 자아를 양분해 온 것처럼 기독교는 세계를 천국과지상으로 나누고 신과 인간을 양분해왔다. 이러한 면은 타 종교에 대한 불관용과 이단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통해 이루어진 면이 있다.






채사장, 그와의 동행은 길었고 어려웠으며 반갑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으며 새롭기도 했다. 세 권의 여행을 통해 이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 다단하게 느껴졌으며 고대인들은 고민했고 그들은 지혜로웠다. 현대인의 고민은 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으며 고대인들보다 지혜로워지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고대인들의 지혜가 더욱 빛이 나는 듯하다. 지금까지 위대한 스승들의 거대사상을 통해 자아란 무엇인가? 세계와 자아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단순하다고 생각되었던 세계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우주의 빅뱅, 아니 그 이전의 우주부터 시작해서 인류와 스승들의 거대사상을 두루 알아보았다. 저자는 왜 21세기에 이 세계관을 들먹이며 알아보려고 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현재 우리는 이원론의 세계에 태어나서 그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죽는다. 자기 내면의 가려진 영역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가 이원론의 세계관 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계와 자아가 하나라는 일원론의 세계관으로 들어가 그곳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기를 권하고 있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 그는 일곱 개의 준비운동을 추천한다. 나를 멈춰 세우는 운동으로 책을 통해 여러분이 확인하길 조심스레 권유해본다. 기나긴 여정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찾으라는 메세지로 들린다. 그리고 위대한 진실과 마주한 뒤 내가 깨달은 진실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라 말한다, 위대한 스승들이 그러했듯.



책을 읽을수록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검증했을까라는 생각때문에 저자의 책쓰기 과정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고 읽으면서 그의 똑똑함에 부럽기도 했다. 현대 우리의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배움들이 어울려 융합이 되어 비경험에도 교훈을 깨닫는 사유를 하기 시작하는 때는 언제일까? 사람마다 그 시기는 다르겠지만 연륜이 쌓이는 그 시기는 아마 어느 정도의 지식 위에 그것이 지혜로 변해가는 시간이 더해져야 가능할 것이다. 나는 감히 지대넓얕 시리즈를 읽고 나면 바로 지혜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까지 내가 배웠고 배워야 했을 모든 것을 만나고 거기에 나의 자아까지 찾아볼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 바로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시리즈, 감히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지식으로 만났지만 지혜로 마무리되는 너무나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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