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2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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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 도스토예프스키 /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어째서 내가 벌레조차도 될 수 없었는지를.

벌레가 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당신 앞에

엄숙히 말할 수 있다.

 

 

 

 

자신을 병든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관청에서 근무하는 관리였다. 뇌물을 받지는 않았지만 못된 관리였고 거칠었다. 본인의 행동에 만족을 느꼈고 뇌물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직장동료들은 '나'를 괴상한 놈으로 간주하고 혐오스럽게 여긴다. '나' 또한 동료들을 싫어했고 경멸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을 두려워했다. 우습게 보일지 모른다는 병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학창시절에도 '나'는 친구와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보통 언제나 혼자서 독서를 했다.

 

24살의 어느 날 '나'는 선술집에서 무심코 길을 막고 당구대 옆에 서 있었는데, 어떤 장교가 지나가길 원했다. 그러나 '나'는 모르고 있었고 그는 내 어깨를 잡고 조용히, 경고나 설명도 없이 나를 내가 서 있었던 곳에서 다른 데로 옮겨 놓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지나갔다. '나'를 무시한 그를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나누지 않았던 친구들의 모임에 나가게 되고 약속시간을 속인 그들을 계속 기다리며 결국 만나지만 기다리는 동안 계속해서 자리를 뜨려고 해도 뜨지 않고 결국 친구들과 함께 직업여성들을 찾는다. 그곳에서 리자라는 여성을 만나는데 리자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들을 쏟아놓는다. 리자는 손가락을 깨물어가면서 울음을 참는다. '나'는 리자에게 집주소를 주고 나온다.

 

 

 

 

 

'나'는 사회적 연결고리를 모두 끊고 자신의 집 지하에서 살아가는 마흔의 중년남성이다. 친척으로부터 유산을 받고 그 이후로 직장도 관두고 지하에서 칩거한다. '나'는 자신이 부족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우월감이 넘치며 자존심도 강하고 의심도 많으며 성도 잘 내고 가끔 발작까지 한다. '나'가 타인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학창시절 성적도 좋았고 또한 유일한 취미이자 도피처였던 독서를 많이 했던 탓인데 주위에 존경할 수 있는 대상조차 찾지 못했다는 것과 우울증, 신경질적인 갈망에 원인이 있는 듯 하다. 더하자면 '나'는 인간을 두다리를 가진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이며 가장 큰 결함은 끝이 없는 무례함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없고 타인의 감정따위 소중하지 않으며 일상적인 삶을 사는 무례한 타인들에게 '나'는 우월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은 벌레조차도 되지 못하며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지하로 스며들어 자신을 격리시킨다.

 

 

화자는 은둔자이다. 현 시대의 은둔자를 우리는 일본어에서 찾을 수 있다. 히키코모리. 집에 틀어박혀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데 이미 1970년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50년이나 되었으니 역사라고 볼 수 있는데 히키코모리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므로 세상과 단절하고 자기혐오나 우울증 증상을 앓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1864년에 발표되었다. 150년이 훌쩍 넘었으니 19세기에 도스토예프스키가 세상이 몰락하여 이런 인간이 나타날 것을 예상하고 쓴 것인지 아니면 그 당시에도 이러한 인간군상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1849년 문학모임에서 일련의 사건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지만 황제의 특사로 강제 노동형으로 감형되는데 이 때 비참한 수용소 생활을 했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독서를 많이 했고 간질증세를 앓았기에 발작을 일으켰으니 <지하로부터의 수기> 속 '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녹아낸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귀족가문의 자제로 태어난 그가 아쉬울 것 없었지만 수용소 생활을 통해 비참한 기분, 존중받지 못한 대우 속에서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들과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가슴에 새기지 않았을까 싶다.

 

 

'나'라는 한 인간의 일기 같기도, 고백같기도, 자서전 같기도 한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으며 내용을 정리한 듯한 한 문장을 발견했다. 바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통해 하고픈 말이었을까?

 

 

"결론적으로 이것은 더 이상 문학이 아니라 교화시키기 위한 처벌이다. 결국 구석에서의 도덕적 타락과 적당한 환경의 결핍, 살아 있는 것들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지하에서의 자신의 과장된 악의 때문에 어떻게 내가 내 인생을 소진했는가에 관하여 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신에게 맹세코 흥미롭지 않다. 소설은 주인공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일부러 반(反)주인공의 모든 특징을 모아 두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불쾌한 인상들을 남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삶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는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정도에 따라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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