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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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 이금이 / 창비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의병활동으로 아비를 잃고 뒤이어 바로 오빠까지 잃고 동생들을 돌보며 어머니와 함께 근근히 살아가는 양반집 고명딸 버들은 일본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 가서 공부하며 행복하게 살라는 어미의 뜻대로 사진결혼을 하게 된다.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남자와 사진과 정보를 교환하고 하와이까지 도착하는 비용을 남자쪽에서 제공하는 사진신부가 되는 것이다. 결혼해서 과부가 되어 돌아온 친동기간 같은 홍주도 동네 무당의 손녀인 송화까지 셋은 일본을 거쳐 몇 달만에 하와이에 도착하지만 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할아버지같은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농장의 남자들은 결혼을 하기 위해 위장사진을 보낸 것이다.


포와(하와이)에 가면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어미와 동생을 뒤로 하고 왔건만 정을 주지 않고 그저 시아버지 봉양만을 바란다는 남편에 버들은 낙담한다. 그러나 버들은 열심히 산다. 시아버지 봉양은 물론 손 걷어부치고 친정에 돈을 보태줄 요량으로 세탁일도 하고 남편의 마음도 얻고 아이도 가진다. 사탕수수농장과의 계약이 끝나 버들네는 돌아가신 아버님을 뒤로 하고 호놀룰루에 정착한다. 남편이 한인기숙학교 시절 배운 제화기술을 살리기로 하고 구두가게를 내고 독립단 기관지인 [태평양시사]에서 월급을 받아 살면 걱정없이 살 거란 계산이었으나 남편 태완은 자식들에게 독립된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러 중국으로 떠나게 된다. 혼자 남겨지는 버들을 위해 남편은 개성댁의 세탁소에 버들을 맡긴다. 버들은 세탁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재봉질과 다림질을 맡아 일을 하게 되었다.


한 편 늙은 남편에게 시집간 화통한 성격의 홍주는 아들과 남편이 조선으로 돌아갔다. 같이 가자는 남편을 아들도 떼어내며 보낸 것은 남편이 조선에 처와 딸들이 있었던 것. 조선으로 돌아가면 홍주는 첩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싫어 눈물을 머금고 남편과 아들을 보냈다. 송화 또한 마찬가지로 할아버지같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버들을 찾아왔다. 세탁소 주인인 개성댁은 나이가 들어 더이상 세탁소 운영이 힘들다며 버들과 홍주 그리고 송화에게 세탁소를 넘겼다. 홍주는 사귀던 미국인에게서 차를 받고 탁월한 영업력으로 세탁소는 점점 장사가 잘되지만 남편이 떠난 뒤 아기가 들어선 것을 알게 된 버들, 남편은 달랑 편지 한장을 보내고는 그 후로 연락이 없는데.....



"기래서 힘없는 나라 백성이 불쌍한 거이지. 미국 봐라.

제 나라 사람이 죽었다고 대번 전쟁한다고 나서는 거이.

기런 나라가 뒤에 떡 버티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갔나."



근래에 읽었던 책 중 가장 몰입도가 높은 책이었다. 막힘이 없이 술술 읽히고 어려움없이 풀어 써 내려가 전개도 빨라 책을 잡을면 놓지 않게 된다. 책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이었다. 조선의 노동력을 일본이 멕시코의 사탕수수농장 에네켄에 팔았던 당시 이민자들은 노예계약을 맺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잠깐의 쉼에도 반장에게 채찍을 맞아가며 절대적인 굶주림과 절대적인 핍박을 받았던 1세대 이민자 애니깽들의 이야기였는데 참 가슴이 아팠었다. 그들은 조선에서나 멕시코에서나 못먹고 못살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노예계약을 맺고 미국이나 멕시코로 떠나는 이민자들은 그 수가 어마어마했고 그중 사진신부도 천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이금이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낯설고 물설고 말설은 타향에 아는 이 하나없이 그야말로 말 몇마디와 사진 한 장을 믿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도박에 가까운 일이다. 목소리 한 번 실제 모습 한 번 보지 못한 이를 배우자 삼아 평생을 살아갈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엄청난 모험같이 느껴진다. 무모할 만큼 용기가 있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기대 편히 살 것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추측해본다. 당시남자들은 나라를 지켜려 집을 비웠고 여자들은 비워진 집을 채워야 했다. 조선은 조선대로 하와이는 하와이대로 여성들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했고 그러면서도 나라를 위한 모금운동도 했었다. 배우지 못했던 당시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청소나 빨래 등 허드렛일이었고 그나마 수를 놓거나 재봉질은 좀 나은 일거리였다. 그들은 <알로하, 나의 엄마들> 속의 버들, 홍주, 송화, 명옥, 막선, 줄리엄마, 개성아주머니로 새로 태어난 누군가의 아내였고 엄마였고 딸이였으며 나라의 독립을 뒤에서 조용히 돕던 우리 여인네들이었다.



1903년 대한제국 정부가 최초로 인정한 공식 이민자들은 83명이었다. 모두들 못살겠다고 조선에서는 더 이상의 희망을 볼 수 없어 미국가서 잘 살아보겠다고 또 내 새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공부시켜 설움없는 삶을 살게 하겠다고 떠난 이들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어떨까? 지금도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떠돌아다닌다. 해결방법이 없는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부족한 일자리, 저임금 이런 것들로 한국은 몸살을 앓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는 완전히 우리의 일상을 바꿔 놓았다. 물론 코로나는 우리나라만의 일만은 아니지만. 한때 미국원정출산이 유행이었고 유학의 길이 뚫리면서 있는 집에서는 유학을 보내고 지금도 이민을 가는 이들의 숫자가 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2018년에 3만명으로 10년간 최고치였다고 하는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 옳은지 이런 나라라도 열심히 살면 그것만으로도 애국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는 논쟁을 피할 수 없는 주제라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싶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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