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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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 루이스 세풀베다 / 정창 옮김 / 열린책들




기다린다는 것, 그것만큼은 네놈에게 질 수 없지.




자신의 나이를 정확히 모르는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엘 이딜리오에 산다. 자신이 글을 쓸 줄은 몰라도 읽을 줄은 안다는 사실을 깨닫고 1년에 두 번 배를 타고 오는 치과 의사인 루비쿤도 로아치민에게서 연애소설을 받아 읽는다. 루비쿤도가 왔던 날 안토니오와 대화를 나누던 중 금발의 시체를 실은 카누가 선착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엘 이딜리오의 유일한 공무원인 뚱보 읍장은 주민들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하는 위인이다. 전횡이 심한 뚱보는 금발 백인의 죽음이 인디오족의 짓이라고 몰아부치지만 노인은 시체를 보고 살쾡이의 짓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우기가 시작되자 새끼에게 줄 먹이를 찾아 나섰던 살쾡이는 사냥에서 돌아오자 밀렵꾼들에게 새끼를 잃어버린 걸 알게 되고 복수를 한 것. 노인은 살쾡이가 인간의 피냄새를 맡고 마을 주위로 다가오고 있을지 모른다고 충고한다.



오두막에 돌아온 노인은 루비쿤도에게서 받은 연애소설을 읽는다. 그는 혼자 살았다.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지 않던 부부가 한참 고민할 때 아마존 유역을 개발한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인접국인 페루와 마찰을 빚고 있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자국민들에게 기술과 원조를 약속한다는 이야기에 솔깃하여 부부는 처음 엘 이딜리오에 오고 2헥타르의 밀림을 제공받았다. 그러나 죽자사자 일을 하고 땅을 개간해도 다음 날이면 새로운 식물이 고개를 내밀었고 식량마저 바닥일 때 원주민인 수아르족 인디오들이 부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는다. 인디오들에게서 사냥하는 법, 물고기 잡는 법, 오두막 짓는 법 등 밀림의 세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술을 배운다. 그러나 부인을 잃고 이제는 세상사와 멀어진 듯 살고 있었는데 독재를 일삼는 읍장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노다지꾼들과 밀렵꾼들, 백인들이 점차 늘어나는 엘 이딜리오에 시체가 발견되면서 조용하던 마을이 술렁거리고 읍장은 급기야 그에게 수색대에 합류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런, 내가 겁을 먹은 것인가.

노인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라는 수아르 족의 말을 떠올리며 가스등을 끈 뒤(중략)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도대체 무슨 일이야?

자네가 광기에 사로잡힌 짐승과 맞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들떠 있지? 짐승은 기다리다 지쳐 버렸나?




연애소설이나 읽으면서 한가롭게 살던 안토니오의 평화가 깨져버렸다. 이제 그는 수색대에 합류해서 사람의 피냄세에 굶주린 살쾡이를 사냥해야 한다! 비교적 짧은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여러 메세지를 담고 있다. 밀림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에 경종을 울리기도 하고 자연(짐승)과 대치하는 노인의 두려움을 넘어 자연에 반(反)하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말하기도 한다. 제목에서 로맨스를 잊지 않은 노인은 어떨까? 하고 상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의문의 시체가 등장해서 추리물을 떠올렸다가 늙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가 대자연의 힘 앞에서 무력한 인간을 느끼게도 하고 자연에 반하지 않고 자연을 읽으며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인디오족의 지혜를 보기도 했다. 어느 하나 놓칠 수 있는 가벼움이 아니여서 책의 두께에 반해 묵직한 책이다.



특히 살쾡이와 노인이 대치하는 대목에서는 갑자기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게 되는데 둘 간의 대치에서 긴장감이 느껴져온다. 동물적 감각으로 똘똘뭉쳐 새끼에 대한 분노를 인간에게 복수하려는 살쾡이와 더 이상의 인간의 죽음을 막으려는 노인의 방어적 공격은 자연과 사람의 대치에 대한 씁쓸함을 느낄수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강했는데 이미 영화화 했다니 남성들에게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는 조국 칠레에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가보다.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적 특성과 거리가 멀다고 하는데 이것이 이유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나와 거리가 멀다. 그 거리를 좁히고 싶은 맘이 생긴다. 참고로 루이스 세풀베다는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1989년 살해당한 환경운동가이자 아마존의 수호자인 치코 멘데스에게 바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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