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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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 김 훈 / 파람북

 

 

 

 

"태초에 말 등에 올라탄 자가 있었다."




때는 언제인지 모른다. 그저 사람이 말을 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던 때였다. 말들은 자유로웠고 초승달이 뜨면 달을 향해 달렸다. 달을 향해 달린다고 해서 신월마라고 했다. '추'는 외눈박이 무당과 교접하고 딸을 낳았다. 무당은 딸을 낳고 죽었으며 딸은 성장했고 이름은 '요'라 했다. 어느 날 달리던 말 떼를 보았는데 그 중 한 말이 요에게 다가오고 요는 말 무리에서 멀어진 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추는 말을 길들이고 처음으로 말을 탄 인간이 된다. 추는 기루가루 부족에게 가서 부족장에게 말을 타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추는 요와 말이 사랑하는 것을 보고 말을 죽여버린다. 요는 백산이라는 산으로 도망친다. 이제 모든 부족은 말을 탈 수 있었고 말을 타고 전쟁을 했다.



초나라의 역사는 {시원기}에 단의 역사는 {단사}에 적혀서 전해지는데 북과 남을 갈라 초와 단나라는 크게 달랐다. 유목민족인 초와 달리 단나라는 농경민족이었다. 두 나라는 전쟁을 하게 되고 초나라 왕의 큰아들 표는 신월마인 토하를 타고 전장에 나가게 된다. 한편 단나라에서는 총지휘를 맡은 군독 황이 비혈마의 순종인 야백을 타게 되는데 잠시 휴정 중, 나하강을 건넌 신월마 토하가 야백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된다. 전쟁은 길어지고 초나라의 군대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고 토하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을 마의가 알게 된다. 순종인 토하가 잡종과 교미하게 되면 마의는 죽음을 면치 못하므로 독을 먹여 유산케하고 토하는 시름시름 앓게 되는데....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적을 베지 못하면 내가 죽을 차례다. 칼이 적 앞에서 헛돌았을 때 나의 전 방위는 적의 공세 앞에 노출된다. 이때 수세를 회복하지 못하면 적의 창이 내 몸에 꽂힌다. 나의 공세 안에 나의 죽음이 예비되어 있고 적의 수세 안에 나의 죽음이 예비되어있다. 적 또한 이와 같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생사는 명멸한다. 휘두름은 돌이킬 수 없고 물러줄 수 없고 기억할 수 없다. 모든 휘두름은 닥쳐오는 휘두름 앞에서 덧없다. 수와 공은 다르지 않고 공과 수는 서로를 포함하면서 어긋난다. 모든공과 모든 수는 죽음과 삶 사이를 가른다. 그러므로 공에서 수로, 수에서 공으로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 엎어지고 뒤집히는 틈새를 사람의 말로는 삶이라고 부른다고...





말을 타기 이전 시대의 이야기이다. 신월마와 비혈마라는 최고의 순종말이 등장한다. 신월마인 토하는 콧구멍으로 안개와 무지개를 토해내는 말이다. 비혈마는 먹지 않고 하루에 삼백 리를 달리며 목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핏줄이 밖으로 터져서 핏방울이 바람에 흩어졌다. 피를 날리면서 달리는 것이다. 또한 이마에는 야광빛 점이 있었다.



신화같은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인간의 문명과 함께 한 말의 역사를 다룬 이야기다. 아직은 말을 타지 않았던 인간이 어떻게 말을 다루고 타게 되었으며 그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쓰임새를 말의 생애를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다. 쓰임이 다했을 때의 말은 더이상 사람에게 이롭지 못하고 그저 버림을 받게 되는데 그들의 사랑이야기부터 일대기를 보여준다. 이것은 사람의 이기적인 욕심과 야만적 폭력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문명의 발전에 따라 동물들의 쓰임이 다양해지고 철저하게 쓰여지고 버려지는 동물의 삶과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적절히 양념된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판타지적요소때문에 신비롭고 재미있으며 한 편으로 인간의 야만적 폭력과 욕심을 고발하는 소설이므로 인간의 반성을 촉구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다 읽고는 가슴에서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이었는데 김훈 작가의 묵직한 이야기들과는 달리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김훈 작가의 작품일 수 없다는 선입견과 호기심때문에 읽은 책이었다. 특히 작품 속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많아 김훈 작가를 새롭게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노령의 나이에도 계속해서 작품을 써내는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하를 건너온 뒤로 주인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을 토하는 느꼈다. 표는 말을 달릴 때, 속도가 빨라질수록 몸을 앞으로 기울였는데 토하는 그 무게를 앞다리로 받아냈다. 표의 허벅지가 옆구리를 조여올 때, 토하는 자신의 힘줄과 사람의 힘줄이 연결되는 것을 느꼈다.

야백은 등에 사람을 태우고 달리던 일의 두려움을 떠올렸다. 말은 옆구리에 박차를 지르는 말 탄 자의 마음을 제 마음으로 삼아서 달렸고, 사람은 말의 몸을 제 몸으로 삼아서 달렸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사람을 낳은 사람의 자식이고 부모지만 죽으면 인연은 흩어지고 혈연은 풀려서 뿔뿔이 흩어져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므로 누구나 누구의 자식도 부모도 아니며, 형태도 없고 무게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바람이 되어 백산으로 들어가고 인간 세상에는 그 인연 없는 자리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태어난다고 (생략) 



김훈은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통해서 이런 말을 했다.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너무 멋진 문장이어서 보태어 설명한다면 사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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