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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기억전달자 / 로이스 로리 / 장은수 옮김 / 비룡소
"'사랑'같은 단어를 쓰는 게 왜 부적절한지 이해되니?"
아침에 어젯 밤에 꾼 꿈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에는 하루 동안의 느낌을 나누는 11살 조너스의 가정은 행복해 보인다. 대화로 소통하는 가정,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을이 정해준 규칙이다. 이들의 대화는 스피커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어 반드시 꿈과 느낌을 이야기 해야 한다. 조너스의 몸에 시작된 성 욕구. 어머니는 조너스에게 약을 준다. 이제부터 매일 성을 억제하기 위해 조너스는 이 약을 어쩌면 죽을 때까지 복용해야 한다. 당연히 아기는 부부의 사랑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12살이 되어 마을에서 부여하는 직위 중 하나인 '산모'가 직업적으로 출산한 아기들인 것이다. 그러니 조너스와 릴리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다. 산모는 세 명의 아이를 출산 할 수 있고 출산 후 그들은 육체노동자로 변환된다. 마을은 한 해에 50명의 아이만 출산하도록 조절하고 있다.
12살이 되어 직위 수여식에 참석하게 된 조너스. 직위 수여식은 한 아이의 어린시절을 면밀히 분석해서 평생 가지게 될 직업을 부여하는 기념식이다. 조너스는 기억보유자로 선택되었다. 마을에서 가장 명예로운 일을 행하기 위해 선택된 조너스. 지능, 정직함, 용기, 그리고 지혜를 가졌다고 판단되어 채택된 조너스는 차기의 기억보유자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치게 된다. 기억보유자로부터 기억을 하나씩 건네받게 되는 조너스. 처음 보는 눈과, 썰매, 그리고 색깔들. 경험과 느낌, 감정, 상황 등의 많은 것을 기억보유자, 이제는 기억전달자가 된 할아버지로부터 기억을 전달받는 조너스. 그리고 자꾸 눈에 보이는 색깔들. 우리 마을에는 왜 눈이 없는가? 왜 갑자기 피오나의 머리가 빨간색으로 보이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 조너스. 마을은 날씨와 색깔마저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너스의 아버지는 보육사로서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아이들을 걸러네 '임무 해제'시킨다. 그리고 노인들도 임무 해제되며 쌍둥이도 둘 중 하나는 임무 해제된다. 임무 해제되면 마을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아이들은 임무 해제의 정확한 뜻을 아직 모른다. 마을은 예의바르고 정해진 말들만 할 수 있기에 누구도 임무 해제가 무엇인지 얘기해주지 않는다. 기억보유자는 마을의 모든 일을 알 수 있다. 기억전달자로부터 많은 기억을 전달받고 무한한 권한을 부여받은 조너스는 아버지가 쌍둥이 중 한 아기를 임무 해제시키는 영상을 보게 된다. 조너스는 이때부터 갈등하기 시작한다. 불만이란 없는 사회, 오직 행복만이 존재하는 사회, 그러나 조너스는 사물 저 너머를 보는 능력을 갖추면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우리 마을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너스는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기억을 품을 수는 없나요? 모두 조금씩 기억을 함께 나눈다면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한다면 기억 전달자님과 제가 그렇게나 많은 고통을 떠맡을 필요가 없잖아요."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러면 모든 사람이 부담을 느끼고 고통을 당할 거야. 사람들은 그걸 원하지 않아. 그게 바로 기억보유자가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그들에게 존경받는 진짜 이유지. 사람들은 그 짐을 덜기 위해 날 선출한 거야. 너도 마찬가지고."
아들들과 함께 읽을 책을 검색하던 중 알게 된 <기억보유자>는 청소년 문학으로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지만 내용은 굉장한 도서였다. 디스토피아소설이다보니 미래사회의 모습과 여러가지의 사회문제를 담고 있다. 단순한 것 같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눈이 주는 불편함(교통 마비 등)때문에 날씨를 조절하는 환경문제, 한 해의 출산율을 조절하는 출산율 문제, 성문제, 차별과 차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장애인은 없는 장애우 문제, 나이가 들어 병들거나 기력이 쇠하면 기념식을 치른 후 임무 해제되는 노인문제 등 <기억전달자>에는 현재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사회문제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볼 권리, 선택할 권리 즉 자유의지에 대한 내용 또한 담고 있다.
디스토피아 소설로는 유명한 조지 오웰의 1<984>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그리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이 있다. <1984>는 아직 읽지 못했고 <시녀이야기>와 <멋진 신세계>는 읽으면서 역시 굉장히 불편하고 힘들었다. 사회가 정해주는 범위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인간들, 그것이 과연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고통을 주더라도 우리는 고통과 실수를 통해 교훈과 실수하지 않을 기회를 얻는다. 다시 말해 고통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동력 또한 얻는 것이다. 선택하고 실수하고, 교훈을 얻고의 반복, 이것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아닐까? 자유의지가 배제된 사회에서 느끼는 절망은 독자와 주인공이 교감하며 자유의지가 박탈된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준다. 처음부터 선택의 자유의지가 배제된 사회, 오로지 주어지는 것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차이의 인정은 없는 사회.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선택이 고통을 주더라도 책임감 또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기억전달자>. 작가의 다른 작품들 또한 좋다고 하니, 이제 내게는 아들들이 어떻게 하면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가?라는 문제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