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속의 중국 문화대혁명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바바 기미히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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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한국인이 지닌 대중적 인식'에 따른 문화대혁명의 모습은 분명 프랑스 대혁명 만큼 호의적인 것으론 비추어 지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한반도는 바로 그 혁명의 가치관! 더욱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전쟁을 치루었고, 또 오늘날에도 해결( 또는 합의 되지 않는) 복잡한 문제 등으로 인하여, 국정과 민심 모두에게 있어서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사자 중국 내에서 일어난 비극 등을 살펴보아도 그러하다. 최근 문화 대혁명의 본질을 두고 '숙청'이라 정의하고 있을 만큼 그 사건은 '홍위병'이라는 단어와 함께 중국 근대사 속 야만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더욱이 이 책은 좀 더 나아가, 이미 권력의 정점에 선 마오쩌둥 공산세력이 어쩌서 문화 대혁명을 용인하고, 또 장려 할 수밖에 없는가에 따른 원인의 진단과 더불어, 결국 그 혁명이 세계 곳곳에 '수출'되기까지의 그 혁명의 모습을 살피는데 있어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중국 혁명은 세계 혁명의 일부다.

208 페이지 마오쩌둥

그러나 본디 '사상의 전파'란 역사 속에서 그다지 특이하다 인식해야 할 것은 아니다. 다만! 원래부터 기득권의 위치에서 발현된 혁명이라는 그 특이성과 함께 인도네시아, 일본, 프랑스, 한국 등 현대사 속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향한 불길을 '다시 끔' 일으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국 중국 문화 대혁명이란? 비단 중국 내에서 발생한 독특한 민중 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 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다만 그 혁명이라는 수 많은 시도와 결말의 모습을 엿보앗을때, 독자의 입장에서는 과연 이 사건이 앞으로의 미래를 진단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실제로 현대 공산주의 혁명의 과정을 지켜보면, 그 결말은 결과적으로 실패의 역사라 부를 만하다. 물론 각 나라에 들불처럼 번진 전파력은 두려운 일이지만, 결국 사상의 논리가 아닌 '소비중심사회'로 무장한 나라와 국민들이 소위 공산화의 시도를 잘 막아냈다는 점에서 살펴보면, 역시나 근 현대의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논리'를 뛰어넘는 것은 사람의 삶과 의미, 그리고 그 목적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의 건전성이 제일이였다. 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배가 부른 것 '이상'을 바라보게 된 사람들!

이에 혹여 '혁명'의 발현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현대인이라면, 그보다 먼저, 그 공동체의 건강함을 먼저 걱정하고 개선하려는 주장을 먼저 해야하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세상 모든 것은 유한하다. 이에 적어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그 속의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하는데는 너그럽지만, 반대로 능력과 가치 속에서 뒤쳐지는 이들에 대한 욕망은 그리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가 존귀해지기를 원한다' 어쩌면 이제 그 높은 의미의 실현욕구를 통한 새로운 혁명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결국 이 책 속의 '이상한 현상' 또한 따지고 보면 가난의 타파를 위한 급진주의가 아니라, 공동체 속 경직화된 모든 것에 대한 반발심과 개선의 요구가 '혁명을 꿈꾸게 만들었다' 라고 보아야 한다. 이에 중국은 그 꿈이 더 널리 퍼지기를 원하고, 또 부채질을 했을 뿐... 각설하고 이를 두고 단순히 '잘못된 것의 태동이자 소멸'로서 이해하는 독자들이 있다 라고 한다면? 이에 나는 그것이 틀렸다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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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인원 - 끝없는 진화를 향한 인간의 욕심, 그 종착지는 소멸이다
니컬러스 머니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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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때 나는 분명 '인간 본연의 폭력성'을 표현하는 인류학의 가치를 품은 내용을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이해하면서 그 기대는 산산히 부서지고, 대신 생물학의 가치과 그 표준을 벗어난 인간의 모습... 이후 그 과함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저자 나름의 정의가 드러난 나름의 미래론의 가치를 접한다.

우리는 북적대는 인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지만 자연에서는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154쪽

이처럼 이 책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다. 비록 생물로서! 또는 육상 최고의 영장류로서 만들어지기까지의 탄생과 과정에 대해서는 모호하기 짝이 없다 하여도, 결과적으로 인류는 스스로에 대한 정보와 함께 '자연적'으로 균형이 유지되던 생태계의 조정자로서 오만하게 나섰다. 물론! 그 이유에는 인간 스스로가 더럽히고 바꾸어버린 그 수 많은 변수가 결국 타 생물들의 생존을 극히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속된말로 인류는 보다 숭고하고 또 책임감있는 역활을 맡고자 한 것이 아닌, 스스로가 싸질러 놓은 오물이 자신에게 튀지 않을 정도의 뒷처리를 맡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결국 (저자에게 있어) 인간은 '세계인으로서 살거나 죽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 낭비적인 종족이다. 실제로 오늘날 코로나19의 영향을 통해서 '개선'된 환경 생태계의 이모저모를 마주하면? 분명 같은 인류의 입장에 있어서도 씁쓸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인류가 가져온 풍요! 개인이 누려야 할 권리! 이에 인간은 스스로 능력껏 풍요로울 수 있는 '이기적인 권리'를 들먹이지만, 적어도 이 책 속의 내용 그 속의 '지구'는 인간들에게 그러한 특권을 부여 한 적이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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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들 -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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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술과 공학이라는 관점에서 관찰하였을때! 어느덧 인류는 신 기술의 발명과 균일성 그리고 생산성의 시대를 지나, 보다 첨단화된 '정밀성'을 추구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위의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 스스로에게 있어 과연 정밀하다는 것이 과학.기술 등의 발전에 어떠한 방향을 제시하고 또 활용되는가?는 것에서는 안타깝지만 지금껏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전문지식의 범주에 속한 것이였다.

정밀성과 정확성은 어떻게 다른가.

23페이지

이처럼 그 무지를 깨우치고, 또 책 속의 주제에 대한 지식의 축적을 위해서라도!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 이 많은 예들(역사 속 사실들)은 분명 그 발전의 과정을 이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내용으로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당시에는 그 내용에 있어서 '너무 어려운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또는 '난해한 과학적 지식들이 생 초보를 괴롭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일었지만, 결국 정리하자면 이미 언급한 그대로, 이 책은 이른바 발전사를 다루는 역사의 이야기라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 내용이였다.

각설하고 책 속의 기술들을 바라보고, 또 이것이 오늘날 정착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적어도 현대인이라 한다면, 이 모든 '주제'가 그 나름 평범하다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대부터 근.현대의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논하고 또 드러내기 위한 것에서 일반인들은 어느덧 '어느 기념비적인 상징성'을 띤 대표적인 머신(기계) '완성체'를 쉽게 떠올린다. 그러나! 적어도 기술에 대한 지식을 쌓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보다 더 보조적이고 또 내부의 핵심적 가치를 지닌 어느 것을 언급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이러한 것은 어떠할까? 필요한 치수만큼 정확하게 가공 할 수 있는 기술,더욱이 정확한 치수로 가공된 어느것을 대량으로 생산 할 수 있는 기술과 배경, 더 나아가! 사람이 일일히 다듬지 않아도 정확하고 세밀한 치수의 제품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보급되며 필요에 따라 제약없이 어느 것이든 결합과 활용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순간이 오기까지!!! 그야말로 이는 과거 톱니바퀴의 시대에서, 최첨단 전자기술의 시대를 통틀어 공유되거나, 요구되는 기술 발전의 토대로서 이해되어야 마땅한 가치이다.

때문에 비록 첫걸음에 해당하는 지식이라 해도, 이 많은 내용들은 앞으로의 미래에 있어서 "어째서 끝임없는 발전이 이루어지는가" 에 대한 그 질문을 해소하는 답변이 되어 줄 수 있겠다. 생각이 되어진다. 분명 과거의 기술이 등장하고 발전하고 또 계승됨으로 인하여, 피어난 첨단 기술의 꽃은! 오늘날 눈부시고 편리한 생활의 보조수단이자, 사회 경제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것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감히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듯이 과거 그 순간의 사람들 또한 현 기술의 모습을 감히 상상하고 또 (순순히)받아들였을까? 아니! 반대로 이 불완전하고 또 전례에 없는 기술의 등장은 분명 인간들에게 있어서, 경의와 불안 (또는 공포)를 가져다 준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에 대한 끝임없는 탐구는 결과론적으로 문명사회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또 수준높은 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과학 기술의 초첨이 '정밀화'에 맞추어진 까닭 또한 이해하고 또 추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아진다면? 분명 오늘날과 같은 순기능을 발현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이를 두고 어느 이는 낙천주의를 떠올릴지 모르고, 또 전쟁사의 가치관에 따라, 더욱 더 끔찍한 비극을 낳을 수단으로서 전락 하지 않을까? 하는 주장을 펼 수도 있겠지만? 이에 적어도 이 책 속의 메시지에 있어선, 그는(저자)는 분명 과학문명이 낳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는 학자의 모습만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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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명연설 - 역사의 순간마다 대중의 마음을 울린 목소리의 향연
에드워드 험프리 지음, 홍선영 옮김 / 베이직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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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대한 주장, 그리고 어느 정책의 방향성을 드러내고 또 통보하거나 소통(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 이처럼 서양의 문화권에 있어서의 연설은 그야말로 지도자의 자질로서 꼭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것으로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때문에 이 책의 이모저모에서 보여지는 연설의 주인공들을 마주하면, 역사 (또는 정치사)에 있어서 매우 큰 업적을 쌓은 위인들이 많으며, 이에 결국 독자들 또한 그 내용의 가치를 음미하면서, 결과적으로 그들이 드러내고, 주장하고, 실현한 그 모든것에 대한 이른바 '연설이 가져온 힘' 에 대한 나름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많은 연설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문득 어떠한 생각을 품었다. 물론! 이 많은 연설의 등장은 당시의 상황과 혼란, 그리고 그 무엇보다 '보다 더 고결한 어느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그 순간의 기치이기도 했다. 때문에 오랜세월이 지난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이를 바라보면 이 연설 속의 가치들 대부분은 이미 국가와 사회인식 깊숙히 뿌리박힌 '가장 정의로운 가치관'이자 상식으로서 이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정의를 관철하고 또 뿌리 내리려고 한 시도와 주장에 있어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과연 '나'는어떠한 것을 생각 할 수 있을까? 이에 적어도 나는 이 모든 주장과 연설 그리고 그것을 창조한 (또는 그러낸) 위인들의 출현이 비단 고결한 인류 또는 인격의 발현의 결과라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노예해방을 주장하고, 민족의 궐기를 주장하고, 비인도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어느 현실에 대한 '강력한 개선의 요구'는 결국 당시 그 시대가 (해당)그 정의롭지 못한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또 장려하거나 정착시킨 탓이 크다.

그렇기에 이 파격적인 (책 속 대부분의)연설들은 결과적으로 당시 사회에 있어서 일종의 '경고'이자 '비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많다. 이들은 분명 인간의 내면의 고결함, 또는 문명사회의 끝없는 진화를 찬미하지만 때때로는 그 스스로 뿐만이 아닌, 어느 공동체가 지닌 불평등함을 몸소 겪으며, 이에 대한 강력한 불만과 타파를 위해서, 모든 이를 위한 전파의 방법을 동원해왔다. "어떠한 세상을 위해 나아가자" "지금의 어려움을 감내하라" "시대는 더이상 00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양한 메시지가 과연 당시에는 어떻게 받아들여 졌을까? 그리고 그 주장이 현실화되어 정착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 또는 단순히 주장에 멈추어 퇴색되고 만 가치는 또 무엇이 있을까...

이 많은 질문에 대해서, 적어도 이 책은 현실 속 가장 성공적인 정착?에 성공한 유명한 연설들만을 꼽은 '성공의 주역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유와 헌신 그리고 계몽과 리더십이 낳은 가장 성공적인 예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국가와 사회 인류가 보다 진보적이고 발전된 형태의 길을 찾아 나아갔다라고 아마 저자는 주장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반면교사로 진보한 역사이든 또는 인간의 성실성과 정직성으로 일군 역사이든, 적어도 그 결과에 있어서는 보다 올바른 형태의 진보를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나와 저자는 같은 의미 등을 공유한다. 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연설과 메시지... 이것들이 결국 당시의 시대 가운데서 여론과 함께 변화의 시기를 이끌어냈다는 어느 계기와 '의지의 증거라'는 사실을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결국 청중을 향한 메시지는 통보도 아니고, 명령 또한 될 수 없다. 역사 속 수 많은 연설가운데서 명연설의 범위에 속하지 못한 것! 분명 강렬하고 또 큰 영향을 발휘했지만 소위 '역사의 심판'속에서 사라져간 많은 말들의 무덤을 떠올리며, 한번 이 책 속의 메시지를 감상해 보도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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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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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책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은 분명 한 시절을 강타한 가장 강렬한 내용이기는 한가보다. 이처럼 저자 이영훈의 주장과 심적 마인드를 엿보고 또 비평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귀화 일본인 (호사카 유지)가 정면에 나섰다.

이때 책 속의 주제이자, 저자 스스로가 큰 우려와 비판을 쏟아냈던 문제! 이는 분명 과거 일본제국 차원의 '범죄' (인권유린) 라 볼 수 있는(인식 할 수 있는) 가장 민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강제징용으로 압축될 수 있는 징병과 강제노동... 그리고 최악의 인권유린에 해당하는 종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문제는 비록 그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여전히 풀리지 않은 응어리의 형태로 각 국가 속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강제징용의 문제는 폭넓게 국가와 민족간의 갈등까지 불러왔다. 때문에 최근 반일종족주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순히 한국과 일본간의 갈등은 점차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내국인 끼리의 갈등으로서도 확산되며, 이를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심상치 않은 현상으로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에 저자는 최소한 이 현상의 과정이 '역사관의 충돌' (학설의 충돌)로서 이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저자는 이영훈의 '역사표현'을 여러가지 지적하면서, 그것이 결국 역사학이 아닌 이영훈과 그 일파?가 주장하는 친일성향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그야말로 반일종족주의는 과거 일본제국과 군부 (대본영) 이 추구한 인권유린의 (조직적) 움직임을 부정하고, 이에 옛 조선민족은 그 행정아래서 나름의 이익울 추구했다는 일본 극우의 의식을 대변하는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

문제의 본질을 더는 왜곡해서는 안 된다.

270 페이지

이처럼 강제노동을 '정당한 대가 속 노동'으로 종군 위안부를 '스스로 감내한 매춘활동'으로 정당화했지만... 과연 그 많은 주장들은 사실일까?

이에 저자는 그 정당화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옛 일본의 자료와 국내의 자료, 심지어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회고록과 증언을 토대로, 하나하나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렇기에 이를 접하는 '나' 또한 문득 정작 중요한 본질을 잊고 논란에만 집중하지 않았는가? 하는 나름의 반성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일제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라 부르는 시대 속의 흐름에서, 강제징용과 종군위안부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설사 그것이 구 일본제국과 옛 조선민족 사이에서 어쩌한 관계를 가졌는가?에 대해서도 분명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이를 깊이 공부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했다! 안했다! 있었다! 없었다! 와 같은 차원의 비평이 아니라, 전혀 다른 문화권과 민족성을 지닌 타 민족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2등 국민과 '조센징'의 가치를 낳은 일본의 역사적 행위에 대한 비평, 그리고 더 나아가 대법원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한 그 해석과 역사적 의의를 이해하는게 더욱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폭넓게 생각하여, 대한민국 국가와 사회 속 인식가운데 일제 강점기는 곧 '식민지배의 불법성' 을 바탕으로 한다는 공유의식이 (지금도) 지배적이다. 때문에 한낱 개인의 (위안부들의) 기억과 주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리는 이유 또한 옛 일본이 자행한 폭력과 불법 그리고 전쟁범죄에 대한 무수한 '역사의'(연구)를 진행시킨 사실 등을 국민의 입장에서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나 반일종족주의는 그 신뢰를 무너뜨리는 하나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정말로 두렵고도 우려스러운 일이였다. 그래서일까? 이때 나름 역사의 보충이자, 복습과도 같은 이 책의 주장 (또는 정리)가 무척이나 고맙고 또 의미있는 것으로도 (나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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