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인간 - 인간 억압 조건에 관한 철학 에세이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지음, 허경.양진성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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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날 화제가 되고 있는 전세계의 '금융위기' 한국정부도 다른나라와 마찬가지로 수출저하,

 저성장, 사회의 노후화를 이유로 들며 위기를 부르짖고,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더욱 졸라맬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한 정부의 방침에 대하여, 한국의 국민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유럽이나, 북미의 경우에는 사정이 이와 다르다. 정부가 사람을 줄이고, 예산을 줄이는,

긴축을 발표하는 즉시,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정부의 정책에 저항한다.  

그들의 저항에, 한국 국민들 대두분이 "지금껏 즐기다가 줄인다니까 발광을 하는구나..."

"낭비를 줄인다는 정부의 방침이 그렇게도 못마땅한가?"  하는 평가를 내리고, 한국 정부도

서양정부의 입장을 방송하며 긴축에 지지를 표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효과적으로 국민의 지위와 재산을 지켜주지

못하는 대표는 대표의 자격이 없다. 는 것이 그들의 상식이며, 국가의 위기를 국민들의 지갑과

복지예산으로 풀어가겠다는 정부의 '쉬운길'을 적극적으로 막아내겠다는

의지를 담고있다.  내려가는 것은 쉽지만 다시 오르기는 어렵다. 유럽인들은 그러한 생각을

행동으로 표출하며 정부에 저항하는 것이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배부른 밥그릇 챙기기' 차원의 '

떙깡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세상은 숫자가 아니고, 인간은 데이터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정부의 긴축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이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존재들이라고 정의한다.  정부는 우리들의 이상과는 다르다.

그들은 대다수의 국민들을 대표하지만, 다수를 관리하기 위해서 국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다. 

가시화된 성과에 주목하고, 정부의 운영을 중시하며, 때로는 국민의 주권을 암암리에 제한하는데,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국가는 성장을 원하고, 특히 경제의 발전을 주목한다.  경제는 '돈'이요, 돈은 계산도 가능하다,  

소비사회인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것도 돈이요, 사람을 효과적으로 제어 할수 있는 수단도 된다.

 우리들은 아무 생각없이 돈을 모으려고 한다. 적금을 들고, 투자를 하고, 주식을 하며, 경마도 하고??

로또도 한다??. 어쨰서 우리들은 돈을 모아야 하는가?  어째서 머나먼 미래를 대비하며 젊은날 준비를

해야 하는가?  어째서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서, 필요한 직장에는 그 일과는 상관이 없는 수많은 능력,

자격증, 스팩이 필요한가?  미래는 정말로 준비가 필요한 만큼 암울한 것인가?

 

이러한 걱정꺼리를 안겨준 존재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정부이다.

 

정부는

 

이러한 사람을 기꺼워 하지 않는다.  그들은 끝임없이 돈을 흐르게 하고, 돈을 이용해 사업을 벌이고,

돈을 제어 하려고 한다.  중세시대에는 금융업자를 "신의 능력을 이용해 돈을버는 방자한 자"라고

불렀다.  시간은 신이 관장하는 신성한 것인데, 금융업자는 돈을 맡기면 이자를 준다는 것을 이용해

남의 돈을 장시간 '관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정부는 거대한 '금융업자' 이다.   그들은 성장을 부르짖으며, 투자를 장려했고, 먼 미래의

안정을 이유로 투자를 권유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적 위기가 찿아오자, 정부는 실패의 책임을 투자회사나, 과도한 투기와 투자에

목 매달았던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떠넘겼다.

 

미국발 위기도 정부의 주택정책과 금융계의 무분별한 대출정책에 있었고, 한국의 카드대란도

국가의 무분별한 카드사용 장려와 카드업체의 무차별 발급이 원인이였지만, 그 대가는 누구가

치루었는가?   지금껏 사용해 보지 않았던 신용카드를 현명하게 사용하지 못했던 국민들은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되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정부는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란 이후 '신용카드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라는 내용의 공익광고 하나 내보낸것이

정부가 한 최초이자 최후의 일이였다.

 

이렇게 정부는 일을 벌리지만, 그 일에 대한 책임은 '국민'들에게 묻는다.

그들은 원래부터 국민이 자신들을 대표해 국정과 운영을 하라고 선출한 '대표' 정부이기 떄문에

성공이든 실패이든 그 수해자는 국민들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일반론을 논하지만, 정말로 성공과

실패의 책임이 국민들에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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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초마다 한 마리씩 - 미국 도축 현장 잠입 보고서
티머시 패키릿 지음, 이지훈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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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들은 사회를 살면서 마땅히 누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무감각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그 중 12초마다 한 마리씩은 우리들이 먹는 식재료 '쇠고기'에 대한

현실을 적어놓은 책으로서 오늘날 소들이 어떻게 도축되는가에 대한 내용 뿐 만이 아니라,

현실에 만연한 권력과 비권력층의 차별과, 사회의 정점에 이른 사람들이 다수의 시민들을 어떻게

통제하는가...  하는 '현대식 사회통제' 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귄력자들에겐 상당히 '불편한 책' 이다.

 

이 책을 알기전 나는 동물애호가들이 도축현장을 잡입해서 쵤영한 동영상들을 접한 적이 있는데,

그 영상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점도 있었다.     

그 동영상들은 시대에 맞기 않게 한 10~20년전에 제작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그에 관련된 영상들도 너무나도 적었으며, 무엇보다 그것들을 접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는

점이 이상했다,

 

도축장이 국가 중요시설도 아닌데 그들을 다루는 내용은 철저하게 차단되고, 그나마 공개된

내용들이 너무나도 획일적인 것에 대하여 의문이 들었었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권력자들의

일종의 '횡포' 의 결과였다..  미국에서는 법령으로 '도축업자를 보호하고 있다.'  도축장에

출입하거나, 취재를 하려면 회사의 동의가 필요하고, 위장 취업하거나 도축장의 진실을 폭로하려고

하면, 국가의 법령에 의해서 처벌받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 떄문에 일반인들이 접하는 소고기는 언제나 말끔하게 절단되어 포장된 '포장육' 이 전부가

되어버렸고. 덕분에 일반인들은 맛있어 보이는 고기의 절단면을, 고기의 전부로 인식하고,

아무 생각없이 고기를 사 먹는다. 

 

우리들의 뇌리에는 목장에서 청결하게 자라는 소들도 있고, 마트에서 팔리는 환상적인

미블링의 고기도 있는데..... 어째서 그 중간처리 과정인 '도축' 이라는 개념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채식주의자를 양산하려는 목적이 없다.

그가 추구하려는 것은  도축업체의 회려한 오피스 빌딩과, 말끔한 정장을 입은 사무직원의 방패막

뒤에 실존하는 '진실'을 파해치는 것이다. 

 

그는 진실을 위해서 위장취업을 했고, 그들의 통제 아래서 노동자로 일했다.

회사는 가혹한 국가의 위생정책에 부합하기 위해서, 말단노동자에게 일종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었다.

중간관리자들은 끝임없이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노동자들은 하나의 기계가 되어 소의 목숨을 거두고,

도막내고, 뼈에 광을내는 작업을 되풀이 한다.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가고, 기계처럼 맡은 일만

끝임없이 반복하는 삶에 그는 회의를 느꼈고, 외로움과 절망을  맛보았다.   

 

그는 특히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의 위생정책에 동조하는 척하는 회사의 위선에 별 감각이

없어지는 자신의 감정이  더욱 놀랍고 또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저자는 책을 정리하며 "도축업체의 본질적인 업무는 도축일진데, 그 본질적인 업무가 끔찍하고

회사의 이미지에 악영향이 된다는 이유로, 이를 수행하는 장소를 국가의 권력을 이용해서

철저하게 숨기고, 꺠끗하고 질서정연 한 화려한 소수의 셀러리맨들이 그들을 대표하며,

진실을 무마시키는 오늘날의 현실이 대다수의 '국민'들의 사고를 정지시켰고, 그 때문에

도축업자는 방해없이 이익을 누리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정의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영화에서만 보던 '초 거대기업'의 등장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이 접하는 방송이나 언론에는 회사가 기획한 이미지를 내보내고, 실질적인 회사의 이미지는

철처하게 숨긴다.

 

내부의 사람들은 회사의 감시와 가혹한 일감에 점점 인간성을 잃어가고, 회사는 회사대로

능률을 위해서 바로 옆의 사람들이 어떠한 일을 하는가에 대한 관심조차 가지지 못하게 만들며,

회사 내부에 있는 부조리를 세상에 폭로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범죄자' 가 되는 세상이

이미 도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나도 저자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자본주의의 패악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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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글쓰기 - 남자 보는 눈으로 통달하는
유나경 지음 / 북포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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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내 주위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나이가 지극하신 분들의 '자서전' 젊은 작가

지망생의 '판타지' 그리고 나와 같은 심심풀이를 겸하는 글쟁이의 '끄적임' 까지, 각자의 환경, 목표,

나이에 따라 글의 성격과 분위기가 다르다.

 

그러나 단순히 글을 쓰고 완셩 했다고 해서, 그들이 진정으로 자아 만족을 할 수 있을까?

왼쪽이 있으면 오른쪽이 있고, 책이 있으면, 읽을 수 있는 독자가 있어야 하기에, 그들이 쓴 글들도 

읽어줄 사람이 읽어 주어야만 진정으로 빛을 발하고, 저자의 노력에 대한 그 가치가 제대로 보답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쏟아져 나오는 수 많은 책들 중에서 자신이 쓴 책이 사랑받고, 대접받으려면 그만큼 책의 내용이 알차고, 다른책보다 경쟁력의 차이점이 뚜렷해야 한다. 사회명사가 쓴 글이 대박나고, 전세계적으로

학식있는 학자의 글이 대접을 받듯이 책이 태어나서  그만큼의 역활을 하려면, 먼저 책을 쓰는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그만큼 남에게 있어 선구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러한 '선구자'가 아니더라도 책을 쓰고, 성공 할수 있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무뚝뚝하고, 재미없고, 보수적인 한국의 남자들이 야들야들하고, 재미있으며, 미꾸라지처럼 유연한 글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이 가득찬  책이자, 앞으로 글을 쓰는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노하우를 전해 줄 책으로 상당히 현실적이고 용기를 주는 내용이 장점이다. 

 

개인적으로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글쓰는 법을 익히고, 나의 단점을 발견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쓰면서 독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가? 에 대한 의문을 이 책을 통해서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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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과연 필요한가?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11
케이 스티어만 지음, 김혜영 옮김, 박미숙 감수 / 내인생의책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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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세상이 참 무섭다 무섭다 해도 " 그것은 그저 과장과 푸념을 섞어 법썩을 떠는 말에

가까웠다.  그러나 오늘날 일어나는 각종 범죄들의 잔인함과 흉악함을 보면, 진실로

"세상이 무서워 진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진다.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사형이 남용되어진 사회였고,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임의적으로 사회와

지도자들의 판단에 의해서 죽어갔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법제도는 상당히 민주화되어 비록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해도,

법률에 의한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죽음을 선고 할 수 있도록 변화되었다.

죽음을 선고받은 사형수들은 사회의 정의를 바로잡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

한다는 논리 아래 그 수명을 강제로 강탈당한다.

 

그러나 다른것도 아닌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을 거두는 일이기에, 사형제도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그 존폐여부를 시험받는다.

 

2012년 9월 울산자매 살인사건 당시, 범인을 체포한 그 시점에서 자매의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아직 우리나라에 사형제도가 있지요?" 라고 물었고, 그것이 기사화되자

수많은 사람이 파렴치한 범인을 사형에 처하라며 들고 일어난 적이 있다.

범죄자에게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의 죽음을 원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감정적인 복수이고,당한 만큼 이상의 고통과 보복을 해주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제3자인 사람들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기에 감정적인 그들의 마음에 쉽게 동조된다.

 

예를 들어, 울산자매 사건 이전의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국가의 그러한 사법 방침에 대하여, 국민들은 '인권을 보호하는 선진국의 의식을 따라잡고

있다는 것' 으로 해석하며, 호의적인 지지를 표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잔혹한 살인마의 등장 하나에 국민들은 '죽어도 싼 인간은 죽여라' 라며 과거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관용의 정신을 뒤집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이라는 '보복적 가치' 즉 함무라비 법전의 가치가

부활한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 즉 대학에서 형법을 논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논란을

주제로 격렬한 토론을 벌인적이 있다.

아직 사회를 모르고, 혈기가 넘치는 대학 1학년생들은 대부분이 '사형제도를 지지했다.

그들은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게 감성적이였고, 심지어는 범죄자를

가두고 먹여 살리는 국비(비용)이 아까우니 죽이라는 의견도 내놓았었다.

 

물론 그들의 의견은 심히 감성적이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본질에 솔직한 의견이기도 하다.

 

분명 사형제도는 사회에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사형제도는 제3자의 피해를 유발한다.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앗아가는 잔인한 행위이면서도, 고도로 밀집되어 통제하기

어려운 오늘날의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정의의 채찍 역활을 수행하는 필요악의 두가지 얼굴을

가진 존재이자, 창과 방패 이야기처럼 영원히 모순을 간직하기에

사형제도는 오늘날에도 논란속의 "뜨거운 감자' 가 되어 있고, 그 결말의 끝은 보일 기미가 없다.

그러나 개개인은 분명히 자신만의 정답을 가지고 있다.  과거 감성적이던 학생부터, 오늘날

이 글을 읽고 있을 사람들 모두가 각각의 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을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무엇을 했는가?

우리들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제도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또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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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화 속 역사 읽기
플라비우 페브라로.부르크하르트 슈베제 지음, 안혜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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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미술은 통치자의 권력을 정당화 시키고, 견고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정치적 목적과, 이유 때문에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자아가 원하는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기

어려웠지만, 그 대신 스폰서들의 후원을 받아 개인적으론 생업을 유지했고, 또 나아가서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당시의 예술세계와 더불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정서와 

인식을 엿볼수 있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미술작품 속에서 '역사의 진실' 을 발견하는것은 상당히 어렵다.  

르네상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 '유대 고대사' 의 예를 들어보자,  그시대의 사람이 고대의

정서와 건축양식을 그대로 재현 하여 그렸겠는가?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은 또 어떤가?

실존하는 고대의 철학가들이 드림팀처럼 뭉쳐 토론하는 모습은 분명 장관이지만,

시대와 사는곳이 달랐던 그들이 뭉치는 것은 불라능하다. 게다가 그 속에 그려져있는

라파엘로의 모습은 깜찍 하기까지 하지 않는가?  

 

'예술가들' 그들이 추구하는것은 스폰서들이 원하는대로, 과거의 영광과 현실의 상태를

이미지화 하는 것이였다. 과거의 그림들은 오늘날의 포스터와 같이 주어진 '주제'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 존재의의가 있었다. 

 

화가의 창의력은 그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보조적인 역활을 하는데 진가를 발휘한다. 

이는 글을 몰랐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당시의 사정이 큰 이유가

되었으니 "무식이 예술을 창조했다' 라는 것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홍보와 전달을 위한 예술이였기에, 진실보다는 과장된 묘사와 당시

시대에 친숙한 이미지가 사용됨은 어쩔 수 없는 예술의 특징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이 책은 그림을 통해서 역사를 읽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림에 대한 이미지를 설명하고, 실제 역사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점을

비교하는 책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그야말로 이 책은 '책으로 만나는 읽는 미술관 탐방' 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책에는 고대시대의 주요 사건부터, 중세를 거쳐, 오늘날 911테러에 이르는 현재적인 사건을

담은 미술작품을 수록했다.

 

작품들도, 람세스2세의 벽화부터, 피카소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교과서나 일상속에서 만나는

익숙한 그림이 있으니 그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껴 보는것도 좋다.

 

그러나 책의 한정된 분량에 너무나도 양이 방대한 내용을 담았기에 작품하나를 소개하는데

한쪽, 아니면 두쪽정도 밖에 할애하지 못해 내용이 빈약해지는 것이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다양한 명화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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