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 세계사 - 마흔이 되기 전에 갖춰야 할 역사지식
모토무라 료지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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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를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니... 좀 더 질문들 바꾸어 보자면 과연 사람들은 역사를 어떤식으로 접하고있는가? 이때 예나 지금이나 절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이를 '교육과 학문'의 시선(또는 가치관)으로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어린 시절의 위인전부터 시작하여, 시험을 위한 교과서, 거기에다 흔히 다큐멘터리로 분류되는 다중매체에서 다루어지는 그 성격을 살펴보아도! 결국 역사의 가치란 보다 더 (지금의) 걸맞는 사회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가장 손 쉬운 '지식'의 개념에 속해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은연중 품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흔이 국가와 사회는 '역사의 학습'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역사라는 분야에 한정하지 않아도, 본디 '학문'이란 어렵고 또 지루한 것이 아니던가? 물론 이에 시간을 들여 그 속의 깊은 맛?을 깨달은 일부 사람들은 예외로 하더라도, 결국 문제는 그 각각의 학습을 위해서는 어느 계기에 앞서 '시간' 그리고 오롯이 개개인의 진득한 열의(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에 있다.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때때로 논외의 창의성에 기대어 많은 방법을 모색하고는 했다. 그야말로 누군가의 머릿속에 박아넣기 위하여! 노래를 만들거나 또는 재치있는 농담을 섞기도 하고... 심지어는 어느 코너나 모임을 만들어 격렬한 정보교류를 나누고 또 때론 싸우기도 하는 모습을 요즘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최근에는 그와 비슷한 방법론이 유행하고, 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의 해석을 담은 것들이 유행하고 있으며, 이에 개인적으로 나는 일본과 한국에 있어서 '로마'를 각인시킨 책 '로마인 이야기'를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본디 그 책은 현대의 '로마사연의'로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그 성격이 닮아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마치 아기의 요람과 같이... 때론 (처음)사람들은 그 책에 빠져들게 되지만? 결국 더 나아가 성장한 이후에는 반대로 '애드워드 기번'의 눈높이에 서서 과거 그 책 속의 무책임함?을 심히 지적하는 '오만한 인물'이 되어 버릴때도 많이 있다.

정통성과 권위 그리고 정본과 완역에 대한 '나'의 욕심과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언급한 그대로 결국 역사는 학습의 연속성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그 정점의 학자에서 부터, 나와 같은 떠중이 아마추어에 이르기까지, 그 성격을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가 그 학문이 가지는 경직성에 잠식되어진 존재가 되고말았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에 이 책이 전하려는 진짜 이야기 또한 그 경직성에서 드러나는 균열의 모습을 통하여, 전문가와 비전문가... 아니 학자와 일반 대중의 사이에 벌어진 그 가치관의 균열을 봉합하기 위하여, 과연 역사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또 접근하여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저자 그 나름의 고뇌가 녹아있는 책으로 이해하면 된다.

역사가 보다 유연해지면 어떠한가? 재미있으면 어떠한가? 오늘날 대중들이 정(精)사 보다 비사와 연의를 더 접한다고 하여 이에 대중을 '수준낮다' 탓하는 것은 속된말로 꼰대짓에 지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유독 '역사 덕후'들이 외골수가 많은 것은 어째서일까? 그들은 지식이라는 것을 이용해 상대를 찍어누른다. 틀렸다, 아니다, 다르다! 이처럼 아무리 열린 마음과 유연성을 주문해도, 이미 그 각각의 사람들은 저마다 받아들인 사학이 뚜렷하게 자리잡은 모습을 쉽게 드러내고는 한다.

그러나 감히 주장하지만, 역사에는 부동의 정답이란 존재 할 수가 없다. 오늘날 완벽한 인생, 완벽한 인격, 완벽한 지식을 지닌 초월적인 인간이 없는 것과 같이 본래 역사란 그 무수한 모자람이 엉키고, 뒤섞이는 과정 속에서 남겨진 한정된 기록과 정보와 또는 행동 등의 깨달음이 녹아있는 작은 한 파편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에 이 책에서 다루어질 그 많은 역사의 이야기를 마주함에 있어서도, 아마 그 각각이 가진 가치관과 지식에 가로막혀 선듯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발견되어질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저자는 굳이 이를 '역사'에 써 넣었다. 오롯이 역사의 딱딱한 정론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학문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독자에게 보다 흥미를 불러 일으키려는 배려가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세계사책! 이처럼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이 가지는 (학문의)문턱은 너무나도 낮았다.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이제 더 이상 '몇년도' '누구' '어떤 형태'의 조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니... 적어도 이 책 속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다만 이에 저자는 딱 하나의 소양만을 주문할 뿐이다.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이해하는 방법중 하나. 소위 '인문학적 소양'을 통하여 이 책을 접해도 아마 독자들 대부분은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라. 이에 나는 감히 주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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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딸 : 뒤바뀐 운명 1
경요 지음, 이혜라 옮김 / 홍(도서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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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룬 건륭제의 치세, 이때 비록 가상의 이야기지만 환주공주로 일컬어지는 이 많은 내용들은 분명 나와 같은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선 이른바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소재가 되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원작소설 과는 달리, 대한민국에 있어서 황제의 딸은 이른바 '대만 드라마'로서 더 보급되고 또 접해져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과거 1~3부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분량과 함께 2017년에 새로 제작된 신 황제의 딸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이미 이 책을 볼 여느 많은 '팬'들에게 있어서 이미 그 내용은 사전에 접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으로서 받아들여질 여지가 매우 크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나' 또한 이 원작소설을 접하고 또 읽어내려가는 과정에서, 상당히 그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물론! 이후 출판 될 후편의 이야기 또한 접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현 시점에서 돌아보았을때 분명 원작의 글은 그야말로 과거 접해왔던 영상과 비교해 무엇하나 다른 것이 없었다.   아니! 정정하자면 본래 이 글을 바탕으로 온전히 영상을 찍었다고 해야 정확하려나?


각설하고 결국 시대의 배경, 등장인물의 성격, 그리고 서로 엇갈리고만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공모하는 이들의 무모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위의 모든 이야기는 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이야기가 맞다.   때문에 천방지축의 제비, 청순가련의 자미, 중국 역대의 황제 그 자체의 건륭과 작품 속 최대의 장애이자 악녀인 태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인물들이 어울려 만들어간 소설 속 많은 내용들은 이미 언급한 그대로 옛 기억속의 주인공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이에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옛 영상의 황제의 딸을 상당히 즐겨 보았다.   때문에 그 영상에 등장한 인물들의 모습도, 또 영상속에서 울려퍼지던 나름의 음악과 당시(당나라의 시)에 대해서도, 그 나름의 인식(또는 지식)이 있다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중국... 아니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는 시대 전반에 대한 나름의 환상을 던져준 작품이기도 했다.   비록 현 역사의 시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개인에 있어 중국의 이야기, 중국에 대한 흥미의 첫 단추를 끼워준 것으로서, 여전히 이 소설은 이웃의 중국과의 다리 (문화교류의 다리라고 할까?)와 같은 것으로서 나의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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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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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미지와 신비한 색체의 조화! 이처럼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장점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작품을... 아니 소위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문자(책)로 접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적어도 나는 나름의 사정에 의하여, 이 날씨의 아이라는 책을 통하여 그 작품의 세세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때문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나는 이 날씨의 아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그 나름 사회에 대한 저자 나름의 비판적인 인식을 엿보았다는 감상을 받았다.  흔히 세상 모든 공동체 속에서 보여졌던 '희생'의 모습!  이에 역사 속에서 그것을 '제물'이든 '문명'이든'사명'이든 그 저마다의 가치관을 드러내었지만, 단 하나! 그 속의 핵심에는 개인의 (가치)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의 시스템이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보다 세세한 표현은 피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날씨의 아이'는 스스로 일본을 위한 희생양이 되기를 선택한다.   물론! 이에 대하여 일본사회도 그 속의 국민도 여느(고대의) 야만적인 인종과 같이 그녀의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느 사이에 그녀가 날씨의 아이가 된 사실, 그리고 전승되어 내려온 그녀들?의 역활에 대한 내용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그녀 또한 날씨의 아이로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헌신(또는 희생)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선 것이 사실이고, 또 결과적으로 이에 대하여 그녀 또한 크나 큰 아픔속에서도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하고야 만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뿐'


뜬금없지만 위의 글만큼 이 작품을 드러내는 것이 있을까?   이른바 날씨의 아이가 제 역활을 하지 않음으로서, 계속해서 내리는 비는 일본사회 곳곳에 큰 피해를 주었다.   허나 오늘과는 다른 과거를 기억하는 어느 이에게 있어서, 도리어 잠겨 사라진 개척지와 해안선... 그 모든것이 옛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때문에 이를 통한 일본의 모습을 떠올리면, 의외로 우울한 모습의 일본이 비추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과거 고도의 성장을 이룬 일본, 또한 과거 옛 모습을 바꿀 정도로 격렬하고 역동적인 시대의 한 모습을 거쳐간 일본이지만, 반대로 그 대가로서, '조직을 위하여 살신성인'하는 현 일본인의 모습 또한 만들어내고 말았다.


'사회는 번영해도 그 속의 개인은 죽어간다.'


이에 생각해보면 날씨의 아이가 가진 상징성이야 말로 위의 말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때문에 주인공은 그녀가 결정한 '숭고한 희생'을 거부한다.   게다가 착한 아이이기를 거부하고, 사회의 룰을 거부하고, 무특정 다수의 불편함(민폐)를 감내하면서도 그는 그녀에게 스스로의(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라 주문한다.   단! 그것을 위해선 일본이라는 나라 그 자체가 '화창한 날'을 포기해야 하겠지만...반대로 그 화창한 날을 위하여 오래도록 (공동체가)'날씨의 아이'들을 희생시켜 온 것이였다면?   만약 그러했다면 가장 정상적인 사회와 일본의 모습은 도리어 옛 빗 속에 가려진 일본이 아니였는지?  이에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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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조종 교과서 - 카모프.벨.로빈슨.수리온 마니아가 알아야 할 헬기의 구조와 조종 메커니즘 해설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스즈키 히데오 지음, 김정환 옮김 / 보누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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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없는 비행장치, 활공하지 않는 비행기계!


이처럼 생김새도 그리고 비행을 하는 모습에 있어서도 분명 헬리콥터는 여느 비행장치와 비교해 독보적인 모습을 지닌 기계이다.  그러나 최근의 비극적인 사고에서도 보여지듯이 이는 반대로 비행장치로서 위협적인... 이른바 주변환경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가장 취약한 기계라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를 조종하기 위한 교육과정에 있어서도 또 실질적인 이론과 조정법에 있어서도, 분명 헬기는 비행기와는 다른 접근이 필수적이다.    그도 그럴것이 비록 같은 심장(제트엔진)을 지닌 존재라 하더라도, 본디 생김새가 다르다면? 이는 여느 생명체라 하더라도 다른 종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이 긴 서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비행과는 연관이 없는 사람이기에, 어디까지나 이 모든 것 또한 이론과 지식의 영역에서 끄집어낸 정형화된 정보에 불과하다.   때문에 만약 이에 더 나아가, 항공기를 직접 정비하고 또 조작하는 입장에 서서 위의 서적을 들여다 보았다면? 분명 이 많은 정보들은 오롯이 그 개인의 입장에 있어서도 보다 현실적인 도움이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 분명하겠지만... 허나 반대로 그 실효성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이미 이 세상에는 보더 더 풍부한 내용 또는 '기술과 자격증'취득을 위한 수 많은 서적들이 수없이 많이 있기에, 굳이 이 책과 같은 입문서를 고를 이유가 없어진다.

 

 

때문에 이미 언급한 그대로 이 책은 이른바 항공인을 꿈꾸는 사람 등의 호기심을 풀어줄 '입문서'에 보다 적합한 것이라 정의하고 싶다.  다만 안타깝게도 최신정보 등을 다루는 카탈로그나 취미서적(월간지)와는 동떨어진 모습의 책이지만, 그래도 헬리콥터의 역사와 구조 그리고 활용에 대한 가장 기초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을 드러낸다는 것은?  분명 이에 첫 걸음을 디디려는 독자에게 있어서,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 되어주지 않을까? (단 적어도 난 안 될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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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문화사 1989~2018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헤이세이 오타쿠 연구회 지음, 이석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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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취미의 영역에 있어서, 특히 현 상태를 토대로 곰곰히 생각해보면? 역시나 '나'스스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오타쿠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에 더 나아가 세상이 바라보는 오타쿠(마니아)란 어떠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면?  의외로 점차 위의 확신이 보다 부정적이고 또 불확실한 것으로서, 인식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작은 공포감이 엄습해 오는 것도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과거도 또 지금에 있어서도 굳이 오타쿠라는 단어를 외면하는 이유 또한 바로 위의 걱정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현 시점에서 수 많은 연예인들과 유명인들이 스스로 오타쿠임을 드러내고, 또한 더욱 더 광범위해진 대중매체나 개인방송 등을 통하여, 취미를 (직업으로서도) 공유하고 있기에, 분명 내가 생각하는 인식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 사실이겠지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쿠란 그 단어를 꺼내는데 있어서, 나름 마음 한켠에 거부감이 이는 것은?  역시나 나 스스로가 오타쿠의 부정적 인식... 그 과도기의 시간을 거친 이른바 '중간기'를 오롯이 맞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 또한 어디까지나 '일본의 혼성문화' 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가득하지만, 의외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의 덕력?에 따라서는 매우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 가득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도 그럴것이 1998년 문화개방의 혜택과 영향에 있어서, 만화 만큼 (학생들에게) 분명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옛 TV만화영화, 만화책... 그밖의 자잘한 문구류까지! 그야말로 초기 일본의 하위문화는 아직 그 환경이 미미했던 대한민국사회에 있어서 가장 독보적인(또는 독특한) 존재로 군림했었다.


바로 그렇기에 초기의 (한국형) 오타쿠가 생겨나는데 있어서도, 일본의 서브컬쳐의 흐름은 매우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오타쿠들은 과거 '애들의 영역' '학습의 방해요소' 라는 나름의 부정적인 사회인식을 극복하고 인내함으로서, 이른바 '연속성'을 유지해온 부류들이며,

특히 그 인식에 인하여, 좀더 '독창적인 문화'를 성장시키는데 미숙해져, 지금도 그 대부분의 취미생활을 향유하는데 있어서, 일본의 그늘을 외면한다는 것은 결단코 불가능하다.


때문에 오늘날 '어른이 된 오타쿠'들과 같이 지금의 어린 오타쿠 문화 그 자체를 들여다 보아도, 역시나 그 배경에는 일본의 서브컬쳐 그 존재가 참으로 크다.  이처럼 일본의 경소설(라이트노벨)을 읽고,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일본의 게임을 즐기는데 더해, 더 나아가 비교적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고가의 캐릭터상품을 소비하게 될 때까지! 현재의 오타쿠들은 그 나름의 체계화된 생산과 소비에 충실한 또 다른 사회의 단면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비추어지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결국 책 속의 내용을 접하는 '나'에게 있어서도 이는 단순한 한 켠의 추억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니! 실제로 서브컬쳐는 과거와 오늘의 변천사와는 다른 또 다른 얼굴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단 이에 대하여, 어느 독자들은 그 독특한 성격에 대하여 나름의 생소함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단순한 그래픽과 그림 등에 이처럼 열띤 '지식'을 토해내는 오타쿠 연수회 분들의 그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할 여느 독자들도 있을 것이라 충분히 생각 할 수 있다.


허나 이에 적어도 '나'는 그들이 전하는 바를 (나름) 오롯이 이해했다 생각한다.   실제로 책의 내용 속, 분명 '어느 것'은 어린 나를 거실TV로 이끌었고, 우정을 나누는데 있어 화잿거리가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오늘날에 있어서도 급여의 일부를 낚아채는 소비의 한 축으로서 인식된다.   때문에 이를 반영하면, 오늘날의 서브컬쳐는 과거의 오덕후라는 (나름)부정적인 인식을 벗어 던질 수 있을만큼 그 역사?를 축척했다 생각이되며, 바로 그 인식이 모였기에, 오타쿠의 역사! 서브컬쳐의 흐름, 대표적인 작품군을 다룬 이와 같은 서적이 이처럼 당당히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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