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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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 모두에 있어 유명한 추리 소설가! 그리고 소설 뿐만이 아니라, 드라마까지 만들어지며 저절로 파급력있는 여러 작품들로서,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추리소설가... 이처럼 고백하자면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인물과는 달리, 신참자, 그리고 용의자X의 헌신과 같은 작품으로서 그의 '세계'를 이해 해왔다. 때문에 반대로 말하자면 나는 '팬'으로서 닥치는데로 그의 '새로운 작품' 을 접하는 사람이 아닌! 그 나름의 척도에 따라, 내 입맛에 맞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선택하여 왔다? 라고 감히 주장해도 좋을것이다.

때문에 이에 내가 생각하는 '작품관'은 매우 상세한 편이다. 사건과 추리 그리고 살인! 거기에다 각각의 인간과 사회 모두에게 있어 고통을 주는 문제에 대하여, 저자 스스로의 창의성을 더해 완성하는 하나의 인식의 이야기. 그야말로 노령화, 소통의 부재, 그리고 이 소설과 같은 유전자 조작에 대한 해석에 이르기까지! 흔히 정리하자면 현 시대와 동떨어지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를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진한 여운을 맛보게 하는 것 또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 속에서, 쌍둥이 특히 인간의 욕망과 이해 관계 속에서 태어난 두 여인의 존재는 결국 그 각각의 아름다움과 여린 마음과는 상관없이 '괴물'로서도 이해되는 대상으로서 그려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글을 쓰는 본인 또한 돌아가신 조부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결국 자연적인 유전은 계속해서 계승되는 '동물'로서 매우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역시 그 자연스러움이 배제된 것에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문제점 또한 동반된다는 것을 아마 저자는 은연중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물론 과거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환상의 범위에 있었기에, 당연히 예전 '나'또한 어디까지나 공상의 영역으로서, 이것들을 생각해왔다. 또한 복제된 생물들이 출현하고, 또 그것이 미래의 의료나, 식량의 해결책으로서 기대를 모았을 당시에도 그저 그러려니 하며, 흘려보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경계에 이른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뒤늦게나마 (아마도) 그것이 가져올 문제점에 대한 나름의 '두려움'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만들어진 인공 생물! 클론! 그 무엇보다 인간적인 괴물! 과연 저자는 그러한 존재를 가리켜 어떠한 이야기를 진행시킬까? 이에 감히 그 줄거리를 풀어 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가지 나의 감상을 드러내자면, 이 소설은 분명 마지막의 결말보다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던 큰 틀의 주제에 대한 나름의 줄거리를 이해함으로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더욱 더 큰 소설이하 할 수 있는 여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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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문화사 - 조선을 이끈 19가지 선물
김풍기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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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의미있는 물건을 건내는 것, 또는 행위... 이처럼 선물이 주는 그 행위에 있어서, 분명 과거와 오늘날에 있어 그 겉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적어도 의미만은 변함이 없이 '인간사회'속에서, 살아남아 오늘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선물의 '질'이라는 현실성?을 떠나, '의미'라는 부분에 조금 더 시선을 두게 된다면! 분명 과거 조선시대부터 나열되는 이 많은 물건들이 그 본래의 역활 뿐만이 아닌, 또 다른 가치로서, 소중하게 전해졌다는 것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유례없는 풍요로움과 다양성, 그리고 개성이 존중받는 세상과는 다른 '조선'의 상황 등을 비추볼때! 이른바 '하사품'과 '선물'이 주는 특별함은 분명히 오늘날보다는 다른 가치가 녹아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각설하고 (책 속의 선물들) 단순한 부채와 지팡이, 그리고 종이와 같은 소모품을 주고 받는 것을 떠올려 보았을때, 이에 나 스스로가 처음 느꼈던 감상은 "조선이 가진 폐쇄성과 그 한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였다. 그야말로 현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았을때, 이 매우 흔한 소모품들이 사회의 '유통' 개인의 '소비'의 영역이 아닌 귀중한 '선물(증여)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은? 결국 오늘날 자본주의의 총아로서, 그 사회의 모습이 그저 정체된 (경직된)모습에 가까웠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한계의 모습 (척도)그대로를 측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들을 두고 '사치'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언급한 그대로, 본래 선물이란 '영원한 상품가치를 내포하는 물건'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물론! 오늘날처럼 '물건을 골라 살 수 있는 권리' (현찰을 선물로 주는 행위) 또한 옛 조선시대의 상식에 있어서는 본래 선물이 가지는 '의미'와는 전혀 동떨어진 맞선 또 하나의 행위로 비추어 졌을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옛 선물들의 형태와 그 모습'이 아닌, 그 선물이 오고 가게 된 의미와 현상에 대한 것이 아닐까?


이에 예를 들자면, 사대부들끼리의 '어느 상황'에 따라서, 한낱 버드나무가지조차도 하나의 증표이자, 선물로서도 인식되어졌다. 그러나! 그 버드나무가 황금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이 아닌 바! 어떻게 그것이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선물로서 인식 될 수 있을까? 이때 개인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옛 사람들의 가치, 지식, 사고방식과 같은 다양한 방향에서 발견되는 '사실'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분명 이 책의 제목에서 드러나는 선물이라는 단어에는 '당시의 문화'가 가진 그 생소함이 듬뿍 담겨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당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결국 과거와 오늘날 '선물'이라는 공통된 단어에 있어서도 커다란 차이점(개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선물이 '뇌물' '부정청탁을 위한 수단'으로서 부정되고, 또 경계되고, 있는 것 또한 현재의 시대가 만들어낸 특수한 상황이라 이해해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니리라! 그렇기에 결국 이 책을 마무리하며, 나는 결국 오늘날의 문화보다는 더 과거의 문화! 그 나름 형식이나 의미가 컸던 '고고한 선물의 문화'가 더 이끌리는 것 같은 감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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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눈물 - 개정판
김연정 지음 / 매직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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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소설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가 겪었던? 많은 소설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무언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려는 과한 노력' 물론 그것이 사랑이든, 대의명분이든 개인의 믿음이든 공통적으로 (속된말로) 가르치려 접근한다는 점에 있어서, 나는 그 모든 시도를 마주할때마다 성가신듯한 감상을 받고는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현실'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입장에 있어서도 그 글에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측은한 마음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대하소설 또는 '시사성 짙은' 여느 소설을 써내려감에 있어서, 분명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비추는 현실이란? 무언가 갑갑하고, 또 안타까운 생각을 저절로 품게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처럼 위의 잣대로 생각해본다면, 이 소설 또한 그 나름의 오늘날 또는 현대의 시사성과 공감대,그리고 국민성에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나아가는 가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야 마땅할 것이다. 과거 북쪽, 서쪽 남쪽!! 그야말로 배와 말을 타고, 저 너머 뜻있는 진출을 과감하게 벌여왔던 것과는 다르게, 현대의 한반도는 지형의 한계, 외교의 한계, 역사의 한계 등에 억눌려, 마치 작은 어항 속에서 발버둥치는 물고기와 같은 신세다.

그렇기에 작가는 상상속에서나마 오늘의 '한계'를 바라보는 무언가, 이 현실을 두고서, 가장 가슴 아파해야 할 상대로서, '민족' 이 아닌 '신령스러운 산'을 드러냈다. 때문에, 결국 이 소설에서의 분화 (화산)는 여느 영화에서처럼의 재난(또는 자연현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이 존재한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그야말로 체제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부르는 명칭도 다르지만, 적어도 위의 백두산을 바라보며, 품는 '경외'의 감정은 거의 모두가 동일하다 할 수 있다. 때문에 백두산에 올라, 백두산의 변화를 깨닫기까지의 그 과정에서는 인간 서로의 판단에 따라,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그래도 결국 그 마지막의 분화를 마주하면서, 아마도 소설속 많은 인간들은 그 압도적인 위력 앞에서, 그저 무력한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그보다는 아마도 그간에 벌여왔던 증오와 편견, 갈등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혹여 백두산이 화산활동을 시작한다면? 그리고 전례없는 분화를 일으킨다면? 그러하다면 한반도 양국간의 갈등, 핵 위협, 군사훈련, 극동아시아의 균형과 외교 그리고 평화라는 그 다채로운 단어들이 모두 송두리째 그 영향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국민 대부분은 그저 눈앞의 문제를 마주하며, 또 해결하며 아둥바둥 살아간다. 분명! 세상에는 대의의 이름아래 지켜져야 할 문제 또한 산재해있고, 또 통일과 같은 한민족 모두의 공통된 문제 또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체이지만... 그 긴시간동안 정작 변한것은 과연 무엇이 있는가? 각설하고 결국 이 소설이 표현하는 것 또한 한민족의 '대의'이다. 통일을 바라고, 화합을 바라고, 또한 주변 모든 것에 대하여, 국가와 국민 모두가 오롯이 선 완전한 평가와 대우를 획득하기를 바라는 메시지가 내용 속 여기저기에 녹아있다 여겨진다.

그러나 세상(정국)은 변하지 않았지만, 사람은 변해버렸다. 적어도 '나'의 기준에 있어서는 세삼 '통일' 과 '한민족' 이라는 그 단어에 있어서, 과거와 같은 애국적 가치관을 이끌어내는것은 사실상 어려운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러고보면 분열과 단절이 너무 길었다. 교류라고는 하지만 텔레비젼 저 너머 제3자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만나고 떠드는 희망또한 이제 솔직히 지겹다. 그렇기에 결국 이 책의 내용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와닫지 않는다. 그렇다... 적어도 '나'에게는 뻔하고, 대단하지만? 결국 이 또한 여느 가상의 좋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내일을 오늘같이 살아가는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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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 촘스키 - 현대 아나키즘과 반제국주의의 기원을 찾아서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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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주장이나 강연, 또는 이와 같은 기록물을 통하여, 분명 어느 이는 이에 대하여 큰 공감대를 형성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 또한 아나키즘이라는 매우 생소한 단어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저자인 '놈 촘스키'가 주장하려고 하는 것, 또는 추구하려고 하는 '정의'에 대하여, 나름 지식의 영역에 있어 '이해했다' 주장 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세계' '대한민국의 사회' '나 라는 인간'이라는 상식선에 있어서, 역시나 이 모든 것이 매우 고귀한 '이상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지금 내가 느끼는 감상이라, 감히 주장하려 한다.

각설하고, 오랜 역사에서 비추어볼때, 분명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는 보다 혁신적이고, 광범위하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적어도 오늘날에 있어서, 단순히 굴종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또는 충성의 의미를 두고, 옛 봉건주의적 가치를 내비치는 사람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야말로 인류는 '발전'과 '계몽'이라는 계단을 오르면서, 보다 더 나은 것을 위한 '무언가'를 축척해왔고, 이에 오늘날의 나는 그 결과의 바탕 속에서, 혜택에 가까운 편의를 누리는 특권아닌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허나! 그 발전과정에 있어서... 이른바 '역사의 교훈'의 영역에 있어서, 기존의 가치를 초월한 독보적인 사상이 단 하나라도 있었는가? 하는 것에 집중해보도록 하자.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혁신'의 본 모습은 예전까지의 '제도' '인식' '문제점' 에 대한 '더 나은 보환점'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아카니즘은 그야말로 보환이 아닌 탈피에 가까운 주장과 그 내용이 가득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이 책에서 주장되어지는 놈 촘스키의 주장은, 오늘날의 미국, 오늘날의 강대국이 살아가는 방법 그 자체를 비판하고, 또 부정하는 것이 가득하다. 그가 말하는 '반제국주의' 그것은 단순히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라는 주장에서 벗어나, 지금! 오늘날 미국이 선택한 '세상의 질서' '자국의 안전' '항구적인 평화' '정의' 라는 대의명분 아래 공공연히 벌어지는 현상 그 모두를 지칭한다. 정리하자면 그는 오늘날의 조국이 보다 더 고차원적인 정의를 위해 움직이기를 소망하고, 또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문제는 그 고차원적인 주장을 펴는 '정치 철학자'의 그 주장들을 마주하면서, 과연 나 스스로 또한 그 믿음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하여 (나름) 명확한 믿음이 일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정치의 올바름, 사회의 건전성, 국가간의 신의와 정의의 관철, 개인의 자유보장, 기업의 사회책임의 강화... 물론 이 모든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해답의 일부임이 분명하지만, 결국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 모든 것은 어떤 한계에 가로막혀 여전히 바로잡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도 세상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전쟁! 차별! 빈곤! 이에 대하여, 과연 인류는 지금까지의 '보환을 통한' 진화를 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아카니즘의 총아의 믿음 그대로 보다 더 다른 차원의 해결책을 도입해야 할 것인가... 이에 이 책을 접하는 다른 독자들은 그 문제에 대하여, 한번 더 스스로의 결론을 내리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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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5대 소설 수호전·금병매·홍루몽 편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나미 리쓰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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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떠한 책을 읽는가?' '어떠한 이야기를 접해왔는가?

실제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을때, 아마 많은 사람들은 소위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다양한 국가, 다양한 장르의 서적들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와 같은 (국내의) 현실에 대하여, 비판의 의견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나름 시대착오적인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과거 전통적인 (한반도의) 문학과 현대 문학등에 비교하여, '얼마만큼 그 고유성(또는 특징)을 계승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나는 비관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과거 학생시절 배워온 '중세와 근대 한반도의 문학'은 결국 현대의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있어서, '살아있는 문학'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역시나 '학교 선생님들의 강요로 읽었던 좋지 못한' 기억들 때문일까? 아니면 굳이 고루한 고전을 읽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 느끼는 것일까? 이처럼 결국 오늘날의 한국인은 적어도 '문학의 힘을 빌려 한국 고유의 혼?'을 지키는데 있어서, 그 나름의 노력을 게을리 한다고 여겨진다.

각설하고 서론이 길었지만, 결국 '고전'과 '문학'은 당시 그 독특한 문화권의 성격을 보여주는 가장 밀접한 증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당시 여러 사람들의 '감정'을 두들긴 이야기이자, 기록으로서, 과거 그 많은 이야기들은 구전과 필사 그리고 출판기술의 힘을 빌려 퍼져 나아갔지만? 역시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문명사회의 요람에서, 앞으로 소개될 많은 작품들이 '상상력의 산물로서'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금병매와 홍루몽... 어째서 이와 같은 작품은 '중국문학의 정수' 로서 사랑받는 것일까? 어째서 1700년대에 지어졌다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금도 읽히고, 열광케 하고, 또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일까? 이처럼 나 또한 현대의 '황제의 딸'을 시작으로 여느 많은 중국의 소설과 드라마등을 접했지만? 분명 그 속에는 '중국의 문학'이 가지는 독특한 개성이 드러났던것 같다. 예들 들어 흔히 '사업가'에게 있어서 '꽌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 혹 중국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그 특유의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나의 생각에 따르면, 의리, 협, 사랑, 쾌락...등 이 모든 인간의 사고와 감각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위의 고전들은 분명 '가장 중국적인' 가치를 녹여낸 것이라 여겨진다. 그야말로 당시 중국의 문화권에 있어서, 중국인으로서! 아름답다 생각하는 정의와 감히 실행하지 못했던 욕망을 드러낸 상상의 창조물! 창작의 기록! 이에 아마도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그 고유의 코드를 계승하는 과정에서, 분명 현대 한국인들과는 다른 보다 낮은 통과과정을 겪은 것이 분명해보인다.

물론! 이에 더 나아가 '가장 중국적인 것에 열광하는 중국인'이 과연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리라. 그러나 극히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콘텐츠'의 성격을 보아 할 때, 역시나 민족혼 은 그 나름의 순기능을 발휘하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맞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신과 함께'라는 작품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본래 이는 한국문화의 가장 고루하고, 토속적이고, 허무맹랑한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이에 현대적 감성과 창의성이 '어떻게 녹아들어갔는가'에 따라, 그것은 곧 한국의 멋을 가장 잘 살린, 인기작품 으로서 탈바꿈되어진다.

이처럼 중국 또한 '미래의 홍루몽'을 꿈꾸며, 홍루몽의 또 다른 모습을 계속해서 창조하고, 읽고, 또 소화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 (전통)문학의 계승은 단순한 위기감과 의무감에 짖눌려 선택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중국의 언론등에서 '홍루몽'을 연구하는 일반인을 취재한 것과 같이... 그들에게 있어서, 계승은 일종의 자랑거리이자, 긍지요, 생활의 일부를 담당한다. 이른바 꽌시의 의리, 대형(大兄)으로 불리우는 배포, 깨끗하고 청순한 사랑, 그리움 속에서 피어난 애(愛)시, 긴 고난 끝에 다다른 행복의 본질, 권선징악과 충정의 마음... 이처럼 그 많은 것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고전 문학의 존재와 그 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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