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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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터널 너머 비치는 새하얀 빛, 그 빛을 향하여 3명의 '가족'들은 그 행복한? 발걸음

을 옮긴다. 이처럼 나는 이 소설의 본문을 접하기 이전, 표지를 통해 멋대로 그 내용을 상상했

다. 이때 나는 영화 '데이라잇'처럼 결국 (인간이)재난을 극복한다는 이야기를 '은근' 기대했던

것 같다. 날벼락 같이 찾아온 비극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많은 바램과 희생에

맞서 쟁취하는 생존의 가치는 그야말로 '존엄이란 이러한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가

장 효과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이야기는 한국의 '사회파 소설'에 어울리는 내용을 지닌다. 무너진 터널에 갇

힌 단1명의 남자,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외되고 버림

받는 부조리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자는 이 대한민국의 사회가 지닌 '문

제점'을 나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고 했다. 사고를 당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 사회가 드러낸

무능과 잔인함의 극치! 특히 터널이 무너진 이후 진행된 구조현황, 그리고 사후처리에 있어 '공

동체'가 보여준 것은 그야말로 거짓과 기만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것이였다.

흔히 드러나는 부패한 자들의 모습, 그들은 애초부터 안전한 공공사업을 벌여야 하는 의무에

도 불구하고 공사비를 착복, 그 부족한 만큼 부실해지는 현장의 어려움을 애써 외면해 왔다.

그 결과 터널은 무너졌고 소중한 인명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건만, 그 슬픔과 고통을 감

내해야 했던 것은 오롯이 '아내'의 역활을 함깨했던 여자,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동정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어린 딸 뿐이다. 아무도 책임지려는 이가 없고, 대중들의 냄비근성은

곧 터널에 갇힌 남자를 잊는다.

아니... 한때 동정과 분노를 함께했던 언론과 대중들은 마치 바람에 농락당하는 깃발처럼 줏대

없이 이리저리 휘둘려, 피해자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한 가족은 그들을 떠나, 새로운 길을 걷는다. 부정을 저지르고도 그 대가를 받지않은

고위공직자들,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아래 자신의 주장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일부언론, 편

협한 정의관을 앞세워 국익에 반하는 그들을 공격한 일부 지식인들과 대중(네티즌)들... 이러

한 존재를 용납하는 이 사회에서, 과연 소수가 된 그들이 선택한 그 비극은 과연 어떠한 뜻으

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저자의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출판사에게 그리 좋지못한 평가를 들었

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이 오늘날 새롭게 평가를 받으며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과연 어제

와 오늘에 있어 변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읽는이가 이 내용에서 느끼는 공감대가 형

성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이 단순한 과장이나, 픽션이 아니라

는 것을 안다. '가만히 있으라' 한때 이슈가 되었던 그 말이 이 소설과 오늘날의 세상을 하나로

보게했다. 부조리한 사람과 부조리의 정의가 드리워진 이 세상의 민낮...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

야 말로 이 소설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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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强했고 强하다
이영숙 지음 / 가나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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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노력, 여성들 스스로가 주체로서 바로서기 위해 필요

한 덕목을 분류하고 주장하는 , 나는 위 서적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서, 그러한 감상을 품

었다.   물론 오늘날의 세상은 남성.여성간의 의무나 책임과 같은 차이의 폭을 대폭 줄여나가

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또한 격렬하여, 솔직히 '지금'

이 책을 접하고 논하는데 있어서, '나름 소극적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되는 여지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한 내용만을 따지면, 이 책은 세계사를 아우르는 '인물평'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내용의 본질이 "과거 활약했던 여성위인들의 가치와 면면을 본받아, 오늘날의 여성들도 세계에

서 이름떨치는 기지를 발휘하자" 이지만, 나름 그 가치관을 바꾸면 세계사의 지식을 습득하는

정도로 만족 할 수 있는것이 이 책의 장점? 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나는 어디까지나, 위인들

의 업적과 평가를 접하려고 노력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여성이 아니니까) 허나 이 책의 내

용은 분명히 '역사서'로선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먼저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대

신, 그 내용이 필히 빈약해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자가 아닌, 일반인(종교인) 이기 때문

에, 그 내용의 전문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접하고 싶었던 나로선 나름 그 내용에 실망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중

에 들어선 저자가 혹 종교인으서, "독자들에게 보다 신앙의 가치를 권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감상을 품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그리고 더욱이 평전도 아니다.   비록 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아직 열악하기만한 여성들의 지

위, 소위 유리천장과 성차별로 인해서, 포기하고 단념하고 수긍하는 삶을 사는 여성들의 현실

을 바꾸기 위해서. 

 

그는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을 지은 것이다.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여성)독자들은 이 책

을 통해서 무언가의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세상과 새롭게 마주할 용기를 얻었

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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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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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적이 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들일거야" 혹 정신병동에 속한 환자들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한때 접했던 그들은 많은 사람들

이 상상하는 그런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니였다.   물론 어쩔때는 세상 그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

?가 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소통도, 공감도 가능한 보통 사람과 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럼 우리들은 그들을 무슨 이유로 미쳤다 여기는가?   의사의 진단? 주변 사람들의 판단?  한

때의 그와는 다른 생소한 그를 느꼈을 때의 당혹감이나, 공포?  물론 그중 딱히 무엇이 정답이

라 정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에 그려진 한 여성은 분명히 미친것이 확실해 보

인다.   비록 가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현실세계에서 흔

히 드러나는 '인간혐오'의 리얼한 일침을 확인했고, 또 그로 인해서 불행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

을 보면서, 과거 불행의 그림자를 항상 품고 있었던 '보호자'들의 절망을 떠올렸다.

 

이 모든것이 무엇때문에 일어났는가?  솔직히 '꿈'이라는 계기를 바탕으로 확연하게 변해버린

'여자'의 이야기는 나름 이해하려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있어서,

참으로 마주하기 쉬운 인물이였다.  수수한 외모, 무난한 성격... 한 사내의 아내이자, 한 부모

의 자녀이기도 했던 무난한 위치를 담담하게 지켰던 여자, 그러나 그러한 여자가 갑자기'강력

한 자기주장'을 피력한다.    채식주의자.    결코 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았던 그녀를 향해, 한

때 사람들은 그녀에게 (세상의 상식에 부합하는) 명칭을 부여하지만, 점점 세상의 상식에 반

하는 여자의 행동은 결국 그녀를 단념하고, 버리고, 혐오하게 만드는 가장큰 원인이 되어버린

다.

 

결국 그녀는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소설의 막장에 이르면 결국 그녀는 '나무'(식물)이 되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그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일 없이, 상처주는 일 없이... 그저 '나'라

는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는 동경과 믿음을 담아, 그녀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바램을 위해 그 몸뚱아리를 (사실상) 학대 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니...생각하면 그 바램을 이룬 '선배'가 한명 있기는 하다.  바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 요정

'다프네'다.  그녀는 아폴론의 끈질긴 구애를 피해서 스스로 나무가 되기를 간청했다.   그리고

그것을 상징으로 승격시킨 아폴론에 의해서, 그녀는 인간 세상에 있어, 영광을 상징하는 존재

가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신화와 전설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그 이

야기는 세상사람들에게 '교양''덕목' '교훈' 이라는 명목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소설 속의 여자는 다르다.  그녀도 나무를 꿈꾸었고, 아폴론 처럼 예술을 추구하는 형부

를 만나 가치관을 교류하기도 했지만, 결국 소설에 드러난 그녀의 이야기는 (본인의 만족과 행

복과는 상관없이) 독자들에게  변태성욕자를 마주하는 매스꺼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마주하는 당혹감과 혐오의 감상만을 남길 뿐이다.     결국 그녀는 요정도 식물도 아니였다. 

나의 눈에 비추어진 주인공, 그녀는 그저 피와 살로 이루어진 동물,  스스로 (사회적 동물로서

의) 무리에서 벗어나, 생존의지를 내던진 자살자. 그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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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 무지와 오해로 얼룩진 사극 속 전통 무예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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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순신'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즐겨 접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의 주변 사람중 한

명이 그 드라마를 보면서, 단순한 감상을 떠나, 말 그대로 '욕을 한바가지 퍼붓는게 아닌가?'  

그는 나와 같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였다.   그런 그가 말하기를 그 드라마는 아마도 친일기업

의 스폰서를 받았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고문(조언을 얻음)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제작되었

을 것이 틀림이 없을거란다.   그도 그럴것이 영상에 비추어진 조선군과 일본군의 차이는 그야

말로 극명했다.  

 

말단의 아시가루조차도 갑주를 입고, 장창을 꼬나쥐며 돌격하는데, 그 장면뒤에 등장한 조

선군.... 그들은 아주 친숙한 '포졸복'에 '삼지창' 하나를 벗삼아, 완전무장한 상대를 향해 무모

하리만치 대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하다.  열심히 뛰

고, 진흙탕을 구르고, 심지어는 스트로폼이 틀림없는 가짜 돌맹이까지 던지며 분전했건만, 그

들을 기다리는 역활은 언제나 차디찬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가 되는것이 전부였다.

 

옛말에 '아는 것만큼 보인다' 라고 했던가?  내 친구는 아마 드라마의 많은 영상 속에서, 표현

되는 많은 오류를 보았을 것이다.   허나 영상을 제작하는 쪽도 나름 할 말이 있다.   그들은 분

명히 '역사'라는 장대하고 복잡한 숲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러나 '언제나 부족한 시간과 예

산' 은 그 세세한 오류를 미처 못보고 넘어가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작품들에 '

픽션'이라는 휼륭한 면죄부를 갖다 붙인다.   "결과만 맞으면 되었지, 뭐하려 그 세세한 것까지

따지고 들어요?" 아마도 그들은 이러한 자기변명을 통해 무죄?를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를일이

다.

 

그 예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드라마, 다큐멘터리가 제공하는 영상과 정보를 그리 저항없이 받아

들이는 것을 보라! 그들도 한때 학교의 국사(한국사) 교육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는데,  화승총

에 심지를 꽂아도, 고조선시대에 리니지 뺨치는 화려한 갑옷을 입은 무장이 등장해도, (격렬한

싸움터에서) 주인공들이 칼 한자루 꼬나쥐며 시전하는 판타지 '무쌍'을 목격해도,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영상만 제공된다면, 모든것이 만사 OK이다.   아니... 반대로 이것저것 지적하

는 사람들이 '설명0' '마니아' 훌륭한 5덕'으로 몰려 역 공격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까지 '까마귀 노는곳에 가지말자' 는 심정으로 아예 (사극)방송을 보지 않

는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 어서, 방송이 가지는 영향력은 책이나, 글보다 더욱 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나름 그릇된 영상을 보면서, 우리

의 역사의 지식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그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 각오를 한 모양이다.    심지어 그는 오늘날

영상에 나타나는 '관행'과 '현실' 가까운 미래 역사왜곡으로 발전 될 수 있다는 심

각한 경고를 하는것을 마다하지 않기도 한다.     조선의 군사들... 과연 그들은 어떠한 무장을

했고, 어떠한 훈련을 받았으며, 어쩌한 전술을 가지고 적을 상대하였을까?   그리고 그들을 다

스리는 장수들은 어떠한 자질을 기르고, 다듬으며 군인된 길을 걸어 나아갔을까?   저자는 바

로 그러한 '조선의 무인들' 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     조선시대는 문인들의 시대였다는

상식, 그리고 조선시대 무인들에게 붙여진 '무능'과 '부패'의 딱지... 그 오해와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 쓰여진 책!!! 그것이 바로 이 글 이다.   자, 과연 진정한 조선의 무인들은 어떠한 모습이

였을까? 아마도 지금껏 보아온 다양한 무인들과는 다른, '역사의 무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

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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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 다이어트 : 매운맛 편 - 어쨌든 빼보자
이토 리사 지음, 김수연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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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접하는 일본만화들을 보면, 의외로 생활밀착형? 일상만화가 많다.   그러나 처음 이 책을

들었을때, 솔직히 말해서 "작가가 너무 날로먹는다?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도 그럴것이 표지를 시작으로 해서, 모든 그림들이 그 정교함이나, 완성도에 있어서, 완

전히 낙제점이 아닌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일상만화란 부담없이 '남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 맛으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맛을 따지는 만화를 보면 그 맛집에 한번 가보고 싶고,

여러가지로 생 고생 하는 만화를 접하면, 강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이 되고, 사람이 감히 성취하

지 못한 '인간승리'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름 그 성취의 순간을 축하해주고 싶은 것이 바로 인

간의 마음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도 생각해보면, 저자 스스로가 고뇌하고 싸워 나아가는 '살과의 전쟁'이라는 테

마를 나름 불구경? 하는 마음으로 접하면 되는 것이다.   책 표지에 표현된 '매운맛'이라는 단어

처럼, 그녀는 출산후 찾아온 살을 빼기 위해서, 그야말로 인생 최고의 매운맛을 맛보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는 게으름뱅이이다.   주인공은 마음독하게 먹고, 운동에 매달리기

보다는 보다 손이 덜드는 운동, 5~10분으로 끝마치는 운동으로 살을 빼는 '기적'을 원한다.   게

다가 마음먹은 대로 킬로수가 빠지지 않자, 날씬한 것 보다는 "저 사람 어쩐지 괜찮네?" 라는

말을 듣고 싶다며, 나름 현실과 타협하려는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이란 그렇게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가는 것일까?   아이를 낳고, 살은 늘고, 그림에도 남편

은 괜찮다며 부처님 뺨치는 자애로움을 발산하고, 거기에 주인공은 홀라당 넘어가 위대한? '정

신승리'에 도취해 있다.    살을 빼고 싶다는 열망, 그럼에도 낮잠자는 아이몰래 따먹는 캔맥주

한잔에 세상을 다 얻은듯 행복감에 취하는 모순의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현실의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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