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 다이어리
케빈 브룩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지금껏 책을 비롯해 많은 매체들을 통하여 학습해온 상식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사람의 가슴속에 희망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

다면, 비록 지쳐 쓰러진다 하여도 그 결말은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이렇게 세상사람들은 표현

하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반대로 세삼 현실을 들여다 보면, '그 가치는 단순한 이상론

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생각도 든다.  


이상론... 어째서 나는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언제부턴가 하늘아래 선량한 사

람이 복을 받고,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는 그 단순함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

고 학교에서 배워온 도덕과 윤리를 '있으면 좋은' 이상론의 영역에 밀어 넣었다.    아마도 어

른이 되어가는것은 그런것이 아닐런지.   현실을 살아가면서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들과 부딛

치고, 그들에게 당하고, 상처입고, 겨루기를 하면서, 세상은 보다 윤탁한 생활을 위해 싸워야

하는 전장임을 점점 깨달아 가는것이 바로 이 세상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일지도 모를일이다.   


물론 내 감상에 의하면 저자도 그러한 생각을 토대로 이 책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용을 점점 더 읽어 내려가면 그가 말한 '비정한 세상'은 단순히 교훈의 영역을 넘어

인간성을 부러뜨리는 상식이상의 내용이 드러나, 독자인 나로선 적지않게 부담스럽다.    단순

한 가출소년이 납치되어 알수 없는 벙커속에 가두어지고, 이윽고 어린소녀, 성인 남.여성들이

속속 벙커로 보내지면서 시작되는 어느 사이코의 실험.    분명 벙커에 가두어진 사람들은 그

마주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곧 다가올 공포, 무력감, 분노에 휘말려 인간성을 잃어

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소설이 내용이 그 소년의 일기인 이상, 그가 표현한 모든

것은 '최악의 상황'에 놓인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처음 소년은 상당히 인간적이다.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린 소녀를 돌보고, 희망을

주고, 보호자로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상당히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점차 사람

이 늘어나면서, 인간은 곧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불완전 하지만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헤서, 문

명인으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있다.    그러나 벙커를 지배하는 사

이코는 그러한 인간의 존엄과 생활을 철저하게 부순다.   그들을 고문하고, 춥고 배고픈 상황

에 몰아넣고, 끝내는 벙커에 버려둔체 떠나버리는 무책임함, 그러나 징악의 결과를 원하는 '나'

와는 달리 소설은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충분히 괴로운 피해자들의 비참함을 더욱

더 부각시킨다.


사람이 죽어 나가고, 힘없는 소녀역시 '나쁜사람'이라는 절망의 단어를 되뇌며 싸늘한 시신이

되어간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저자 스스로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소년의 선택(미래)

에 대한 선택의 영역을 모조리 '독자'들에게 떠넘겨 버린것이다.   먹을것도 마실물도 전기도

없이 가두어진 벙커,  탈출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버려진 그 가련한 피해자는 이제 끔찍한 생

존이냐, 끔찍한 죽음이냐를 선택하여야 한다.   살기위해 피와 살코기를 먹는 짐승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그 끔찍하고도 지정한 선택

을 '나'에게 강요한 저자의 머릿속은 과연 정상인가? 어째서 저자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권유

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끝없는 추락'을 표현한 이 글을 출판기를 원하였을까?   혹 내가 저자에

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히틀러라니 1
슈타인호프 지음 / 길찾기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부터 나는 책을 탐구하면서 나름대로의 일탈을 즐겼다.  물론 야릇한 성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서적' 즉 사상 종교 등이 금하는 금서'등을 일부로 발굴해 읽어 내려가는 것

을 즐기는 것이였는데,  그 서적에는 한때 한국출판으로 떠들썩 했던 '요코 이야기'도 있었고,

이 책의 주인공 아돌프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도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완역판은 아니였

지만)나의 투쟁을 읽은것이 중학교 1학년... 물론 지금의 나는 밀리터리 마니아가 아니지만, 후

에 역사를 읽고, 배우고, 쓰는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그때의 호기심은 분명 엉뚱했지만 그래

도 몹쓸것?은 아니였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 책 역시 엉뚱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재미를 지니고 있다 정의하고 싶다.   오늘날 유

행하는 전생과 이세계에 편승?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   만약에 자고 일어나니 히틀러가 되어있

었다면?  그것도 영국과 러시아 (천만 다행으로 미국의 참전까지는 아니지만) 등 이미 멸망으

로 이르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독일의 절대지도자가 되어 있다면?    주인공은 바로 그러한

때의 히틀러가 되어버린다.   그저 2차대전 독일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독일 마니아, 전쟁게

임 마니아였을 뿐인데... 이제 그는 히들러가 퍼질러싼 똥을 치워야 하는 히틀러?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뿐이랴?  판타지 전생물이면 초절정 히로인이라도 존재하지, 그의 양손에 쥐어진 것

은 파시스트 부하들과 게슈타포 그리고 괴링, 힘러와 같은 그야말로 고문관 수준의 광신도 뿐

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히틀러의 평가 또한 최악이다.   절대 독재자, 학살자, 전쟁광, 정신이상자 심

지어는 고자니 여자니 하는 무지막지한 루머의 주인공인 역사속의 인물이다.  때문에 히틀러

의 부흥, 독일제국의 부흥은 주인공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말이 아닐 터이다.   그렇다고, 전쟁

에서 패배하여 스스로 권총자살을 택하는 역사의 흐름대로 따랐다가는 그 자신이 죽어야 한

다.  바로 그럴때 주인공의 선택은 무엇일까?   '독일 제3제국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야'  '나

자신이 살기 위해서야'  그렇게 독일의 총통은 살기위한 전쟁을 치루려 한다.   과연 그가 선

택한 전쟁의 흐름, 히틀러로서의 결말은 어떠한 것인가?   바로 그러한 흐름을 즐기는 것이 이

책의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유머로 무장한 저자의 감각을 즐

기는 것도 잊지 말도록 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야 다오스타
정선엽 지음 / 노르웨이숲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어떻게 십자군전쟁을 정의 할 수 있을까?  종교가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두개

의 문명의 충돌... 그 여파는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역사의 정

의 또한 다른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이 책의 이야기도 내 나름대로 흥미를 이끌었다.    이 책

의 저자는 신학을 배운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정의를 배우고, 신앙에 대

한 지식을 쌓아올리는데 그 의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 여겨진다.   때문에 그의 시선에 그려

진 십자군의 의의를 엿보고 싶었다.   비록 가상의 소설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지식과 신념이

그 글에 고스란히 녹아있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나름의 글은 솔직히 살짝 슬망스러운 감이 있다.   물론 당시 신앙의 '화제'였던 종교

인의 '청빈' '결혼'문제에 대하여 교황과 신부들의 시각차와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의 묘사

에는 나름대로 흥미가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십자군에 대한 저자의 시각

은 없다.  물론 나름대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존재에 대하여 공평한 정의를 내리고 싶었던 것같

기도 하지만,  교황의 뜻을 받들어, 원정의 길에 오른자, 우연하 기회에 중동의 정세에 발을 디

디게 된 자, 등등 너무나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도 많은 의미

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어려 인물들의 비빔밥?은 비빔밥이 아니라, 완전한 따

로국밥이 되어버린 것 같은 감상을 주었다.


십자군에 영광은 없다.  당시 종교인의 욕망, 이해관계에 의하여 일어난 최대의 비극... 이처럼

그가 소설에 배경으로 삼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것에는 아

쉽게도 저자의 역량이 미숙하다 정의 하고싶다.  그러나 역사소설이라 하여, 역사의 의의만 파

고들면 그렇다는 이야기지 저자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창의성은 정말로 높게 평가하고

싶다.   십자군의 태동으로 소년이 중세의 성기사가 되고, 한명의 천방지축 아가씨가 멀고먼 여

행의 끝에 이별한 가족과 상봉한다... 그 이야기를 저자 스스로의 힘으로 구축하고, 또 이렇게

책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힘이 아닌가?  그리고 내 스스로 원했지만 못해

낸 바로 그 결과가 아닌가?   바로 그렇기에 바는 저자를 응원하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으로 산다는 것 -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종과 정조... 대중적으로 익숙한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조선시대의 지도자. 더 정확하게 말하

자면, 한 시대의 부흥을 이끈 좋은 지도자(성군) 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그들은 본

받아야 할 위치에 올라있고, 심지어 선거 등의 정치적 의견이 쏟아지는 공간에서도 그들의 인

품이나, 가치관, 정책의 일부 등이 '본받을 점'으로 화제에 오르고는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은 조선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렇기에 백성을 바라보고, 아끼는 애민정신은 엄격

히 말해 오늘날의 국민들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치관이라 할 수 없을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하여 오늘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의는 무엇일까?  과연 조선의 왕을 이

야기하며, 독자들이 어떠한 감상과 교훈을 얻기를 원할까?   나는 바로 그러한 의문을 시작으

로 이 책을 접했다.   허나 저자는 강력한 자기주장을 펴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의 건국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소위 조선왕조 500년을 이끈 각각의 임금님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담

담하게 독자들에게 풀어 놓음으로서, 그에 비추어지는 사실을 돌아보고, 또 그들이 남긴 유산

들의 가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그 묘한 설득력은 오늘날 '대중'들에게 익숙한 저

자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으로 다가온다.


솔직히 조선은 멸망하여 사라졌지만, 그 시대가 남긴 많은 유산들은 오늘날의 공동체 '한국인'

을 형성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훈민정음으로 시작해 발전한 한글을 쓰고, 예로

부터 추구한 충.효.예의 정신을 계승하며, 단순하게는 이 온화한 날씨를 맞이하여 경복궁 꽃구

경을 가는 사람들도 나름 조선?의 덕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정신과 문화재

의 계승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가치관까지 계승하라 추천한다.    현대인들이 리더에게 주문하

는것.  아니 예나 지금이나 민중들이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그 무엇!   과연 지도자란 어떠한 존

재인가?  민중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쥐어주는 지도자란 무엇인가? 저자는 바로 그러한 조건

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만들어지고, 부흥하고, 망하고... 그 기

나긴 역사에 드러난 역사위에 두드러진 '이랬으면' 하는 그 당연한 상상은 반대로 표현하면 그

조건이 있음으로서 나라와 백성이 불만없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그 나름의 조

건을 아쉬워 하는 것이니 말이다.


때문에 왕으로 살아라.  이 뜻은 철권통치아래 주지육림을 즐기는 최고 지도자가 되라는 뜻이

아닐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과거'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와 같은 왕이 되라는 뜻이

라 믿고 싶다.   누리기 보다는 의무의 삶을 살았던 그 파라오처럼, 적에게 있어 가장 두렵고 강

력한 힘을 발산했던 그 지도자처럼... 내 개인적으로 원하는 지도자란 바로 그러한 인물이였으

면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식탐일기 - 디킨스의 만찬에서 하루키의 맥주까지, 26명의 명사들이 사랑한 음식 이야기
정세진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시절부터 교육받아온 예절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허나 이와 다르게 나의 식생활

의 일부는 책과 연관이 있다.    중세의 식생활을 공부하고, 여러 문호들이 표현한 맛이 궁금해

직접 그곳을 답사해 먹어보고, 예부터 귀하다 여겨진 (요즘은 흔해빠진) 여러가지 향신료와 양

념들을 듬뿍 뿌려먹으며 과거의 호사?를 한번 체험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모험도 해본것이 지금

까지 나의 기행이였다.   그 밖에 홍차에 브랜디를 넣는다거나 하는 기호에 대한 부분도 소설이

나 역사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타인의 기호를 내것으로 소화한' 모방의 결과물이다.


물론 그러한 행동은 비단 나만의 모습은 아닐것이다.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도 그 자신이 '

원조'였던 부분도 있지만, 자신의 입맛, 생활환경, 역사의 한계에 따라서 맛을 추구하고 또 무

언가를 즐기는 그만의 기호를 만들어갔다.    그렇기에 그들의 입맛은 지금까지도 명물로 내려

오거나, 식생활에 뿌리내린 예절로서 남아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먹는것은 무엇인가? 하는 나

름대로의 철학에 대한 하나의 길을 개척하는 의미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과연

이들이 추구한 미식은 식탐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아무리 '먹방'이 유행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비만과 성인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은 무특정 다수들이

행위자를 보며 이른바 '대리만족'을 느끼는 간접적인 행위다.    아마도 그것은 식탐과는 거리

가 멀다.   먹는것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는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

져오게 되었는가?     나는 그러한 질문의 해답을 이 책을 통해서 알라가고 싶었고, 또 나름대로

의 해답을 발견했다 믿는다.


솔직히 이 수많은 명사들의 식은 그만큼 다양하다.   그중에는 달콤하고, 시원하고, 부르러운

맛에 취하여 인생의 마지막을 괴롭게 끝맻은 사람도 있었고, 먹는것을 이용해 대중들의 단결

과 국가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한 전설적인 위인도 눈에 띄인다.   괜히 어느종교에서 '탐식'

을 주의하라 가르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제일 참기 어렵고 다루기 어려운 것이 바로 식욕

이 아니던가?   그것은 위인들도 같았다 하니, 은근히 동길감이 느껴지기도 하다.    그들이 먹

은 음식, 추구한 예절과 철학, 그리고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명사들의 매뉴는 과연 어떠한 것이

있을지... 한번 여러분들도 접하여보는것이 어떠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