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아이들 - 전범의 자식들, 역사와 대면하다
타냐 크라스냔스키 지음, 이현웅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세계2차대전 중 '패배'를 앞둔 세력과 그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최후를 앞두고 선택을 강요당했다.    때문에 지도층과 협력

자들의 기록을 보면, 자살과 더불어 재판을 선고당해 저마다의 죄값을 받음은 물론이요, 각 나라의 기록에 등장해 후대 사람들

의 깨우침과 반성을 상징하는 '전범' 이 되어 역사에 남아있다.


물론 '전범'들은 그들이 일으킨 전쟁과 사건에 대하여 역사의 단죄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인간'이였기에, 저

마다의 가족을 일구었고, 또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들 가족은 개인적으로 '가장(가족 구성원'이 전범

이라는 환경을 마주해야 했으며, 더불어 승전국의 지배아래 누렸던 '부와 권력'까지 빼앗기는 불운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에

이 책은 그러한 운명을 마주한 전범 이외의 아이들이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살아갔는가? 하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철저한 '반성'과 '교육'을 통하여 역사의 오점을 기억한다.   그렇기에 나치스를 떠올리는 가치를 숭상하거나,

대외적으로 그와 같은 공동체를 구성할 경우 그들은 '국가의 법'으로 인하여 처벌을 받게 되어있다.    그렇기에 상식적으로

나치의 아이들은 그러한 사회 속에서 나름대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취직에 제한을 받거나, 불행한 가족사를 원망하면서, 소위 하위인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나의 뇌리에 제일먼저

떠오른 것이다. 


허나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은 '다양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물론 가족의 죄를 반성하며, 스스로 가문의 이름을 버리거나,

종교에 입문해 속죄의 길을 걸은 사람도 있지만, 소수의 '공동체'속에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며 나름대로 부와 권력을 되찾은

후손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렇기에 이들은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선택지에서, 저마다의 생존법을 발견하

고 또 실행했다고도 보여지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 나는 '생존'이라 표현했다.  그저 자식으로 태어나 부여된 부와 권력을 당연하게 누리며 성장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

에 그 모든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사를 생각하면 그들은 불운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허나 근대가 '아비의 죄

가 자식에게 되물림되는' 시대가 아니였던 만큼 그들은 시대의 또다른 기회를 부여받는다.   이에 그들은 선택을 했고,

훗날 그 선택을 마주한 '나'는 당연히 그들의 선택을 저울질 하게 된다.   이웃나라 '일본'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과거의

잔재를 그러모아 반성없이 부를 누리는 뻔뻔한 인간이 받는 '평가'  또는 철저한 반성과 회계를 통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

가는 사람으로서의 '재출발' 그 무엇이 고귀한가 그것은 굳이 답을 찾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묵자가 필요한 시간 - 2000년간 권력이 금지한 선구적 사상가
천웨이런 지음, 윤무학 옮김 / 378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철학'이라 하면 공자의 유가사상 또는 노자의 도가사상을 예로 들 수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묵가는 내 나름대로도 생소한 가치로 다가온다.   그도 그

럴것이 묵가는 고대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채택되지 못한 철학이다.  아니... 오히려 그 지도자

들에 의하여 철저하게 토사구팽을 당하는 개념이였다.


과연 묵가는 어떠한 철학인가?    이에 대하여 저자는 나름대로의 연구와 지식을 동원하여 독자

들에게 지식을 전달한다. 허나 고대부터 터부시당한 가치였기 때문에, 정작 창시자인 '묵자'의

발자취는 물론 많은 가치관에 대하여 앞으로 많은 연구와 발굴이 이어져야 한다는 '앞으로의

과제'도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째서 묵가를 이 세상에 등장시켜야 하는가? 하는

그 미래관을 드러내는 책으로도 이해되는 면이 있다.


어째서 지도자들은 묵자를 외면했는가?  이는 묵자가 사대부가 아닌 노동자의 사회를 구상하

고 추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퀴축을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나 '공인'(기술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묵자는 공자와는 다르게 '이념적 종교적' 가치보다는 실질적 사회에 적용되는 '

변화'를 주장했으며, 이는 생각하기에 따라 서양의 실용주의와 유사한 면을 보이고 있다. 


먼저 묵자는 고대 중국의 '전통적 통치이념'을 뒤집으려 했다.   그는 왕과 사대부, 그아래 사회

가 형성되는 봉건주의에서 벗어나 먼저 농.공민을 중심으로 한 공민집단을 형성하고, 그 사회

를 유지하는 보조적인 입장에서 사대부가 필요하다 보았다.바로 그렇기에 묵가를 추구하는 사

람들은 보기에 따라 '실질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이라 해도 과연이 아니다.그들

은 실현을 근본으로 삼는다.  묵가가 정의한 '선'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자신을 뒤로하고 그 선

을 위하여 움직여야 했다.


이에 저자는 묵가를 두고 '협객의 무리'라 정의하기도 한다.   물론 한국인에게 있어 '협'이란

무엇인가? 하는 정의부터가 생소할지도 모르겠지만,   현대의 많은 작품들 속에서 '협객'들이

제국(국가)의 행정과 형법과는 동떨어진 방법으로 정의를 행하는점, 그리고 공통된 마음가짐

을 중심으로 '형제'가 되어 인연과 의리를 지킨다는 것을 보면, 그 나름대로 같은 길을 걸었던

묵가의 의미도 대강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허나 그것만으로 묵가의 모든것을 소개했다고도 할 수 없다.   저자 또한 묵가의 의의, 학문적

개념, 사회적 적용사례 등의 이야기를 위하여 총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할애하고 있으니 말

이다.   그러니 더욱더 배우고, 이해하려면 직접 읽고 접하는 것 밖에 길이 없으며, 나는 그에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책을 읽기를 권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의의 기사들 - 운명을 건 영웅 이야기 세계 대표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9
프란세스크 미랄레스 콘티조크 지음, 애드리아 프루토스 그림, 공민희 옮김 / 가람어린이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마다 각각 중세의 기사에 대하여 어떠한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

그 속에 공통된 상식 또한 존재 할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반짝이는 갑주를 입은 기병이

라는 것, 그리고 기사 스스로가 '기사도'라는 가치를 숭상하고 실현하는 로멘티스트라는 것, 그

리고 위험과 모험 가운데서 가장 빛나는 역활을 담당하는 주인공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과연

그러한 상식은 어디에서 등장하였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면, 비록 학생 (아동?)을 위

한 책이지만 이 내용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권한다.


허나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기사'들은 모두 이베리아 반도 뿐 만이 아니라.  

영국, 이탈리아, 독일에 이르는 방대한 서방세계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실제 역사와 더불어, 가

상의 전설에 이르기까지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

기사'의 이야기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반도의 '선비'들이 시대를 뛰어넘는 '고상

함'과 '동방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듯이 서양인들에게 있어서, 기사가 바로 그러한 상징으로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증거로 기사들은 단순한 신분에 그치지 않고, 문학과 음악

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쳐왔다. 중세의 파르치팔, 아서왕의 전설, 롤랑의 노래...

이 모든것이 과거 중세의 한 신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보물같은 존재(가치)가 아니

던가?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의 '가벼운'구성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대로 만족한 독서를 했다고 본다.  

이들은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를 추구했지만, 반대로 인간의 욕망이나, 공명심으로 인하여 잘

못된 길을 걷거나, 죽음으로 그 책임을 진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위인들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령탑
에도가와 란포 지음,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 민경욱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분명히 에도가와 란포라 하면 '거장'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라고 생각 할 것

이다.    물론 그가 남긴 작품도 같다.그러나 '원로'로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것과 '현역'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큰 차이점이 있기에, 내가 어째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가?

하는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아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야자기 하야오'에게는 그 이유가 명확해 보인다.   물론 그 스스로도 은퇴한

거장의 위치에 있지만, 그래도 그가 처음으로 이 책을 접하고, 꿈을 키우고, 현역시절 그 것을

바탕으로 '예술'을 완성했을때의 열정은 책머리의 '추천사'의 글만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을정도

이다.    그렇기에 그는 유령탑의 일러스트와 추천사를 통해서 오늘날의 독자들을 유혹한다.

신의 이름을 걸고서라도 '읽어라' 말하는 행동력.  바로 그것에 이끌러 '나 또한 책을 선택

한 것이 아니였을까?


허나 소설은 그야말로 '앤틱'이라는 느낌에 걸맞았다.  에도가와 란포도 어느 이름없는 '작품'(

회색빛 여인)의 영향을 받아 이 책을 지었으니, 그야말로 이 책은 옛 (19세기)영국의 정서와, 일

본의 정서가 합쳐진 소설이라 정의가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 배

경이 일본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을 읽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영

국신사의 매너가 몸에 익은 '마츠오'와 비극의 주인공에 어울리는 '아키코' 그리고 이들에게 '

만남'과 '미스터리'를 선사하는 시계탑의 존재는 과거 그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기 시작한 지성

과 과학기술과 옛 혼령과 전설의 충돌을 보다 적나라 하게 드러낸다.    때문에 이 작품은 미스

터리를 벗어나 당시의 시대상을 엿보는 또다른 재미도 있다.   


한 여성을 불행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정의의 신사' 그러나 그 끝도 없는 불행의 늪

의 존재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생각치 못한 '환경과 기술'  바로 그 모든것이 '당시의 독자'들

이였다면 오늘날 공상과학소설을 접하는것 같은 흥분과 충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

나 그 모든 기술이 상식화 되고 현실화된 세상에 사는 나는 그 충격을 받지 못했다.  반대로 신

사와 숙녀가 서로간의 약속과 이끌림을 이어가며 보여준 그 시대의 (이성)답답함은 실컷 맛보

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에게 차려주는 식탁 - 어른이 되어서도 너를 지켜줄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기억
김진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 문득 '입맛의 완성'을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무엇을 좋아하고, 또 무

엇을 싫어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부모님이 직접 맛보여주지 않으면 (다른곳에서)

결코 맛보지 못하는 우리집만의 요리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공동체를 이루며 만들어낸 나와 너

의 톡특한 식단을 돌아보면서, 나름의 추억을 음미하는 계기가 되어주지 않겠는가? 하는 바램

을 이 책을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이다.


몰론 이 책은 그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로서의 저자, 그리고 그의 딸.  이 둘 사이에

이어지는 '식단'을 통해서 그는 입맛 뿐만이 아니라, 서로 마주보며 식사를 한다는 가족으로서

의 필수요소를 훌륭하게 충족하고 있다.   저자는 식자재를 다루는 요리의 프로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딸의 입맛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 무엇을 고

쳐하 하는가? 하는 문제까지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또 대책을 마련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것

같다.


과거 부모님들은 '편식'을 죄악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맛을 따지기 전에 '식재료를 먹을 수 있

다는 감사함'이 먼저였던 시대. 그렇기에 (나의)부모님 과의 식사는 분명 저자의 식사와는 무언

가 다른 엄격함이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일까?   나는 저자의 식탁에서 세대의 변화를 느낀

다.   저자는 자녀를 어르고 달랜다.  보다 자녀의 입맛에 걸맞으면서도, 서서히 변화를 이끌어

내는 길고도 지루한 싸움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이다.       때문에 책에 따르면 그는 사춘기인 자녀와 계속해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그 시간

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나의 가족들은 서로가 모이는 시간이 사라졌다.   사회인이 되고, 자신만의

시간이 늘면서, 과거와 같이 모두가 수저를 드는 시간도 좀처럼 내기 어려워진 것이다.   물론

저자의 가족들도 그러한 시간이 올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노력은 생각하기에 따라, 그 시간

을 조금이나마 늦추고 싶은 나름대로의 노력과 바램의 이야기라 받아들여도 될 것이란 감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