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스빌 이야기 - 공장이 떠난 도시에서
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 이세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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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는 국가부터, 작게는 동네에 이르기까지, 분명 오늘날의 사회는 치밀한 경제 구성체로 엮여있다.   그렇기에, 때로는 파업과 부도같은 위기상황을 통하여, 그 기반이 위협받을때, 물론 그 최대의 갈등과 피해는 해당 회사와 노동자에게 돌아가겠지만, 의외로 그 여파가 지역사회나 국가경제에 있어서 큰 타격으로 발전되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생각해보면, 오늘날 경제의 위기는 바로 개인의 삶과, 질을 위협하는 최대의 위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과거IMF와 최근 발생한 조선산업의 부진 그리고 GM군산공장의 철수등으로 발생한 많은 사건들을 돌아보자, 결과적으로 어느 몫이 떨어져나가거나, 붕괴되었을 경우 당연히 그 기반은 예전과 같은 균형을 유지 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경제적인 논리로 생각하면, 당연히 그 규모를 줄이거나, 문제점을 배제한 새로운 경제구도를 짜야하겠지만, 문제는 그 축소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작용으로서 '개인의 삶과 질'이라는 인간 권리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것이 있다. 


실제로 이 책의 무대이기도 한 제인스빌 역시도 산업(공장)의 철수로 인하여, 큰 위기를 맞이한다.  때문에 이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또한 그들의 삶과 급여?에 그게 의존하고 있었던 지역경제의 일부 또한 붕괴됨으로서, 결국 제임스빌은 그 도시의 미래 뿐만이 아닌, 개인들의 삶에 있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도약의 가치관을 상실하고 말았다.    바로 이때, 책은 그 상실된 미래에 대하여, 그 누구의 편도 아닌 그 불편한 진실만을 드러내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야말로 나무가 쓰러짐으로 인하여, 더이상 그 과실과 그늘을 만끽 할 수 없게 되었을때에... 과연 인간은 어떠한 선택을 하게될까?   


잃어버린 혜택에 대한 상실감과 분노! 몰락한 중산층!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기에는 너무나도 엉성한 국가.사회의 시스템!


이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책속에서,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장본인 그리고 마땅히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과 정부 등의 무책임함을 고발하는 내용을 기대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이 책은 '예전처럼 함께 갈 수 없게 된' 현실속에서, 각각 그 속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또 감내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에 더욱 중점을 주고 있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저자는 제인스빌의 오늘에 대하여, 세상의 정의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며, 그들이 개개인의 삶의 변화를 꾀하고, 또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또 다른 미래에 대비하려 하는 그 과정을 그려내며, 그 한계, 이기심, 경쟁, 충돌, 용기, 희생, 봉사가 난무하는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과 사실들을 담담히 드러낼 뿐이다.


때문에 독자(나) 또한 이 불행을 바라보면서, 단순한 정의론을 떠난, (리얼한) 비정함을 맛보게 된다.   오늘날 경제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아마도 내 생각에는 때론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미친다.   과거 인간이 단순하게 살고, 또 욕심없이 살았던 시대와 오늘은 분명 다르다.   아니... 무엇보다 현대인으로서, 소비하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을것이다.  그렇기에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낙담한자, 죽음을 선택한자, 아니면 다른이의 것을 빼앗다시피 차지한자! 이 또한 단순히 선과 악의 시선이 아닌, 현대인으로 살고 죽고자 한 나름의 몸부림이라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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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와 대홍수
유현산 지음, 김삼현 그림 / 이마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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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문명인들의 삶은 어떠한 것일까?  그리고 이 동화는 메소포타미아라는 그 주무대의 분위기를 얼마만큼 잘 살려내고 있을까?   이처럼 어린이가 아닌 성인으로서의 '나'에게 있어서, 결국 이 동화는 그 특유의 교훈적인 메시지보다는 보다 동화가 구현한 시대의 재현과, 그 이야기의 균형 등에 더 관심이 간다.   그렇기에 결국 이 책은 어떠한가?  물론 저자는 오늘날 어린이들이 잘 접하기 어려운 생소한 시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고, 또한 동화속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주인공을 등장시키며, 옛 신전과 그것을 중심으로 흐르는 어떠한 사건들을 드러내는 등, 여러가지 이야기로서 흥미와 재미를 느낄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드러냈다.   그렇기에 독자는 그 끔찍하고도 거대한 사건을 마주하며, 인간이기에 범할 수 있는 잘못, 그리고 문명인이기에 범할 수 있는 과오 등을 구분하며, 자연스럽게 그것을 잘못으로 이해하고 지양 할 수 있는 어느 '가치관'을 확립하고 다지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교훈을 위하여,역사는 희생되고야 말았다.


실제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순수하고도 미성숙한 어린이들의 시선에 담겨진 메소포타미아와 어른들 그리고 사건의 진실이라는 녀석은 분명히 바로잡아야 할 '잘못'을 지니고 있다.  그 아무리 뛰어난 지식과 문화수준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혹 그것이 소수들을 위하여 독점되고, 이용되는 세상에 온다면 어찌해야할까?   이에 아이들은 그 아무리 고귀한 존재라 할지라도 '모두를 위한' 정의에 반한다면, 그것을 잘못으로 정의한다.   그야말로 신전의 위엄도, 경비병의 무력도, 심지어 고대의 신이 가지는 절대적인 존엄에 대해서도,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인간)의 있어선 그리 큰 위협과 두려움이 되지는 못한다.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것은 진실인것인가?   


실제로 책 스스로가 드러낸 가치관 중 가장 대표적인 것 또한 바로 '평등'과 '정의'라는 가장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바로 그 사고방식이 '나'에게 있어, 이야기속의 이질감을 맛보게 한 최대의 단점으로 이해가 되고 말았다.  과연 오늘날 의 현대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는 그 얼마나 기나긴 시대의 공백이 드러날까?  그리고 그 공백사이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만큼 더 성숙해지고 또 지혜로워졌을까?    분명 생각해보면,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많으리라!   그러나 적어도 아이들과 메소포타미아(문명) 사이에서만큼은 서로가 결코 융화되지못하는 것이 존재한다.   그렇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정의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식 정의와 현대식 정의 또한 결코 같은 관점으로서 이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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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캐나다로 정했어요 - 서른 살에 떠난 캐나다 이민 생활기
박태욱 지음 / 영진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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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가족 스스로가 살아갈 터전과 미래를 생각함에 있어서, 아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한번쯤 세계를 향해 눈을 돌려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세상(이민)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또 무엇보다 낮선 환경에 내던져진다는 어느 공포감은 결국 세상을 향한 모험을 단념하게 하는 제 일의 장애물이 되어버리는 것이 일쑤이다.   그렇기에 이 책 뿐 만이 아닌, 여느 다중매체 등에서 접 할 수 있는 어느 '사실'은 분명 그것을 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힘껏 노력하여, 스스로 터전을 일구어, 그 과실의 혜택을 누리게 되기까지... 그야말로 나 뿐만이 아닌, 다른 많은 이들이 오매불망 바라온 나름의 메시지가 이 책 속에 오롯이 녹아있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속 부부는 캐나다 이민을 통해서, 보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실제) 저자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때문에 이 만화는 상당히 현실적인 것으로서, 독자에게 보다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혹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캐나다 등의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리고 삶을 살아가야 할 캐나다가 과연 어떠한 사회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도 이 선배?들의 일상 이야기야 말로 상당히 귀중한 멘토의 위치를 가지게 되지 않겠는가.   실제로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주인공들 또한 철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해 이민생활을 성공시킨 것이 아니다.   본래 이 세상에 삶 만큼 뜻대로, 그리고 준비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있던가?   이들도 이민을 선택한 시점부터, 집을 고르고, 직장을 알아보고, 또 주변사회에 적응하기까지, 언어와 문화 그 많은 것에 있어서 불안을 극복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 노하우를 쌓아왔다.


결국 이민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닐까?


뜻을 두고 꾸준히 전진 한다면, 분명 그에 대한 길은 열린다.   물론 그 길이 꿈꾸던 이상과 다르고, 또 생각보다 현실의 무게가 크게 다가온다 하여도, 분명 그 속에서도 일상이 있고, 사랑이 있고, 또 행복도 있다... 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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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을 살아가는 거야
고바야시 에리코 지음, 한진아 옮김 / 페이퍼타이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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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의 총망을 받는 기린아의 삶을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찾아낸 삶의 방식을 따르고, 또 나와 남이 서로 상처받는 일 없이, 그리고 요구하고 요구받는 것 없이,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작은 포상에 만족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 것 뿐이다.   그러나 때론 세상이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잔인한 면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상대를 나의 아래로 깔아뭉개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계약과 지위를 앞세워 '사람'을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으로 (멋대로) 길들이려는 사람까지도 만나며, 소위 '나 자신을 내려놓고 살아야 할 때가 다가올때' 과연 나 스스로가 이 저자와 비교해 다른 선택과 각오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이처럼 이 책의 저자는 정말로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은 '자살미수자' 이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우울증 환자' 이기도 하다.  물론 스스로가 그러한 아픔을 겪게 되기까지, 사회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최저임금이나 다름이 없는 급여를 받고, 또 법이 명시한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반성하고 또 바로잡으려고 끝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반대로 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저자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섬세했다.  물론 몰래 인스턴트 조미료 하나를 훔쳐 도망친 삶의 기억도, 또한 극도의 우울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낙담에 대한 것에서도 공감이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다못해 '죽지못해 산다' 라는 푸념과 한숨 속에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분명 자살은 '못난 선택' 중 최고의 것으로 이해가 될 수밖에 없는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결국 저자는 무엇에 절망하여 죽으려고 했을까, 세상이 생각 이상으로 무자비하고 험난하기 떄문이였을까?


(감상이 어찌되었든)실제로 저자의 자살이 실패면서, 그는 결국 (최종적으로) 일본사회에 있어서, 보호받아야 할 사람으로 분류되고야 말았다.   때문에 사회는 그에게 허락하는 한도의 지원을 한다. 이른바 기초생활대상자로서, 생활비를 지원하고, 자선단체는 저자의 재활과 케어를 도맡아, 일과 봉사를 병행하는 나름대로의 삶의 활로를 제시한다.   물론 이에 저자는 큰 용기를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큰 부담을 받게되며, 특히 기초생활대상자 라는 '배려'는 그야말로 섬세한 저자에게 있어서, 부담을 넘어, 또 다시 죽을 각오를 만들어준 최악의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세상에는 공짜에 익숙해지고, 뻔뻔해지고, 또 세상을 삐뚤어지게 바라보는 무력한 사람도 많지만...


그러나 적어도 저자는 사회의 지원을 받는 것이 오롯이 부끄럽기만 하다 고백한다.  아니 무엇보다 사실상 공짜돈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자신이 비참하고, 그 대가로 때때로 자신의 삶과, 통장을 감시하는 담당 공무원이 무섭다. (지원을 받는 다는 것은 반대로 그와 상응하는 관리를 받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책 속에서 드러난 그의 최고의 목표는 기초생활 수급자 라는 자신의 현실을 벗어나,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다시 살아가는 것이며, 때문에 일한 만큼 평가받고 싶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무언가 진실로 원하게 되었을때, 그것을 얻어낼 공정한 기회를 얻어내고 싶다는 저자의 (책 속의) 메시지가 보다 간절하게 다가오게 되는데...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과연 이에 다른 '잘 참아내고있는 많은 독자들이' 위의 소망에 공감하고, 또 응원의 마음을 품게 될지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그 판단이 곧바로 서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정의롭게' 라는 것은 분명 올바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살이 그러한 올바름이 바로서지 못한 이유 또한 생각해보면, 인간과 사회가 미쳐 바로잡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 또한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때 저자는 그 한계에 부딛치면서 한번...두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왔었다.    과연 그러한 '연약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 격하고 부조리한 사회생활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   또한 이에 저자의 삶을 엿보며, 이른바 '다자이 오사무'의 그림자를 느끼는 것 또한 나만의 감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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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세월을 이기고 수백 년간 사랑받는 노포의 비밀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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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세계를 돌아보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명물과 함께, 그 지역사회에 있어 전통과 명성을 자랑하는 다양한 가게들이 즐겨 소개되고는 한다.   그렇기에 결국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정보를 통하여 견문을 넓히는 것은 물론, 반대로 자신 스스로가 살아가는 국가와 사회의 모습과 비교하며,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을 품게 되기도 하는데, 이에 아마도 '옮긴이'는 그 아쉬운 것에 대한 주요 주제로서, 소위 이 100년 가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책이 소개하는 일본의 오랜 가게들은 단순히 개인의 '직장과 밥벌이' 에서 멈추지 않고, 그 지역사회에서 나름 다양한 영향력을 지니고, 또 공헌하는 가게로서 보다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기에 한때 대한민국에서도, 이러한 전통있는 가게, 시장 등을 구축하고 살려낸다는 취지로서, 다양한 정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러한 많은 노력에 비하여 그 효과는 거의 드러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저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현실이 상당히 아쉬울 것이다.   과연 한국과 일본사이에 그 무엇이 다르기에, 이처럼 큰 차이점이 드러나는 것일까?  과연 한국사회에 100년 가게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변하고, 또 필요한 것일까?


비교적 전통이 잘 융합된 일본의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통있는 가게들... 이처럼 일본의 오늘이 만들어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것들은 무엇이였나?  정부의 정책인가? 성공적인 지방행정의 결과물인가? 개인의 노력과 안목 때문인가? 아니면 본래 일본인의 정서가 만들어낸 흔한 현상에 불과한가?  아쉽게도 결국 이 많은 질문 가운데서, 정확한 해답을 발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음식점, 목욕탕, 까페 등 보다 여러 분야에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많은 이 가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있자면, 나름 이 일본사회가 가진 독특한 문화, 또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감상도 함께 든다.


실제로 소개된 이 가게들이 모두 순풍에 돛 단 듯 원활한 경영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대를 이어 '후계자'가 될 결심을 하고, 각 사업에 있어 최고의 준비와 노하우를 축척하고, 또 그 오랜 전통을 발판삼아 '노렌의 자긍심'으로 승화시키는 점에 있어서는 분명 그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들의 '노력'이 드러난다 하겠다.   또한 특히나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 (내용에 있어) 인상적이 였던 것은 그들이 오롯이 전통을 계승한다는 경직된 사고방식이 아닌, 시대와 의식에 민감하고, 또 사양산업에 대비한다는 나름의 유연성 또한 보여주고있다는 것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아무리 일본이라고 해도 단순한 '명성'만으로 이처럼 오랜 사랑을 받아낼 수는 없으리라.


그렇기에 결국 백년가게의 노하우란 '각 가게가 끝임없이 노력한 결과' 그리고 그 지역과 동네에 성공적으로 녹아든다는 '친화력' 등이 아마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분명 이들은 다른 이들과의 신뢰를 쌓아올렸고, 또 그것을 배신하지 않음으로서, 가게의 역사를 축적해왔다.  그렇기에 분명 이 많은 전통가게들은 모두 신뢰와 융화라는 이 두가지의 가치에 있어서만큼은 '타협이 없는 영업'을 한다.  아니... 적어도 책 속에서 만났던 많은 가게들이 추구했던 것들도 가만히 보면 수익, 기업화, 체인점 등의 경제적인 성공이 아닌, 그 지역에 있음으로 해서 모범(자랑거리)이 되는 일원의 하나가 되는 것이였다.


모범적인 공동체의 일원


분명 일본은 이러한 조건을 통하여, 작은 공동체의 단결을 꾀했다.  그러나 그 공동체의 구멍가게, 음식점 등이 가지게 되는 소위 '텃세'의 분위기도 존재하기에, 세상에는 이를 통해 만들어진 전통에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를 생각하면 이들에게는 사람의 정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바로 그 '정'을 족쇄로 볼 것인가? 아니면 지켜야 할 미덕이자, 매력으로 이해 할 것인가?  그 가치의 차이에 따라서, 소위 100년이 가지는 의미 또한 크게 변화한다.   그야말로 이 100년가게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서로 상반되게 갈려지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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