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교양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김대웅 엮음 / 노마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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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단순히 '인간'이라는 하나의 단어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책 속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풀어 나아가다 보면?  의외로 이는 나 스스로가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보다 폭넓은 범위로 펴져 나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대전제에 따른 정리를 해보면, 이 책은 인간이 왜 이런 모습이 되었나? 왜 이런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 앞으로 어떠한 존재가 될 것인가? 에 대한 그 '변화'에 대한 (저자의)해석이 전부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정작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위해서는 오래도록 인류가 축척한 지식... 그야말로 인류학에서 시작하여, 철학에 다다르는 보다 더 심화된 학문적 가치의 문을 두들길 수 밖에 없는 것기도 하기에, 이에 자칫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내용이 생각 외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에 나의 감상을 풀어놓자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리 말해두고 싶다.


이처럼 결국 저자는 보다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저마다의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이를 보다 쉽고 흥미롭게 풀기위한 나름의 노력'에 더 큰 힘을 기울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흔히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한 가장 좋은 주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것은 바로 은근히 자극적이고, 또는 은밀한 것!!! 소위 음담패설에 다가선 원초적인 주제가 최고가 아니겠는가?


각설하고 본래 인간이 여느 다른 생물과 다른 이유를 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흔히 '지성'의 가치관을 꼽는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인간이 보다 인간다운 모습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필요했던 가장 원초적인 조건에는 과연 그 무엇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 이후 조건을 충족한 인간이 걸어온 '지성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면서,  과연 인간은 오래도록 꿈꾸어온 참된 인간상을 (또는 진화)만들어 오고 있는 것인가?


결국 인간이란 오롯이 신체의 진화과정을 벗어나, 또 다른 형태의 변화를 꾀한 전례없는 움직임을 보여준 종족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스스로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대용품을 제작해온 것!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앞세워, 역사 속 다양한 사건들을 불러 일으킨 것! 더욱이 그 사건 가운데서 발견된 인간의 이성과, 동물의 감성... 그 사이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보다 인간의 내면 그 자체를 탐구한 그 철학의 역사! 그 자체는 인류가 앞서 '독특하고 또 특별한 존재'로 우뚝선 가장 큰 이유가 되어 주었다.    바로 그렇기에!  이 책 또한 인간의 그 독특함을 드러내는 저자의 질문이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미 언급했지만) 소위 즐기기 위해 성관계를 하는 종족, 그리고 즐기기 위해 변화해온 육체!  그러나 이와 다르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 끝임없이 갈등해온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야말로 끝임없이 문제를 풀어온 인류!


때문에 결국 과거와 현재, 특히 오늘날까지 계승되는 것이 아닌, 현재에 이르러 드러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문제'를 마주하면서!  이에 과연 인간이란 예전과는 다른 보다 더 나은 존재로서 '점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나는 이 책의 내용을 통해, 보다 더 나아가야 하는 인간의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나름의 이해를 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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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동학농민혁명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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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거 동학의 난에서 시작하여, 어느덧 혁명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불리게 될때까지.  그야말로 오랜시간동안 변화해 온 (역사적)가치관에 대하여! 이에 저자는 (적어도) 옛 근대사 와는 다른 보다 '현대적 의미'의 동학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때문에 결국 책 속에 드러나는 동학이란? 그 단순히 체제의 부조리를 통해 촉발된 '단순한 폭동'이 아닌 보다 선진화 된 계몽주의적 움직임에 가깝다는 감상이 든다.


실제로 본문에 등장하는 '한울님'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서양의 어느 종교를 받아들인 결과물이 아니라, 보다 동학운동에 있어서, (나는 개인적으로 운동이라 부르겠다.) 대들보와 같은 가치로서 발전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사상과 가치관이 발생함에 따라서, 한반도 근대사에 있어서 어느정도의 '변화'가 일었는가? 에 대해서는 어쩔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도 그럴것이 명색이 '답사기'라고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가 발을 디딘 그 '현장의 모습'이란?  그저 한국의 흔한 산과 능선이 대부분이다.  '역사란 실패에 이리 소홀한 것인가?'  그야말로 소수의 전적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장들이 소위 저자와 같은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부여 될 뿐!   이에 적어도 나와 같은 일반사람들이 '동학의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오래도록 '대중에게 있어 동학이란?'  소위 민족주의운동과 같은 그 개념적인 영역에서 멈추고, 또 만족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야말로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려는 '개혁'! 신분사회를 부정하는 '계몽'! 그리고 옛 조선을 잠식한 제국주의와 외국세력에 대항하는 근대적 민족자결주의의 발현은 말 그대로 오래도록 한민족의 자랑거리로서 학습되어온 것이기도 하기에, 결국 (다수의)독자는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이른바 동학에 대하여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에 결국 문제는 앞으로 이 책을 접할 대다수의 독자들 또한 이미 동학에 대한 저마다의 '정리'가 이미 되어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를 고정관념이라고 하던가?) 실제로 '나' 스스로 또한 그 혁명이라는 단어가 그저 낮설게만 다가온다.   안타깝지만 동학은 실패했고, 또 후유증은 당시 조선에 대한 외세의 개입을 더욱더 가속시켰으며, 더욱이 그 동학운동을 통해서, 소위 '민족자결주의가 형성되고 확산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정의는  지금도 그 실효성에 대하여 많은 의견이 나누어지는 불확실한 것으로 대중에 이해되고 있기에! 결국 저자가 말한 그 결론에 대해서도, 그리 큰 설득력이 발휘되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하여 접한 나름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당시의 정권이 지키지 못한 땅과 권리에 대하여, 결국 민족(민중이) 그 스스로 위기감을 가지고 또 실제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다는 그 역사의 사실을 접하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 말 그대로 그것을 혁명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독자들 또한 동학을 보다 '민중혁명'으로서 인식해 달라는, 저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 이처럼 크게 이 두개의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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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버 보이 - 당신의 혀를 매혹시키는 바람난 맛[風味]에 관하여
장준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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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진행된 서구화의 모습은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거의 미국화에 가까운 모습이였다? 라고 정의가 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굳이 이웃의 일본의 예를 들자면, 일본은 비교적 유럽식 서구화를 정착시킨 사실과 같이, 그 흡수하고 발전시킨 '식문화'의 모습이 세삼 독특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때문에 과거 접해온 다른 무수한 책 등을 참고하더라도, 커틀릿, 우스터소스, 카레, 단팥빵 등 거의 현지화에 성공한 '혼종'을 바라보았을때... 이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위의 예를 통하여, 일본의 맛에 대한 그 나름의 내공을 판단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와인, 치즈, 숙성고기, 올리브유...

각설하고 뜬금없이 위의 예를 든 이유!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있어 위의 식재료를 통해 어떠한 '문화권'이 떠오르는가?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그야말로 이는 유럽이라는 대륙 그 문화권을 떠올리는 가장 대표적인 재료들이며,  이에 실제로 이 책 또한 그 스스로의 주제를 위해서 그 다양한 맛을 탐구하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 있어서, 그 많은 테마를 이해하고 또 소개하고는 싶지만?   그래도 그 내용이 너무나도 길어 질것 같아, 나는 그 나름대로 인상적이였던 '육식' 그 가치에 대하여 오롯이 드러내고자 노력하려 한다.


실제로 오늘날에 있어선 약간 편견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도 오랜시간동안 축척해온 전통의 계승...그리고 그 (식사)문화에 대하여 논하다보면, 의외로 서구식에 있어서 '고기'라는 것을 빼놓고는 그 주제(또는 토론)이 진행되어 지지 않는다.   실제로 역사 속의 조리법이나, 연회 속에서의 주 메뉴, 그리고 더욱이 식사 예절(또는 도구)에 이르는 그 많은 부분에 있어서도, 소위 육고기가 가지는 그 지분은 거의 절대적이라 해도 과연이 아닌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지금 내가 사는 나라!  특히 상당한 서구화가 진행된 대한민국의 식생활에 있에서도 그 고기에 대한 기호는 상당하다. '라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분명 대한민국의 육식은 그 나름대로 독특하고 또 개성적인 방법으로 발전하였기에, 엄밀히 말해 서구적 육식문화에 비해서 나름 큰 차이점이 또한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의 육식문화는 그 고기 (부위별) 본연의 맛을 철저히 탐구하는 편에 속하지만?  그래도 보다 신선한 맛... (또는 뭐라고 해야할까?) 소위 빠른 유통과 소비에 가까운? 육식문화를 즐겨왔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의 저자가 표현하는 육식, 그리고 보다 깊은 '전통의 맛'을 탐구함으로서, 발견하는 맛의 본질은?   앞서 언급은 '신선함'에 대한 가치보다는 보다 나중에 둠으로서 만들어지는 것!   소위 시간이 만들어낸 숙성의 맛에 더욱 더 집중하고 있는 듯한 내용이 많이 보여진다.   예들 들어, 저자가 맛본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의 문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것!   오래도록 먹어오고, 보존하고, 또한 더욱더 발전시키는 현재 진행형의 움직임 속에서!  계속하여 육식의 문화가 계승될 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혁신적인 가치로서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때론 이 미미하기 짝이 없는 '개인의 경험'에 있어서도, 결국 서구의 육식... 세계의 육식에 대한 현주소는? 의외로 크고 또 분명하게 와 닿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책 표지에도 드러나 있지만, 저자 스스로가 찾으려 한 것은 단순한 지금의 '맛집'이 아니다.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그 독특한 풍미를 맛볼 수 있는기회...그리고 그 맛을 표현하면서, 그야말로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한 문명의 맛, 그 속에서 꽃핀 특유의 맛을 표현하는 그야말로 저자 스스로만의 경험등을 이 글을 통하여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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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 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
B. W. 힉맨 지음, 박우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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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세계에 있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름 이 책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음미하고 있자면? 의외로 그 각각 개인의 삶에 있어서 만큼은 "평면 세계" 그 자체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 미약하기 짝이 없는 작은 세상 속에서, 나는 평평한 땅에서 달리고, 일하고, 또 보금자리를 꾸리며, (나름의) 생을 이어가고 있다.   자... 그렇다면, 좀더 시야를 넓혀서, 사회와 국가라는 차원에서 있어서는 과연 둥근지구가 어떠한 조건(또는 장애)으로 다가오게 되는가?  역시 기나긴 철도를 부설할때?  아니면 머나먼 항해를 계획할때?   그것도 아니면 대륙간 탄도로켓을 발사해 목표를 명중시키려 할때?   이처럼 범 지구적 굴곡을 극복하기 위한 '필요성'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면, 어쩔 수 없이 그 생각의 크기또한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


이처럼 결국 보다 현실에 밀접한 조건과 극복! 그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역시나 '평면'이라는 그 단순함에 기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고대 그리스부터, 르네상스, 현대에 이르는 기라성같은 위인들의 업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요, 또한 과거 네개의 코끼리등이 떠받치는 식의 구시대의 우주관을 부활시키자는 것도 결코 아니라는 것 또한 알려둔다.


그저 이 책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소위 '현대 문명에 있어 가장 보펀적인 것' 그 가치에 있어 평면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세삼 그 진실에 대하여, 이해시키고 또 환기시키려 하는 것이 나름 이 책이 가지는 최대의 목표가 아닐까? 나는 그리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사회에 있어서, 이제 직각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지 오래다.   예를들어 자동차의 디자인도, 건물의 모습까지도! 이미 굴곡미에 대한 대중사회의 인식은 보다 첨단화 되고, 세련되었다는 현대적 이 의식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보다 실질적인 존재의의(또는 실존조건)에 있어서 만큼은 그 평면과 직각의 가치는 그 절대적인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굴곡진 바닥에서도 살 수있는 소수의 괴짜들도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작은 세상에서의 평면이란? 실로 거대한 굴곡과는 다른것... 이에 과장하여 전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서 이해해도 좋을 그 나름의 정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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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의 전쟁
캐시 케이서 지음, 황인호 그림, 김시경 옮김 / 스푼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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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세계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 속에서, '게토' (유대인 거주구역) 특히 테레진 수용소에 대한 것은 소위 홀로코스트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잘 알려진 것에 속한다.   실제로 독일 나치스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다른 하나의 민족 그 자체를 (속칭) 보다 효율적으로 학살한 그 사실은, 그야말로 당시 전쟁사와 함께 가장 처참한 사실로서 받아들여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정의하자면, 이 책은 비교적 최근의 아이들(또는 청소년)에게 과거의 참상의 기억을 전달하는 것!  그야말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활을 담당하려한다.


그래서일까? 결국 이 이야기는 단순한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다 과거의 기억을 더한 '진실된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실제로 저자가 이 이야기를 표현하게 된 이유 등을 마주해봐도 그 뒤에는 언제나 과거의 기억이 함께한다.  특히 전쟁 중 직접 홀로코스트를 겪고 또 살아남은 부모를 두었기에, 아마도 저자는 어린시절부터 그 전쟁의 비극을 전해 들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아쉽게도 이에 그 개인적인 입장에 있어서, 혹여 저자가 무엇을 '계승'했는지는 지금의 나(독자)로서는 전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오롯이 피해자를 위한 연민,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강제한 나치스에 대한 비난의 메시지가 넘쳐나지만!   이에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것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소위 홀로코스트를 다룬 여느 기록들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내용에 가깝다.  이에 조금 저자의 입장을 변호하자면 나름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그 이상의 메시지는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배경을 갈고 닦으며, 이에 더 나아가 역사를 마주하여, 스스로의 정의관을 구축하자... 그 옛날 독일3제국과 히틀러 정권이 만들어낸 전쟁범죄를 떠올리면서, 나중의 후손들은 그 점차 멀어져가는 역사의 사실과 기억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올바른 역사적 인식을 알고 또 계승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이 무슨 흔해빠진 주장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역사란 그 단순한 교훈을 계승시키는데 있어서도, 의외로 큰 노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오늘날까지 독일이 보여준 역사적인 속죄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앞으로 유대인 학살에 대한 그 인식에 있어서도 큰 갈등과 논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나는 문득 이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실공방... 그리고 현상과 문제점에 대하여 생각해보기로 했다.   작품 속 '대외선전'을 위해 (나치가) 테레진을 정비한 것과 같이... 본래 이 세상의 악이란 올곧은 절대악으로서 군림하지 않는다.   정비된 테레진, 밝은 표정의 유대인! 그 문화가 꽃 핀 거짓된 테레진이 그 한순간 '진실로서 받아들여진 사실'을 토대로 혹여 독일이 그 테레진의 일을 외곡하고 인정하지 않았다면?   혹 그러했다면 테레진은 역사의 과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 그저 논란만이 넘쳐나는 역사의 한 갈등요소로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현대 이 나라에 자리잡은 어느 갈등과 같은 모습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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