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사의 전선 일기 - 제1차 세계대전의 기록 1914 지양청소년 과학.인문 시리즈 4
바루 지음, 이성엽 옮김 / 지양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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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짧은 분량의 일기... 더욱이 여느 한 인간의 기록에 불과하기에, 분명 당시의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이렇게 후대에 책으로 엮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세계1차대전'은 세계사에 있어서도 매우 커다란 비극으로서 이해된다. 그도 그럴것이 가장 격렬한 전쟁을 치룬 독일과 프랑스(또는 영국도 포함하여)는 '한 세대가 소멸했다.' 라고 정의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는 단순히 무수한 생명을 잃은 것을 떠나, 향후 전쟁이라는 수단과 방법이 가져올 더욱더 잔혹한 미래를 드러내었지만, 안타깝게도 근현대의 인류는 그러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세계를 전쟁의 무대로 끌어올린다.

그렇기에 1.2차 세계대전을 치룬 인류는 이제 '현대 전쟁이 지닌 파멸적인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지적인 형태의 분쟁과 '대리 전쟁'이라 불리우는 작은 전쟁은 여전히 발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전쟁이 확산되지 않는 것은 적어도 인류 스스로가 '역사를 통해 무언가 배우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배움의 연속성, 특히 반전 의식의 학습을 이어가는 역활로서, 이 책은 그러한 과정에 속에서 등장한 성과라 정의해도 틀리지 않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책만 가지고는 1차대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다만 한 병사가 징집되어 전장으로 향하는 '사실' 그리고 스스로 전쟁을 마주하며 어떠한 감정을 가졌는가에 대한 '기억' 등은 결국 한 명의 독자에게 있어서 인간성에 대한 눈을 뜨게 한다.

여전히 똑같은 생활이다.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였다. 그리고 슬펐다. 전선에서 싸우지 못하는 것이 가끔 안타깝기도 했다.

93쪽

분명 이 한명의 군인 또한 전쟁의 발발을 기꺼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주변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만세!'를 부르고, 전쟁의 추이를 궁금해하고, 저자의 헌신에 감사한다 하고, 특히 그 스스로가 전쟁의 와중 부상을 당하며 후방에서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때문에 그는 생각보다 빨리 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이후 그가 전쟁이 끝난후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가 궁금하다. 실제로 저자는 기록의 마지막에 (병원에서의 시간이) 지루하다고, 그리고 보다 빨리 전장에 서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깝다고 기록했다. 허나 그러한 인물이 이후 지루한 참호전과 독가스 공격의 두려움, 특히 베르됭 전투와 같은 무자비함을 겪었다면... 과연 그는 이후 스스로의 행운을 뒤로 하고 푸념?(또는 안타까워)한 자신의 오만함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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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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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명의 최대의 전성기... 라고 딱히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 정신의 또 다른 도약과 발전 을 상징하는 단어로서, 르네상스는 분명 남다른 역사적 무게를 담아내고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주인공인 미켈란젤로 또한 한 명의 유명한 예술가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이른바 '거장'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낸 인물이기에, 그 결과 조르조 바사리를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위의 인물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의 장점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려 했다.

때문에 역사속의 인물로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는 위의 언급한 것과 같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으로서 존중받는다. 더욱이 화가이자 조각가 그리고 건축가로서 이름높은 명성을 얻었기에, 결국 보다 폭넓은 예술의 영역에서 활약한 '남다른 열정'을 상징하는 인물로서도 쉽게 평가되고는한다.

소네트든, 대리석 조각이든, 성 베드로 성당이든, 79세의 예술가는 (...) 그가 두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만 작자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상과 창의만으로도 작자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이러한 강조점이 이동은 미켈란젤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항이다.

252쪽

그렇기에 그가 남긴 여러 예술 작품들은 당시 '미켈란젤로'의 정신과 인생을 대변하는 좋은 증거가 되어준다. 예를 들어 1499년 불과 24세의 나이에 조각한 '피에타'는 당시 예술적인 가치와 명성을 추구하는 혈기 넘치는 젊은 시절을 상징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 작품의 한 켠에 자신의 서명을 새겨넣은 행동은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그 스스로의 실력을 뽐내는 동시에,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켈란젤로의 이름을 각인시키려는 나름의 욕망(또는 혈기)에서 이루어졌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열정과 실력이 뒷받침된 '인생의 절정'을 살펴보는 것도 그 한 인물의 면면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시도일 것이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은 보다 더 나아가 인생의 후반기... 이를테면 이제 노년의 휴식을 만끽해도 이상하지 않을 70~80세의 미켈란젤로가 그 스스로 운명으로서 맞아들인 계획, 즉 성 베르로 성당의 건축 책임자로서 활동한 시간을 통하여, 그가 생애 끝까지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열정' 즉 예술에 바친 그의 꾸준한 자세를 드러내는데 목적을 둔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 아니고, 예술은 전쟁, 정치, 불확실한 재정상태, 변덕스러운 후원자들 앞에서 아무런 힘도 없다. (...) 여든한 살이 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예술가 경력이 끝났다고 생각할 만했다.

전쟁과 피난

실제로 오늘날에도 건재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위용은 (결국) '미켈란젤로의 헌신'이 없었다면 마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베드로 대성당이 오롯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래도록 공사의 책임자로서 현장의 질서를 바로잡고, 더욱이 (절대 갑!인) 교황청의 고질적인 변덕 등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결국 그는 대성당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의 예술적인 영향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노년의 예술가가 그렇게 대성당의 건축에 헌신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굳이 교황청의 계획에 따르지 않아도 그는 이미 뛰어난 예술가로서 이름이 높았다. 이미 이룩한 명성을 뒤로 하고, 특히 그의 오리지널리티를 뽑낼 수 있는 계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째서 대성당의 건축을 담당하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는가?

결국 이는 당시의 미켈란젤로의 노년의 모습, 그리고 이제 막 중세의 옷을 벗어던지려는 당시의 시대상 뿐만이 아닌, 중세인으로서의 (유럽의)사고방식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여느 예술가의 모습과는 달리 (비교적) 사회 친화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기도 했다. 허나 이는 개성적인 모습과 더불어 독선적이고 높은 자존감을 보인 여러 예술가들과는 다른 (내면의)연약함을 가진 인물이라는 말이 된다.

때문에 노년의 미켈란젤로는 그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 특히 그의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료의 죽음을 감내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을 보인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그가 남긴 노년의 많은 기록들을 통하여,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노년의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 성취 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활동'을 모색한 흔적 또한 드러난다.

교황 율리우스3세 시절에, (...) 그는 멀찍이 떨어져서 크게 개입하지 않으면서 공사들을 관리했다. (...) 미켈란젤로는 그 자신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확대했다.

5장 새교황 율리우스 3세

결국 미켈란젤로의 노년의 모습은 단순한 '워커홀릭'이 아닌 또 다른 형태로 확장되어진 예술활동의 일부라 정의 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의 안정적인 시대가 아닌 전쟁을 포함한 수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자칫 중단되기 십상인 대공사를 이끌어 진행시킨 추진력은 분명 미켈란젤로가 지닌 '예술성'(또는 예술에 대한 열망)을 다시끔 재확인 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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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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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앞서 고백하자면 나는 오페라의 유령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물론 뮤지컬로서도, 문학으로서도 세계적으로 이름높은 이 작품을 아주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과 함께, (나름) 나 스스로가 다른 수 많은 평론과 감상에서 자유로운 무지의 상태에서, 어떠한 감상을 가질 수 있는가?를 시험하고자 하는 의도에 있어서, 이 책은 그 나름대로의 실험?에 활용되어질 좋은 소재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잔인한 사람 또는 불쌍한 사람, 이처럼 작품 속 '유령'의 존재로 등장하는 에릭은 작품 속 등장하는 여러 등장인물들에게 있어서 다양한 인식을 심어준다. 예를 들어 오래된 오페라하우스의 터줏대감으로서, 그는 분명 자신의 존재를 은연 중에 비춤은 물론, 그 건물에서의 최대의 예우 그리고 보수를 요구하기도 한다. 때문에 아무도 유령의 정체를 모르지만 곧 많은 이들이 유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또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며, 실제로 유령은 오페라하우스의 '그림자의 왕' 으로 군림한다.

그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또 그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그는 유령이 아니에요 말하자면 하늘과 땅에 속하는 사람이에요.

294쪽

그렇기에 작품 속에서 유령은 곧 미스터리한 존재로서, 보다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과연 그는 어떠한 존재인가? 그리고 이후 일어나는 사람의 죽음과 도난 사건에 그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유령 스스로가 크리스틴의 '노래 천사'를 자청하며 곧 어떠한 대가를 바라게 되는가... 그야말로 그는 미지의 악마(또는 다른 존재)로서, 점차 독자들에게 어떠한 존재로 인식되어가는가? 에 대한 (줄거리 자체의) 흐름을 즐기는 것이 상당히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불행한 에릭! 그를 동정해야 할까 아니면 저주해야 할까?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였다.

544쪽

결과적으로 에릭은 스스로의 뛰어난 재주 때문에 '유령'이 되었다. 물론 매우 흉측한 얼굴 또한 그가 유령의 삶을 선택하게 된 하나의 요소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유령으로서 타인에게 (공포의)'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내면의 욕구를 실현시키려는 여러 모습을 보인다.

이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에릭이 추구하는 '애정' 그 무엇보다 '평범한 부부의 삶'을 손에 넣고자 하는 행위를 마주하며, 일종의 동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의 행보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에릭 스스로가 '해치우는' (현대적 가치 속의) 야만을 목격했으면서도 불구하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작품 속의 여성 '크리스틴' 처럼 유령 에릭에게 동정어린 애정 또는 측은한 감정을 비출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나름 이 책이 지니는 특징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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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1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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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역사를 되볼아볼때, 문득 그 이면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단어는 아마 '비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고대의 여느 문명과 비교해볼때 한반도 속의 국가들은 강대국이 강제한 '동북아의 질서' 속에서 그 스스로의 문화를 꽃피웠다. 물론 이에 수 많은 장점이 발현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역사 속에서 패권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제국의 씨앗'은 (안타깝게도) 한반도에서는 쉽사리 발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제국이라는 기계를 돌리기 위한 연료가 수 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이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동시에, 이에 현대적 관점에 비추어 정복 전쟁과는 다른 요소를 통하여 다른 어떤 것을 통해 '문명의 역동성'을 돌릴 수 있는가? 에 대한 (역사의) 해답을 찾는 것은 등은 분명 오늘날 '역사에 비추어 미래를 개척하는' 현대인의 가치를 올바르게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병자호란을 통해 볼 수 있는 역사의 가치 또한 단순히 '약하면 치욕을 당한다' 라는 표면적인 것만이 아닌 다른 의미도 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에 과연 저자는 어떠한 시선을 통하여 이 사건을 바라보는가? 어쩌면 그것을 쫒아 나름의 의미 등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찰을 보내고 초병을 세우려고 하면 패기있는 자원자는 있지만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

288쪽 쌍령전투

결과적으로 병자호란에 비춘 조선의 모습은 크게 '무능'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당시 국제정치를 행하는 수준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 (방어)전쟁을 수행하는 것에도 미숙한 것을 뛰어넘어 무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과거의 무능에 대한 많은 비판과 의견을 남긴다. "어째서 조선은 그렇게 약해졌는가" 이에 이 책이 정의하는 (가장 큰)주장은 당시 조선의 많은 지도자들이 신념과 명분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척화파는 결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도 그들의 신념을 애국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집착하는 가치는 '명분'이다.

363쪽 조선의 영원한 딜레마

허나 당연하게도 조선은 당시 거대한 세력을 이루려는 청나라의 존재를 위협적으로 바라보았고, 또 나름의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다. 실제로 조선이 '북방의 방어'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면. 어찌 인조 스스로가 철옹성?인 남한산성에 들어가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 노력이 결과적으로 홍타이지의 침략의지를 막아낼 수 있었는가? 또는 발발한 전쟁을 보다 유리하게 수행할 수 있는 조건중 하나가 되어주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면 역시나 그 해답은 부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청나라의 성장과 그 위협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했고, 또 그러한 인식 등으로 발발되어진 전쟁의 흐름 뿐만이 아닌 전체적인 (전쟁)지휘와 통제에 있어서도 '지도자'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야말로 무의미한 탁상공론과 근거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전쟁을 이어가는 와중 실질적으로 청에 저항하고 또 희생되어가는 존재는 최전선의 군인들과 힘없는 백성이였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조 스스로가 치욕을 당하는 순간 오늘날 뿐 만이 아니라 아마 당시 많은 사람들도 이를 '인과응보'와 비슷한 감정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심지어 이후 조선의 국가 지도자로서 인조의 역활, 그리고 전쟁과 전황을 통제하고 지휘해야 하는 조정과 군대의 역할이 청에 미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또 그것에 비추어 '지금 조선에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그들 스스로 던져 반성하거나 수정(또는 수많은 실행과 시행착오 무엇보다 경험!을 축척) 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이후 조선이 걸어온 기나긴 길을 생각해보면 과연 조선의 역동성... 아니 조선의 자주적인 성장과 발전을 저해한 최대의 요소는 주변의 강대국보다 먼저 그들 스스로 (필요이상으로) 집착한 '조선의 근본주의' 그 자체의 존재가 아니였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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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김영수 지음 / 창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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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지금껏 많은 사람들은 인문학적 접근을 위하여 여러 동서양의 고전기록을 접하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접근 이후에 스스로가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또는 실행활에 있어서, 고전의 지식을 얼마만큼 확용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도 이에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이처럼 이 책 또한 고대의 '삼십육계'에 담겨있는 여느 교훈 등이 현대의 수 많은 경영철학에 어떻게 녹아들었는가, 또는 어떠한 성과를 이루어냈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담고 있다.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앞서 언급한 성과 뿐만이 아니라, 본래의 삼십육계의 의미를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분명 유용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이에 나 또한 나름의 이해와 감상을 통하여 나름의 이야기를 이 글에 풀어보려 한다.

경쟁의 길에는 승리도 패배도 있다. (...) 실패에서 교훈을 잘 찾아 종합하고 분석할 줄 아는 사람만 패배를 승리로 바뀌서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341쪽 패전계의 기조와 핵심

각설하고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삽십육계'는 상당히 낮선 개념이다. 물론 세상에는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본래의 삼십육계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이해는 그다지 깊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위의 삼십육계와 손자병법 또는 오자병법과 같이 고대의 군사적 개념을 정리하거나 해석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각각의 병서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해당시대의 모습과 같은 환경에 대한 지식또한 접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라 생각이 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유명한 '삼국지연의'를 곧 잘 이 책의 예(또는 해석의 재료)로 활용한다. 이는 대중적인 인식에 비추어 '병법'어떠한 것으로 이해 되고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야말로 대중이 이해하는 책사란? 어떠한 난관을 극복하는 와중 '착실한 준비'만으로는 그 역량이 부족할 때, 이를 보충하는 역활로서 '인간의 지혜가' 큰 보조적 역활을 할 수 있다는 나름의 믿음을 상징하는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오래도록 삼십육계가 '기만술'만을 강조한 계책으로 치부된 것도 생각해보면 표면적으로 이 내용에서 전략 전술의 '기본'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물론 이는 오늘날에는 상당히 수정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책 속의 요점이 현대의 가치에 어떻게 부합될 수 있는가, 정리하자면그 어떠한 것보다 '상대'를 중점으로 성립하는 여러 계략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 활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가르침이 아닌가 한다.

과거 타국의 침략에 대비한다며 스스로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고, 무기를 갈고 닦는다면 물론 그것만으로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삼십육계의 의미를 더하면 결국 그 최선은 반쪽...도 아닌 무의미한 노력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노력의 일면에는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의 삼국지연의에서도 그러한 면면이 드러난다. 최선의 병법, 최선의 모략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곽가는 원소를 제갈량은 조조를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이야기 속의 최선의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사를 하고 싶으면 고객의 마음을 잡고, 거래를 하고 싶으면 상대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첫 삽을 뜰 수 있다. 물론 이는 당연한 말이라 할 수 있지만, 의외로 우리들은 그 교훈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나름) 어리숙한 면면을 많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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