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국가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3
김혜경 지음, 플라톤 원저 / 생각정거장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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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정부가 되어야 하는가"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은 사람과 사람간 대화의 단골 주제로서 오르내리곤 한다.   그러

나 한 개인이 아무리 주장하고 또 생각해도 그것이 바로 국가의 운영에 있어 즉각 반영되거나,

그 성격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어느 사람들은 그 주제를 꺼내고 토론하는 행위가 '

무의미하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정책을 생각하는 것은 '위에서는 자'  때문에 정

책에 어떠한 힘도 행사하지 못하는 아래 사람은 그저 내 스스로 또는 사회가 부여한 천직에 최

선을 다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주장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 주장도 일리는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민들의 '토론'은 단순한 정보의 교류 그리고

소규모의 단체가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동시에, 시간을 때우기도 하는 '술안주?'의 역활에 머무

르기도 한다.   허나, 그래도 인간은 토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생각하고, 정의하고, 해답을

내놓고, 개인의 정의를 주장하는 것... 그야말로 노예 또는 신민으로의 삶을 거부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정의로운 사회' 를 주제로 많은 철학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또 그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은 오늘날 뿐만이 아닌 과거에도 존재했다.    '플라톤' 고대 서양사에 있어,

'불멸의 명성'을 얻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이 책은 그가 생각한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를

이끄는 사람은 어떠한 인물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그 시대의

기록이다.  

 

때문에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기록은 시대의 상식 또는 세계관에 있어서, 상당한 차

이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차이점 보다는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바란 조건'에

대하여 보다 냉정하고 기대치가 높았던 플라톤의 생각에 대하여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국가

를 이끄는 자는 그 어떤 재산도 지위도 부여되여서는 안된다."  "그들은 신성한 의무를 실행

하는 공동체로서 생활함은 물론,  지도자를 소수의 엘리트로서 '사회'와 분리된 존재(계층)로 

만들고, 오로지 정치라는 특수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는 그의 주장...

 

이처럼 플라톤의 정의는 무척이나 급진적이고, 또 실현 불가능한 이상의 것이다.   때문에 플라

톤(기록에서는 소크라테스로 등장한다)의 주장에 맞서는 트라쉬만코스는 '귀족' '지도자' 로서

즐거움을 포기하라 말하는 그의 주장에 "이 세상에는 결코 적용되지 못할 정책" 이라며 그의 주

장을 일축한다.   그렇다.  그들의 주장은 둘다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지도자에게 궁극

의 청렴을 주문한 소크라테스(플라톤) 그리고 권력지향의 인간과 그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트라쉬만코스, 때문에 우리들은 기록 속의 소크라테스와 트라쉬만코스 사이에서 '듣는

자' 의 역활을 수행하며, 그 주장에서 무엇을 얻어 낼 것인가 하는 생각과 그 정의를

끝임없이 내려야 한다.    

 

실제로 격렬한 토론을 이어간 고대의 두 인물조차도 자신의 의견을 절대적인 해답이라 주장하

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생각이 바로 받아들여져 변화할 것이라

는 기대도 품지 않는다.   허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람들의 이상과 사상 덕분에, 세상은 느리

게나마 변화했다.   어쩔때는 작은 푸념으로, 또 어쩔때는 폭발적으로 확산된 혁명의 부싯

돌로서... 이렇게 그들이 품어온 '공동체에 대한 의견'은 역사와 함께 오늘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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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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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생활상이 변화하고, 사고방식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과연 요리

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인식으로 다가오는가?   물론 식사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으로

행하여야 하는 행위이다.   허나 인간은 그 행위에서 나름대로 애정, 의무, 증오와 같은 자신의

기분을 불어넣었으며, 그로 인해서 생겨난 많은 전통과 결과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상당한 위

치를 차지하며, 오늘날에 까지 무수한 가치관을 남기는데 성공한다.  

 

이처럼 부엌에서 태어난 수 많은 것들은 각각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요리법, 식사예절, 사랑

하는 사람들에게 먹을것을 만들고 또 전한다는 연예의 한 방법, 그리고 가정을 유지하고 이끄

는 주부로서 해야하는 필수적인 의무... 이 모든것은 분명 부엌에서 피워지는 따뜻한 불꽃과,

그 앞에 서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했던 주방의 인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은 '부엌혁명'을 뛰어넘는 가치관 즉 '부엌으로 부터의 독립'이라는 말까

지 나올 정도이다.   밖에는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 할 수 있는 편의시절이 늘었고, 또 요리를 함

에 있어서도, 일일이 재료를 다듬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재료나,기계들이 등장해 사람이 부엌

에 속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그렇기에 일부 사람들은 (옛 사람들에 비교하여) "부

엌에 얶매임 없이 살아 갈 수있는 자유" 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냉동식품, 즉석식품, 식당, 전문요리사... 그리고 간단한 집밥의 가치에 비례하여, 추락하는 전

통의 가치... 이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분명히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의든 타의든 세상의 흐

름과는 다른 삶을 살고있다.    그들에게 있어 부엌은 과거와 이 자신의 헌신을 요구하

는 감옥이요, 한 사람의 인생 모든 것을 설명 할 수 있는 '뜻있는 장소' 요, 누군가의

진정한 '자주독립'의 가치를 재 확인 시켜주는 도전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요리들은 만드는 그들의 인생의 현실이 보다 분

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의 요리를 소개 할 수는 없지만, 개

인적으로 나는 그들의 요리중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수플레'의 이야기가 가장 안타까웠다.  수

플레는 분명히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이다.   그리고 그 달콤한 맛의 매력과는 달리 만드는 사람

에게 있어서, 항상 노력에 대한 보상이 따르는 요리도 아니다.   오븐 안에서 구워지는 그 순간

의 형태가 사람의 손에서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마치 공기가 빠져나가듯 그 형태가 무너

지는 그 요리 앞에서, 과연 주부는 그 요리를 내놓아야 할 머지않은 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 것인가?       

 

분명 그들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들의 일

부는 부엌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소 인정받지 못하는 헌신의 인생을 계속

해서 살아간다.    자녀, 남편, 부모를 위해서 사는 부엌에서의 삶...그렇기에 저자는 표현한다.

 

그녀들이 부엌을 떠나는 그 순간, 분명 그 빈자리는 크고도 깊으리라!  그리고 깨달으리라 자신

의 건강, 입맛, 성격, 그리고 생활의 전반에 있어서, 진정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였는가?

하는 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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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의 시대 1 - 나쓰메 소세키 편 세미콜론 코믹스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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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소설 대망시리즈 중 하나인 '언덕위의 구름'을 접한 기억이 난다.   일본의 소설가 시바 료

타로가 표현한 메이지 일본의모습, 그는 그 시대를 '가난했지만 유례없는 낙천주의가 나라를

휘감았다' 라는 표현으로 그만의 메이지를 묘사했다.   허나 근대의 일본을 묘사한 그 소설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우경화의 이미지를 간직한 작품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소설

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 대부분이 군인들이며, 심지어 저자는 그 당시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있

어서도 당시의 일본은 어쩔 수없이 군국주의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다. 라는 분위기의 글을 작

품에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덕위의 구름은 강철과 군함 그리고 희생속에서 외쳐진 '만세'의 의미에 대한 그만

의 주장을 엿보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대하소설로서, 그 당시의 이미

지를 엿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의 역활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주고싶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메이지를 표현한 시대물중 이 도련님의 시대가 가장 한국인에게 적합한 작품

이라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위의 제목과 같이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등으로 메이지 문학

의 한 기둥으로 이해되는 나츠메 소세키이다.  그리고 총 5권의 이야기를 그려 나아가는 사람들

의 면면을 살펴보면 군인보다는 문학자, 소설가, 민권 운동가, 무정부주의자 같은 당시의 문인

들이 그 중심을 이루어, 당시의 메이지를 표현한다.    그렇기에 도련님의 시대에 표현된 메이

지는 일본의 겉모습이 아니라, 더욱 세밀한 내부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확연히 다른 과거와

미래의 모습이 충돌하는 메이지의 시대 속에서, 나츠메 소세키는 '가짜 서양화'에 매달려 스스

로의 장점을 포기하는 일본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문하생 뿐만이 아니

라, 앞으로 자신과 더불어 일본의 문학을 대표할 많은 문인들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맻음은

물론, (아마도 만화의 극적인 표현을 위한 픽션이라 생각되지만.) 심지어는 앞으로의 미래 일본

의 역사에 있어, 큰 변화를 가져올 도조 히데키나, 안중근과 같은 역사적 인물과의 접촉에 대

한 내용도 작품에 녹아있어, 나름대로 일본인 뿐만이 아니라,한국인도 이 작품의 사실주의적

내용에 그다지 거부감을 품지 않을 것이라는 감상도 든다.

 

게다가 이 작품의 저자가 '다니구지 지로' 라는 것도 나에게 있어서는 플러스 요소로 작용한

다.  무엇보다 사실주의를 추구한 저자는 그 명성에 걸맞게 이 책을 '시대물'로서 중우하고 꽉

차게 묘사했다.  그렇기에 도련님의 메이지는 읽기 버겁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흥미롭기도

하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메이지 시대, 비록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서, 크고 중요한 역활을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름없이 사라져 갈 만큼 초

라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   그렇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역사에 흐름 속에서 자신만

의 인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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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 -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찾은 자본주의 문제와 해법
김근배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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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경제는 현대인의 삶에 있어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주위를 둘러

보면, 정치의 목적도 경제요, 범죄의 원인도 경제요, 삶의 목표도 경제의 논리를 따르고 있지

않은가?   돈을 벌고, 돈을 쓰고, 회사를 키우고, 공동체의 경제력을 확장하는 것이 최종목적이

된 오늘날의 사회... 물론 그 덕분에 사람들은 과거와는 다른 풍족함을 누리게 되었지만, 반대

로 전례없는 문제점에 직면하게 되기도 했다.

 

그 예로 오늘날의 많은 문제점 중 (특히) 대기업의 독주를 생각해보자,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대기업은 필연적으로 그 사회에 있어서도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때문에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며, 다양한 사업에 도전 할 수 있고, 또 자신의 자금력과 영향력

을 이용하여, 다른 경쟁자와는 다른 순조로운 사업을 이어 갈 수 있다.   허나 그 때문에 한국

에서는 '갑(甲)'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여러 계층들에 대한 지원이 미약하며, 심지어는 국가와

정부 그 자체가 친 기업 노선을 채택해 '경제활성화'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

다.

 

물론 이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힘에 비례하여, 강제된 규제

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시 오늘날의 대세는 경제 자유화.  특히 이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학술적자료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그 중 보이지 않은 손 이론이 자주 회자가 되

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애덤 스미스는 신 자유주의의 대변자, 그리고

대기업의 경제활동에 면죄부를 부여한 인물로 쉽게 이해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 이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오늘

날의 기업가들이 신봉하는 애덤 스미스의 개념은 오히려 그들의 편협한 필요성에 의해서 외곡

되어, 신 자유주의라는 잘못된 사상에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오히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큰 기업의 독주, 노동자의 권익 약화., 돈의 크기에 좌우되는 정치와 사법에 대한 여러 가지의

문제점... 과연 이러한 사회를 만든 사상의 중심에 선 애덤 스미스는 정말로 올바른 역사의 평

가를 받고 있는것일까?   그리고 경제학자, 기업가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보이지 않는 손' 의 개

념은 과연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대로 올바르게 적용되고 있는것일까? 

 

아니다!  애덤 스미스는 무분별한 자유방임주의자가 아니다.   그가 주장한 '시장 자유화' 그 이

면에는 당시의 왕과, 경직된 경제논리를 고수했던 소수의 공방들에 대한 시장의 자유, 라는 그

목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필요성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경제를 분리

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던 여러 가치관의 본질이였던 것이다.   그러할

진데... 오늘날 기업인들이 주장하는 스미스의 이론은 어떤가?  '경제활동에 제약은 불필요합

니다.'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는 손의 이론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모든것이 해결됩니다.?'  이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괴변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애덤 스미스라는 인물을

방패로 삼은것 뿐인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국부론'을 이해 하

기를 원한다.    

 

힘있고, 돈있는 자들이 말하는 국부론은 그들의 논리에 의해서 외곡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는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그 잘못에 저항하기

위한 지식을 쌓아야 할 것이다.   뭐... 좋든 싫든 오늘날의 세상은 그 '경제의 논리'에 의해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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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시
이상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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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내용 속에 녹아있는 무언가를 나 스스로 해석하는 것이라 생각

한다.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은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인터넷, 또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

지 가능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들여, 길고 긴 '다른이의 글을 읽

는 다는 것' 그 행위에는 분명히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의 연속이며, 남이 상

각하는 그 무언가를 다시 한번 내 속에 흡수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허나 그렇게 생각하면, 시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버거운 것으로 다가온다.  개성적이고 추상적

인 시... 굳이 말하자면 객관적인 글의 해석보다는 마음이 두들기는 이미지를 느끼는 것이 '시'

라는 것이라,  시 앞에서 나는 소믈리에 앞에 선 비 음주자요, 사자 앞에서 주름잡는 여우가 된

느낌이다.   아... 무섭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평을 쓰는 처지가 되니, 어디 한번 짧

은 글 하나 남겨보도록 하자. ㅡㅅㅡ)/

 

(저자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시 에서, 저자의 과거와 그의 눈을 엿본 느낌을

받았다.    그가 그리는 세상,그리고 기억... 그는 자신이 마주하는 모든 것을 시로 표현한 것

같다.   자신이 선 땅, 그가 바라온 사회의 모순, 그리고 무언가를 통해서 떠올리기 시작한 그만

의 기억의 이야기... 이처럼 그가 표현한 이 수많은 시에서는 분명히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그

무언가가 녹아있다.   그렇다 저자는 '현실 너머의 감성'을 표현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는 그

가 표현하는 시를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이 딱딱하기 그지없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부끄럽지

만, 결국 책의 맨 뒷장을 뒤적인다.  마치 게임의 공략집을 뒤적거리는 것 처럼, 점점 시를 읽

는 것 보다, 평론가의 해석에 매달린다.    때문에 나는 반성한다.   과연 나는 이 책을 쓴 저자

에게 상당히 무례한 행동은 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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