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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요즘 세상이 무서워졌다. 그 증거로 우리들은 때때로 법률, 도덕, 상식에서 벗어난 충격적인
범죄를 언론등을 통해서 자주 접하고는 한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이유 중에는 통신매체와 휴
대기기의 발전으로 인하여, 그 정보를 접하는 빈도가 과거보다 월등히 높아졌다는 일면도 한몫
은 한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 인연도 없는 사람을 살해하고,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하고, 단지 '싫다'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듯한 행위가 만연해진 것은 분명히 오늘날의
사회가 마주하는 하나의 문제점 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 문제점에 다양한 의견과 해답을 내놓는다. "어째서 사람은 규칙을 어기
게 되는가?" "어떤이유로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품위를 내려놓고 야만을 선택하는가?" "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개인의 책임이다" "교육의 문제이다" "가족 공동체에 문제가 있
었다"... 이렇게 무수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가운데, 이 책의 저자는 하나의 답을 주제로 이
소설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본래부터 폭력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 즉 사람을
상대함에 있어, 이성과 친절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아니면 꺼리낌없이) 포식자로서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인간이 있다는 것, 그렇기에 주인공의 부모와 이모는 이 'MAOA' 진단을 받은 주인공
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물론 보는이에 따라, 그 통제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보이게도 한다. 무조건적으로 사회와
격리시키기 보다는 어머니라는 자신의 위치에서, 아들을 통제하고, 항우울제 같은 약물치료를
통해서, 그를 사회인으로서 서로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일반인으로 만들려는 그녀의 노력... 그
러나 결국 주인공은 타인을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고, 이모를 죽이고, 친구를 죽인다.
그렇기에 '나' 는 이 내용을 접하면서, 다시끔 무엇이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는가? 하는 그 원점
을 돌아보게 된다. 그는 자신이 '폭력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자신
을 '간질환자'라고 말하며 정기적으로 약물을 투약하는 것에 대해서도 별로 의심을 품지도 않
았다. 그러나 약물은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
을 느끼는'일종의 활력소를 찾았는데, 결국 그가 찿아낸 것은 수영을 통해서 남을 이기는 '스
포츠'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것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결국 그 수영조차도 못하게 막는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란다. 어째서?
왜? 그는 약물에 무기력한 자신보다는 '몰래' 약을 먹지 않았을때 느낀, 활력넘치던 자신을 잊
지 못한다. 남을 이기고 위에 올라섰을때 느끼던 희열이야 말로 그토록 자신이 찾던 바로 그
가치관이였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어머니는 감옥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주인공에게
감옥이란 몰래 벗어나는 곳이 아니라, 철저하게 부숴버려야 마땅한 것이였다... 자 어떤가? 이
렇게 휼륭히 한명의 살인마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폭력 유전자를 가진 그만의 탓
일까? 나름 주변환경에 그 원인이 있지 않았겠는가? 어머니는 자식이 '병'을 지니고 있다
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의식해, 자식에 대는데 있어 막강한 영향력
을 미친다. 그녀는 자식이 발산하는 투지를 정신병으로 의식했다. 그리고 간간히 터져나오
는 자식의 투지를 철저하게 부셔버린다. 그러나 자식은 그것이 어머니 나름대로의 걱정과 사
랑이라는 것을 모른다. 답답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해결책을 찾고야 만다.
살인으로 발전한 갈등... 결국 유전자의 승리인가? 아니면 집착이 가져온 비극인가? 이 모호
한 경계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나는
그 결론보다는 주인공이 걸어 나아가는 '살인마의 길'을 접하고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
로웠다. 그야말로 이성과 야성이 버무려진 모순의 결정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