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평전 -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유정은 지음 / 리베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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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과거의 인물을 알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들은 대부분 기록에 의존한다. 어린시절 '교양과 인

성'을 기른다는 목적으로 추천되었던 기록... 즉 위인전부터 시작해서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그 수 많은 교육효과 덕분에, 많른 사람들은 보다 획일적인 지식을 '상식'으로 이해하기 시작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떠한 인물들은 역사의 의미를 떠나, 왜곡된 상식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어떤이는 이처럼 다른 주장을 편다. 세상의 상식에 저항하는 내용, 과거의 인물을 보

다 올바르게 바라보게 하기위한 학문의 일환, 이른바 평전은 그 지은이가 펼치는 하나의 주장

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때문에 어쩌한 평전은 세상의 사람들의 격렬한 저항을받기도

한다. 예를들면 민족 반역자로 이름높은 이완용 평전은 그 당시 독자들의 격렬한 비판을 받았

다. '이완용을 변호하다' 그 어떤이의 평가를 보면서, 과연 대중들은 어떠한 감상을 품게 되었

을까?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감한 벌집을 건드린 것에 불과하다. 아니... 적어도 이 '사임당의

변호'는 보다 받아들이기에 수월한 '주장'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저자는 신사임당 이라는 인물

의 무엇을 변호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는 과연 신사임당의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

까? 나는 그러한 궁금증을 이유로 이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 나아갔다.

 

 

결국 이 책에 드러난 내용은 신사임당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내

용이다. 아니... 거기에 더 나아가 오늘날 신사임당의 '배울점'으로 이해되고 있는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과거 일본제국 치하에 형성되었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

는 이 주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현모양처의 신사임당 보다는 천재화가로서의 신사임당을 알아보자"

 

 

"누군가의 어머니요, 아내로서의 인생을 산 인물이 아닌, 스스로의 실력과 교양을 갈고 닦는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삶이 드러나는 신사임당을 알아보자!"

 

 

이처럼 저자의 신사임당은 그녀 스스로만으로도 훌륭한 위인의 반열에 든다. 그리고 "휼륭이

일곱 자식들을 길러냈습니다"라는 그녀의 현모로서의 업적은 어디까지나, 주제가 아닌 부제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본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것이 아니겠는가? 본래 신사임당이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효를 다하고, 꾸준히 재능을 갈고 닦는 위인이 아니였다면, 율곡

이이 라는 인물은 결코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 언제까지 "귀한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그를 기억 할 것인가? 이제 그러한 상식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아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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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 루브르를 거닐며 인문학을 향유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안현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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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 파리, 그리고 그 속의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적으로 수준높은 명화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아무리 마음먹는다고 해도 박물관의 모든 작품을 감상하는 것

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 하니, 그 양에 있어서도 세상 그 어느 박물관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

겠다. 때문에 비록 인쇄된 것이기는 하지만, 사진으로나마 작품을 접 할수 있는 이러한 '서적'

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읽는이에 따라 단순한 탐플릿도, 미술사를 공부하는 교

재로서도 될 수 있는 책의 매력... 그러나 저자는 이에 더 나아가 미술작품 속에서, 인문학의 가

치를 발견하려고 한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쉽게말해 인간의 가치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붓놀림, 끌과

망치로 표현된 그 예술의 결정체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가치. 그것은 마치 손글씨에서 '인격'이

비춘다는 옛사람들의 교훈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게다가 그들의 작품

에는 역사가 녹아있다. 단순히 그림의 배경이나, 사용된 물감의 재료만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욕구, 그 예로 과거 서양을 지배했던 종교의 가치관 아래서 조차 사람

들은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려고 했고, 훗날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해서는 마치 제방

이 무너지듯 보물같은 예술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책이 표현하는 수많은 그림들을 단순하게 마주하기 이전에, 사람이 어째서

예술을 추구하는가? 하는 그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 종교화, 초

상화, 기록화, 지금의 우리들이 단순히 '아름답다'찬미하는 그 수많은 작품들은 본래 그 어느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신이 소개하는 미술작품들을 이미지가 아니라,

스토리를 보다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누가 그렸는가? 누구를 모델로 했는가? 그 시대 사

람들은 그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단순한 누드라 해도,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에 따라, 그

것은 신성을 띄기도 하고, 저속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한번 루브르의 명성을 떠나, 순수한 개인(독자)의 눈으로 한번

이 작품들을 들여다보자.    그러면 모나리자에도 단점이 드러나고, 단순한 스케치에서도 예술

성이 느껴지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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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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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터널 너머 비치는 새하얀 빛, 그 빛을 향하여 3명의 '가족'들은 그 행복한? 발걸음

을 옮긴다. 이처럼 나는 이 소설의 본문을 접하기 이전, 표지를 통해 멋대로 그 내용을 상상했

다. 이때 나는 영화 '데이라잇'처럼 결국 (인간이)재난을 극복한다는 이야기를 '은근' 기대했던

것 같다. 날벼락 같이 찾아온 비극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많은 바램과 희생에

맞서 쟁취하는 생존의 가치는 그야말로 '존엄이란 이러한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가

장 효과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이야기는 한국의 '사회파 소설'에 어울리는 내용을 지닌다. 무너진 터널에 갇

힌 단1명의 남자,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소외되고 버림

받는 부조리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실제로 저자는 이 대한민국의 사회가 지닌 '문

제점'을 나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고 했다. 사고를 당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 사회가 드러낸

무능과 잔인함의 극치! 특히 터널이 무너진 이후 진행된 구조현황, 그리고 사후처리에 있어 '공

동체'가 보여준 것은 그야말로 거짓과 기만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것이였다.

흔히 드러나는 부패한 자들의 모습, 그들은 애초부터 안전한 공공사업을 벌여야 하는 의무에

도 불구하고 공사비를 착복, 그 부족한 만큼 부실해지는 현장의 어려움을 애써 외면해 왔다.

그 결과 터널은 무너졌고 소중한 인명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건만, 그 슬픔과 고통을 감

내해야 했던 것은 오롯이 '아내'의 역활을 함깨했던 여자,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동정과

관심의 대상이 되어버린 어린 딸 뿐이다. 아무도 책임지려는 이가 없고, 대중들의 냄비근성은

곧 터널에 갇힌 남자를 잊는다.

아니... 한때 동정과 분노를 함께했던 언론과 대중들은 마치 바람에 농락당하는 깃발처럼 줏대

없이 이리저리 휘둘려, 피해자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한 가족은 그들을 떠나, 새로운 길을 걷는다. 부정을 저지르고도 그 대가를 받지않은

고위공직자들,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아래 자신의 주장에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일부언론, 편

협한 정의관을 앞세워 국익에 반하는 그들을 공격한 일부 지식인들과 대중(네티즌)들... 이러

한 존재를 용납하는 이 사회에서, 과연 소수가 된 그들이 선택한 그 비극은 과연 어떠한 뜻으

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저자의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출판사에게 그리 좋지못한 평가를 들었

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이 오늘날 새롭게 평가를 받으며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과연 어제

와 오늘에 있어 변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읽는이가 이 내용에서 느끼는 공감대가 형

성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이 단순한 과장이나, 픽션이 아니라

는 것을 안다. '가만히 있으라' 한때 이슈가 되었던 그 말이 이 소설과 오늘날의 세상을 하나로

보게했다. 부조리한 사람과 부조리의 정의가 드리워진 이 세상의 민낮...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

야 말로 이 소설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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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强했고 强하다
이영숙 지음 / 가나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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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노력, 여성들 스스로가 주체로서 바로서기 위해 필요

한 덕목을 분류하고 주장하는 , 나는 위 서적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서, 그러한 감상을 품

었다.   물론 오늘날의 세상은 남성.여성간의 의무나 책임과 같은 차이의 폭을 대폭 줄여나가

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또한 격렬하여, 솔직히 '지금'

이 책을 접하고 논하는데 있어서, '나름 소극적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되는 여지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한 내용만을 따지면, 이 책은 세계사를 아우르는 '인물평'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내용의 본질이 "과거 활약했던 여성위인들의 가치와 면면을 본받아, 오늘날의 여성들도 세계에

서 이름떨치는 기지를 발휘하자" 이지만, 나름 그 가치관을 바꾸면 세계사의 지식을 습득하는

정도로 만족 할 수 있는것이 이 책의 장점? 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나는 어디까지나, 위인들

의 업적과 평가를 접하려고 노력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여성이 아니니까) 허나 이 책의 내

용은 분명히 '역사서'로선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먼저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대

신, 그 내용이 필히 빈약해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자가 아닌, 일반인(종교인) 이기 때문

에, 그 내용의 전문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접하고 싶었던 나로선 나름 그 내용에 실망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중

에 들어선 저자가 혹 종교인으서, "독자들에게 보다 신앙의 가치를 권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감상을 품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다.  

그리고 더욱이 평전도 아니다.   비록 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아직 열악하기만한 여성들의 지

위, 소위 유리천장과 성차별로 인해서, 포기하고 단념하고 수긍하는 삶을 사는 여성들의 현실

을 바꾸기 위해서. 

 

그는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을 지은 것이다.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여성)독자들은 이 책

을 통해서 무언가의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세상과 새롭게 마주할 용기를 얻었

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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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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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적이 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들일거야" 혹 정신병동에 속한 환자들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한때 접했던 그들은 많은 사람들

이 상상하는 그런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니였다.   물론 어쩔때는 세상 그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

?가 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소통도, 공감도 가능한 보통 사람과 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럼 우리들은 그들을 무슨 이유로 미쳤다 여기는가?   의사의 진단? 주변 사람들의 판단?  한

때의 그와는 다른 생소한 그를 느꼈을 때의 당혹감이나, 공포?  물론 그중 딱히 무엇이 정답이

라 정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에 그려진 한 여성은 분명히 미친것이 확실해 보

인다.   비록 가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현실세계에서 흔

히 드러나는 '인간혐오'의 리얼한 일침을 확인했고, 또 그로 인해서 불행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

을 보면서, 과거 불행의 그림자를 항상 품고 있었던 '보호자'들의 절망을 떠올렸다.

 

이 모든것이 무엇때문에 일어났는가?  솔직히 '꿈'이라는 계기를 바탕으로 확연하게 변해버린

'여자'의 이야기는 나름 이해하려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있어서,

참으로 마주하기 쉬운 인물이였다.  수수한 외모, 무난한 성격... 한 사내의 아내이자, 한 부모

의 자녀이기도 했던 무난한 위치를 담담하게 지켰던 여자, 그러나 그러한 여자가 갑자기'강력

한 자기주장'을 피력한다.    채식주의자.    결코 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았던 그녀를 향해, 한

때 사람들은 그녀에게 (세상의 상식에 부합하는) 명칭을 부여하지만, 점점 세상의 상식에 반

하는 여자의 행동은 결국 그녀를 단념하고, 버리고, 혐오하게 만드는 가장큰 원인이 되어버린

다.

 

결국 그녀는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소설의 막장에 이르면 결국 그녀는 '나무'(식물)이 되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그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일 없이, 상처주는 일 없이... 그저 '나'라

는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는 동경과 믿음을 담아, 그녀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바램을 위해 그 몸뚱아리를 (사실상) 학대 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니...생각하면 그 바램을 이룬 '선배'가 한명 있기는 하다.  바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 요정

'다프네'다.  그녀는 아폴론의 끈질긴 구애를 피해서 스스로 나무가 되기를 간청했다.   그리고

그것을 상징으로 승격시킨 아폴론에 의해서, 그녀는 인간 세상에 있어, 영광을 상징하는 존재

가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신화와 전설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그 이

야기는 세상사람들에게 '교양''덕목' '교훈' 이라는 명목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소설 속의 여자는 다르다.  그녀도 나무를 꿈꾸었고, 아폴론 처럼 예술을 추구하는 형부

를 만나 가치관을 교류하기도 했지만, 결국 소설에 드러난 그녀의 이야기는 (본인의 만족과 행

복과는 상관없이) 독자들에게  변태성욕자를 마주하는 매스꺼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마주하는 당혹감과 혐오의 감상만을 남길 뿐이다.     결국 그녀는 요정도 식물도 아니였다. 

나의 눈에 비추어진 주인공, 그녀는 그저 피와 살로 이루어진 동물,  스스로 (사회적 동물로서

의) 무리에서 벗어나, 생존의지를 내던진 자살자. 그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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