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저녁식사 1 - 고향, 그리고 달걀말이 마지막 저녁식사 1
후시노 미치루 지음, 김지연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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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하면서, 과연 그들은 진정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

에 대하여, 자신있게 '그렇다'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 라며 난색

을 표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지위, 환경, 소문, 편견... 이렇게 사람은 올바른 판단을

방해받는 여러가지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이 책의 주인공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사람

들과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았고, 또 사람을 불신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누군가는 죽

음을 맞이한 이후에도 소위 유령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과연 이러한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에 저자는 어느 허름한 가게, 그리

고 음식을 그 처방전으로 마련한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  심

지어 가게의 오너와, 중간에 가게로 흘러들어온 주인공 '가이리' 는 손님을 마주하며, 그 누구

보다 진심을 다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그들에 의하여 다른 누군가는 치유를 받는

다.   나를 바라봐준 사람, 나를 위하여 따뜻한 밥을 차려준 사람, 오직 나만을 위하여...  그렇

게 저녁밥집의 손님은 그렇게 갈망한 감정을 그곳에서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떠나, 잠시 생각하여 보면, 공감은 가지만,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

다.  오늘날의 세상은 전무후무한 서비스 과잉 시대다.   허나 친절을 무기로 사람들 마주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버린 이 시대가 도래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무언가 부족하다느끼고,

또 그것을 갈망한다.   과연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 이 소설을 마주한다면 그에 대한 해답

을 발견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언젠가부터 이러한 질문을 소설에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제1권의 이 소설을 이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느끼는 허전함, 그

리고 문득 그 주제에 공감했던 나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하여, 한번 진단하게 되는 소설... 나는 이 소설을 그러하다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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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의 허브티 - Novel Engine POP
아리마 카오루 지음, 신우섭 옮김, 아바라 헤이키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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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있는동안 마법수행에 힘쓸 것" 처음 이 문장을 받아들였을때의 나는 '역시 이 소

설은 판타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점점 이야기가 진행됨으로서 그려지는 소설의

이야기는 전혀 판타지와는 다른 진한 현실감이 다가온다.    그러고 보면, 중세의 마녀 또한 괜

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였다.    약초를 사용하는 치유사와 무당... 이들이 인간의 멋대로 상

상한 부정한 존재에 덧씌워져 일그러진 괴물로 비추어졌을 뿐!   때문에 이는 오랜 역사를 지나

온 인간들에게, 마녀란 편견의 무서움을 경고하는 가장 대표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것이 지

금의 나의 생각이다. 


각설하고, 이 책의 주인공 역시, 마녀? 처럼 상대적으로 모두에게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그

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를 일찍여읜 주인공의 주변환경 때문이지, 그녀의 성격이나, 외모

의 탓이 아니다.   허나 주변으로부터 받아온 '귀찮은 존재'라는 영향은 그대로 주인공에게 부

담으로 다가왔고, 또 그 덕분에 조용하고 순종적이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소극적인 아이로

자라난 것은 어쩔수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런 그녀도 점점 변화한다.   우연히 흘러들어가게 된 큰아버지의 농원, 인자한 큰아

버지, 별나지만 따뜻한 주변 사람들, 무엇보다 큰아버지의 수업들 통하여 알게 되는 수 많은 허

브들의 매력까지.  이제 그녀는 소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또는 꽁꽁 얼어있는 살얼음같은

마음을 녹여내는 큰아버지의 마법을 전수받는 마녀로서의 수업을 그 누구보다 갈망하고 즐기

는 인물이 되어간다.   허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러한 수업을 통해 구원받는것은 주변의 사람

들이 아니라, 주인공 그녀가 아닐까? 하는 감상을 강하게 받는다.   지금껏 그녀 자신을 올바르

게 바라보아온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저 그녀의 부모가 남긴 유산, 그녀를 돌봐야만하는 부담

이라는 편견으로 그녀를 보아온 사람들의 울타리를 넘어, 그녀가 새로 마주한 세상은 그야말

로 가슴 따듯한 구원의 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허브 하나로 이어지는 인연, 치유, 행복... 분명 허브에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기능

이 있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약효에 기댄다면 그것은 마음이 깃들어있지 않은 단순한 약물에

불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더하여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수단 다과, 차, 모임의 그것이

더해진다면 허브는 그 역활을 넘어 보다 더 큰 효과를 사람에게 부여 할 것이 분명하다.   바로

그 때문에 저자가 허브를 주제로 사용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효과를 보다 보편적인 마법

이라 정의 한 것은 아닐까?   뭐... 덕분에 나는 그 마법의 덕을 톡톡히 느낀다.   무언가 가슴이

따듯해지는 것 같은 치유의 마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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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다이어리
케빈 브룩스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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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책을 비롯해 많은 매체들을 통하여 학습해온 상식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사람의 가슴속에 희망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

다면, 비록 지쳐 쓰러진다 하여도 그 결말은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이렇게 세상사람들은 표현

하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반대로 세삼 현실을 들여다 보면, '그 가치는 단순한 이상론

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생각도 든다.  


이상론... 어째서 나는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언제부턴가 하늘아래 선량한 사

람이 복을 받고,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는 그 단순함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

고 학교에서 배워온 도덕과 윤리를 '있으면 좋은' 이상론의 영역에 밀어 넣었다.    아마도 어

른이 되어가는것은 그런것이 아닐런지.   현실을 살아가면서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들과 부딛

치고, 그들에게 당하고, 상처입고, 겨루기를 하면서, 세상은 보다 윤탁한 생활을 위해 싸워야

하는 전장임을 점점 깨달아 가는것이 바로 이 세상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일지도 모를일이다.   


물론 내 감상에 의하면 저자도 그러한 생각을 토대로 이 책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용을 점점 더 읽어 내려가면 그가 말한 '비정한 세상'은 단순히 교훈의 영역을 넘어

인간성을 부러뜨리는 상식이상의 내용이 드러나, 독자인 나로선 적지않게 부담스럽다.    단순

한 가출소년이 납치되어 알수 없는 벙커속에 가두어지고, 이윽고 어린소녀, 성인 남.여성들이

속속 벙커로 보내지면서 시작되는 어느 사이코의 실험.    분명 벙커에 가두어진 사람들은 그

마주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곧 다가올 공포, 무력감, 분노에 휘말려 인간성을 잃어

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소설이 내용이 그 소년의 일기인 이상, 그가 표현한 모든

것은 '최악의 상황'에 놓인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처음 소년은 상당히 인간적이다.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린 소녀를 돌보고, 희망을

주고, 보호자로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상당히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점차 사람

이 늘어나면서, 인간은 곧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불완전 하지만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헤서, 문

명인으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있다.    그러나 벙커를 지배하는 사

이코는 그러한 인간의 존엄과 생활을 철저하게 부순다.   그들을 고문하고, 춥고 배고픈 상황

에 몰아넣고, 끝내는 벙커에 버려둔체 떠나버리는 무책임함, 그러나 징악의 결과를 원하는 '나'

와는 달리 소설은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충분히 괴로운 피해자들의 비참함을 더욱

더 부각시킨다.


사람이 죽어 나가고, 힘없는 소녀역시 '나쁜사람'이라는 절망의 단어를 되뇌며 싸늘한 시신이

되어간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저자 스스로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소년의 선택(미래)

에 대한 선택의 영역을 모조리 '독자'들에게 떠넘겨 버린것이다.   먹을것도 마실물도 전기도

없이 가두어진 벙커,  탈출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버려진 그 가련한 피해자는 이제 끔찍한 생

존이냐, 끔찍한 죽음이냐를 선택하여야 한다.   살기위해 피와 살코기를 먹는 짐승으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그 끔찍하고도 지정한 선택

을 '나'에게 강요한 저자의 머릿속은 과연 정상인가? 어째서 저자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권유

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끝없는 추락'을 표현한 이 글을 출판기를 원하였을까?   혹 내가 저자에

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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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히틀러라니 1
슈타인호프 지음 / 길찾기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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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나는 책을 탐구하면서 나름대로의 일탈을 즐겼다.  물론 야릇한 성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서적' 즉 사상 종교 등이 금하는 금서'등을 일부로 발굴해 읽어 내려가는 것

을 즐기는 것이였는데,  그 서적에는 한때 한국출판으로 떠들썩 했던 '요코 이야기'도 있었고,

이 책의 주인공 아돌프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도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완역판은 아니였

지만)나의 투쟁을 읽은것이 중학교 1학년... 물론 지금의 나는 밀리터리 마니아가 아니지만, 후

에 역사를 읽고, 배우고, 쓰는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그때의 호기심은 분명 엉뚱했지만 그래

도 몹쓸것?은 아니였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 책 역시 엉뚱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재미를 지니고 있다 정의하고 싶다.   오늘날 유

행하는 전생과 이세계에 편승?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   만약에 자고 일어나니 히틀러가 되어있

었다면?  그것도 영국과 러시아 (천만 다행으로 미국의 참전까지는 아니지만) 등 이미 멸망으

로 이르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독일의 절대지도자가 되어 있다면?    주인공은 바로 그러한

때의 히틀러가 되어버린다.   그저 2차대전 독일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독일 마니아, 전쟁게

임 마니아였을 뿐인데... 이제 그는 히들러가 퍼질러싼 똥을 치워야 하는 히틀러?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뿐이랴?  판타지 전생물이면 초절정 히로인이라도 존재하지, 그의 양손에 쥐어진 것

은 파시스트 부하들과 게슈타포 그리고 괴링, 힘러와 같은 그야말로 고문관 수준의 광신도 뿐

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히틀러의 평가 또한 최악이다.   절대 독재자, 학살자, 전쟁광, 정신이상자 심

지어는 고자니 여자니 하는 무지막지한 루머의 주인공인 역사속의 인물이다.  때문에 히틀러

의 부흥, 독일제국의 부흥은 주인공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말이 아닐 터이다.   그렇다고, 전쟁

에서 패배하여 스스로 권총자살을 택하는 역사의 흐름대로 따랐다가는 그 자신이 죽어야 한

다.  바로 그럴때 주인공의 선택은 무엇일까?   '독일 제3제국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야'  '나

자신이 살기 위해서야'  그렇게 독일의 총통은 살기위한 전쟁을 치루려 한다.   과연 그가 선

택한 전쟁의 흐름, 히틀러로서의 결말은 어떠한 것인가?   바로 그러한 흐름을 즐기는 것이 이

책의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유머로 무장한 저자의 감각을 즐

기는 것도 잊지 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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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다오스타
정선엽 지음 / 노르웨이숲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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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십자군전쟁을 정의 할 수 있을까?  종교가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두개

의 문명의 충돌... 그 여파는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역사의 정

의 또한 다른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이 책의 이야기도 내 나름대로 흥미를 이끌었다.    이 책

의 저자는 신학을 배운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정의를 배우고, 신앙에 대

한 지식을 쌓아올리는데 그 의의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 여겨진다.   때문에 그의 시선에 그려

진 십자군의 의의를 엿보고 싶었다.   비록 가상의 소설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지식과 신념이

그 글에 고스란히 녹아있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나름의 글은 솔직히 살짝 슬망스러운 감이 있다.   물론 당시 신앙의 '화제'였던 종교

인의 '청빈' '결혼'문제에 대하여 교황과 신부들의 시각차와 신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의 묘사

에는 나름대로 흥미가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십자군에 대한 저자의 시각

은 없다.  물론 나름대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존재에 대하여 공평한 정의를 내리고 싶었던 것같

기도 하지만,  교황의 뜻을 받들어, 원정의 길에 오른자, 우연하 기회에 중동의 정세에 발을 디

디게 된 자, 등등 너무나도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또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도 많은 의미

와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어려 인물들의 비빔밥?은 비빔밥이 아니라, 완전한 따

로국밥이 되어버린 것 같은 감상을 주었다.


십자군에 영광은 없다.  당시 종교인의 욕망, 이해관계에 의하여 일어난 최대의 비극... 이처럼

그가 소설에 배경으로 삼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것에는 아

쉽게도 저자의 역량이 미숙하다 정의 하고싶다.  그러나 역사소설이라 하여, 역사의 의의만 파

고들면 그렇다는 이야기지 저자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창의성은 정말로 높게 평가하고

싶다.   십자군의 태동으로 소년이 중세의 성기사가 되고, 한명의 천방지축 아가씨가 멀고먼 여

행의 끝에 이별한 가족과 상봉한다... 그 이야기를 저자 스스로의 힘으로 구축하고, 또 이렇게

책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힘이 아닌가?  그리고 내 스스로 원했지만 못해

낸 바로 그 결과가 아닌가?   바로 그렇기에 바는 저자를 응원하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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