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플리카 - 불변의 진리를 찾아 나선 옷 탐험가들
박세진 지음 / 벤치워머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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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또 발전한다.    그렇기에 그 속의 사람들 또한,

과거와는 다르게 뭐랄까... 보다 세련되고 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 또한 빨라졌다.  라

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의상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만약 오늘날 나름 멋을 부린다

고 5~10년전 양복을 빼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그것만으로 범죄가 성립되

거나,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는 그 나름대로의 '

저평가'를 각오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패션은 변화무쌍하다.  그리고 최신의 패션을 창조하고 또 따라가는 사람들을 흔히 '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 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의상 뿐만이 아니라, 책의 세계에서도

그에 반하는 '반란자'가 존재하니!  그것은 바로 레플리카. 즉 복제품의 존재와 그 수요에 대한

것이다.


앞서 말하겠지만 레플리카의 세계는 그 나름 마니악하다.   예를 들어 초기의 레플리카는 소수

의 '재현가'들을 위하여, 군복이나, 의상을 만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점점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방대해짐에 따라, 레플리카는 단순히 단종된 의상에서부터, 나

름대로 라이센스를 받아 생산하는 제품에 이르기까지 점점 그 영역을 확대해 왔으며, 그 결과

오늘날에는 단순한 복제품이 아닌, 과거의 계보를 이어가는 '새로운 브랜드'로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이들의 세계는 단순히 '짝퉁'을 만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레플리카'의 선두주자는 일본이다.   일본이란 어떠한 나라인가?  이들은 선진국의 모

든것을 모방해 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때문에 오늘날 패션과 취미에 대하여 그들이 노련하고

방대한 '기술'을 지니고 있는 그 바탕에는 과거 그들 스스로가 복제품을 만들며 얻어낸 노하우

가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이지만,

정작 그가 소개하고있는 대부분의 '브랜드'는 일본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주장한다.    무

조건 복제하고, 따라하고, 모방한다 해서 그것이 나쁜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노력과 시도를

통하여, 원작을 뛰어넘는 기술력을 확보한다면 머지않은 미래,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지 않

겠는가?  아니면 이처럼 또하나의 (소비)세계를 재 창조 할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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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신흥식 역주 / 글로벌콘텐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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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와 문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무엇을 예로 들어야 할

까?    계급사회? 다수의 공동체?그저 무리를 이루고 산다해서, '인간은 특별하다 주장 할 수 있

는것인가?'  이에 본인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농업을 통해, 정착 문명을 이루

었고, 학문을 정립하며 성장했으며, 기계문명을 통하여 유례없는 소비문명을 구축한 독특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인간은 '윤리'를 통하여 '질서'를 확립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들

이 야만의 무리에서, 문명인으로 발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 스스로가 사람이란 어떠한 것

인가?  하는 정의에 대하여 생각하고, 정리함으로서, 결국 그 나름대로의 '약속'을 사회 전체에

퍼지게 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그 약속의 본질은 동.서양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같

으나,그 형식은 저마다의 차이점을 보인다.


그중 이 책은 동양의 '약속' '윤리'를 추구하는 책으로서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명나라 말기에 지어진 이 책은 당시 중국 스스로의 정서 뿐 만이 아니라, 동남아의 불교의 정서

또한 녹아들어, 보다 선과 질서에 대한 '인간의 인내'를 주문한다.   실제로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얼마나 유혹에 흔들리는가?  저마다 부과 권력을 탐하고, 맛있는 음식은 물론, 즐거

운오락과 쾌락을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양심쯤은 잠시 뒤로 접어버리는 사람들 또한 뉴스에 심

심치 않게 보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현대인들은 흔히'법률'에 기대려 한다.    그러나 강제성에 기댄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

회라 할 수 있겠는가?  어째서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가?    적어도 이 책

의 모든 '가치에 기대라' 주문하지는 않겠다.   오늘날 스스로를 사대부라, 신선이라 부르며, 답

답하게 산다는 것 자체도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본질만

큼은 스스로 읽고 깨울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양이 종교를 만들어 내고, 동양이 '규율과 가치' 를 창조해낸 이유가 무엇이던가?  그것은 그

야말로 인간이 그 스스로의 존귀함을 깨닫고 또 지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단련

하라.  감내함으로서 찾아오는 가치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라, 그리고스스로 존귀한 존재로 끌어

올려라... 나는 이렇게 채근담의 가치를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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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인간을 말하다 - 권력에 지배당한 권력자들의 이야기
리정 지음, 강란.유주안 옮김 / 제3의공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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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권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에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는 권력을 '무섭다' 라고 생각하

고는 있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그 부와 권력을 (탐욕스럽게) 갈망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

다.  이렇게 나는 많은 모순을 지닌 존재이다.  그러나 그 모순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것이

기도 하다.  애초에 권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스럽게 부를 불러오게 함은 물론이고, 나

개인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것을 보장하게 하는 크나 큰 '힘'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세상을 살면서 '내 마음대로 살아보자는' 꿈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리고 만약 주어진다면 그 '권력'을 거부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에 사람들은 말한다.  

권력은 달콤하다고, 그리고 한번 가지면 다시는 내려놓을 수 없다고... 그런데 어째서 나는 그

권력의 존재를 두려워 하는것일까?  


아마도 그것에는 과거의 교훈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권력을 갈

망하고, 권력을 얻은 사람들의 말로가 어떠했는가?    과거 현명하고 어진 존재조차도 타락시

킨 가치가 바로 '권력'이였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그 많은 위인들 또한 권력이라는 가

치 아래 많은 희생을 치루며, 이른바 피의 역사를 쓰게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인간은 보다

조심스럽게 권력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넣었다 해서, 기뻐하거나, 마음

대로 휘둘러서는 더더욱 안될것이다.


애초에 이 책이 지어진 이유도 그런것이 아니겠는가?   명나라의 그 오랜 역사 속에서, 군주,

신하, 장군에 이르는 그 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이름아래 몰락했다.    그들은 나태해졌고, 소심

해졌으며, 반대로 인간의 상식으론 도처히 이해 할 수 없는 광기의모습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렇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와, 힘의 논리 속에서 변화했다.   때문에 그 후손

이자,같은 본질의 '가치'를 추구하는 후배로서의 '나'는 이 책을 통하여 경고와 경계의 메시지

를 보다 분명하게 배우고 습득하는 시간을 가진다. 


물론 오늘날의 '나'가 얼마만큼의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크고 작음

과는 상관없이 사람은 저마다의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인에게 크고 작은 영향

력을 행사한다.   때문에 사회적 동물인 '나'는 그것에 의하여 어떤사람으로 변화될까?  하는 결

과를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이에 이 책은 멘토로서 유용하다.   그리고 내용으로서도 배울것

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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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81자 바라밀 - 천부경에 숨겨진 천문학의 비밀
박용숙 지음 / 소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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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책을 완독한 이후에도 '완벽히 이 책을 이해한다는 것' 은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책

속의 이야기는 지금껏 쌓아온 역사적 개념과,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

면, 고대 샤먼의 존재와 그 근본은 '천문학'에 기초한다.  그리고 그 고도로 추구된 '지식'은 어

떠한 특정한 문명에 속한 것이 아닌, 인류 모두가 공유하는 지식이였으며, 다만 후손인 우리들

이 전승과 기록을 소홀히 해 알아보지 못할 뿐 이였다. 라고 정리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상식적으로 고대시대 천문학과 수학의 선구자는 '수메르인'이

였다.     때문에 고대문명이라고 해서, 미개한 농경문화에 머무른 것이 아닌,현대에 버금가는

놀라운 지식을 축적했다는 것은 이미 사실로 판명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지식을 온 문

명에 전파되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에 있다.


나는 '천부경'의 의미와 존재를 잘 모른다.  그러나 책은 천부경이 종교적인 '경서'인 동시에,

천문학적 가치를 담은 천문서이기도 하다.  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행하였던

샤머니즘 속 우주관은 매우 놀라울 정도로 고도화된 '하늘의 이치'가 녹아있다. 라고 볼 수 있

는 여지가 있다.   또 '저자의 해석이 정확하다면' 분명 천부경은 고대 수메르의 가치와 동등하

다. 천부경은 우주의 이치를 말하며, 지동설의 가치를 표현했고, 우주의 숫자를 표현해 보다 정

밀한 천체의 그림을 표현하기도 한다.  바로 그렇기에 이들의 가치는 단순한 인간의 윤회와 구

제만을 말하는 인간만의 종교가 아니다.    정리하자면 인간을 우주와 같이 놓았던 고대의 인

식, 상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다.  '과연 천부경의 가치는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물론 저

자 또한 '천부경'이 놀라운 지식의 '근본'이라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단군왕검'

과 함께 한 민족을 형성하는데 있어, 하나의 '대들보'가 되었다는 것 만은 분명히 주장하는 바

가 크다.      여담이지만, 다른이의 글을 보면, 천부경와 환단고기는 상고시대 '한민족'의 이해

에 있어서, 큰 역활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있어 받아들여지는 '환단고기'와 '천

부경'은 그 설득력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

일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천부경 등의 연구는 어떻게 나아가는 것인가? 에 대해서는 저자 스

스로의 관심이 더 필요할 것이다.    어디가 사실이고, 또 잘못 이해되었는가... 아직 그 결정을

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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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현대사 - 시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웃게 한다
김영주 지음 / 웨일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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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좋은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사회에 있어서도 웃음은 넘치면 넘

칠 수록 좋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 웃는가?    아쉽게도 일상생활 속에서 '웃음'을 얻어내는

것은 상상외로 힘이든다.    그도 그럴것이 '세상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은 곳' 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웃음을 유발하는 사람'이 존재했다.  이 책이 처음 언급하는 '일제시대'

에도 존재했고,  오늘날 '주말의 안방을 책임지는' 개그맨들도 그들과 같은 부류라 할 만하

다.     바로 그렇기에 이 책은 표현한다.   웃음을 주는 사람들의 과거와 오늘... 과연 그 무엇

이 변화하고, 또 사랑을 받고 있는가?     


각설하고 이 책은 분명 '웃음의 근.현대사' 라고도 할 수 있지만 때론 '방송의 역사' 라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물론 나름 '방송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저자에게 있어서도 이 주제는

그 나름의 애정이 남다르리라 생각되지만, 일반적으로 '라디오' 와 '텔레비전이 가져온 '변화'

또한 '웃음의 역사'와 함께하기에, 애초에 이 둘은 수레바퀴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것이

라 이해해도 좋을 것이라는 감상도 든다.


실제로 '나' 또한 일상이 아닌 '방송'을 통하여 웃는 일이 많았다.   또한 당시 기억하는 '쇼 비

디오 자키'부터 오늘날 '개그콘서트' 에 이르기까지, 온 가족을 TV앞까지 모이게 한 그 '힘'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웃음을 만들고, 표현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 웃음의 현대사는, 비록 그 시대의 거리감을 느끼기는 하나, '오늘'을 살아가는 '어른'이라

면, 무리없이 공감하고 또 그리움을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를 보면서 웃었다.   나의 할아버지가 '자니 윤'의 토크쇼를 보고 웃었다

면, 나의 아버지는 최향락이나, 심형래 등의 꽁트를 보면서 웃고, 지금의 나는 강호동이나, 유

재석 등의 버라이어티를 보면서 웃는다.    그렇다.  비록 시대에 있어,형태는 달라졌어도, 그

본질은 같다.    때문에 미래 또한 쉽게 상상 할 수 있다.   '형태는 변할지라도 웃음은 변치 않

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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