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반호 현대지성 클래식 12
월터 스콧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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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오랜 옛날, 영국인들은 존 왕의 폭정에 신음하며 사자심왕의 귀환만을 기다린다... 


이에 좀 나이가 있으신분은 위의 '설정'이 상당히 익숙하게 다가 올수 있겠다.   실제로 나 또

한 이와 같은 내용의 동화, 소설, 만화, 영화와 같은 다양한 컨텐츠를 접하며 자라왔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로빈후드의 배경 또한 바로 이 시대가 아니던가?  과거 3차십자군을 이끌로 귀

환하는 리처드왕이 오스트리아 왕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된 이후,   결국 잉글랜드의 왕권을 차

지한 존 왕은 결국 수 많은 백성들을 고달프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작게는 잉글랜드의 한 역사를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결국 후대의

많은 작가들의 상상력이 더해지자, 소위 전세계가 사랑하는? 하나의 판타지가 탄생하게 되

었다.    


'언제나 정의는 바로선다'


이 교훈을 싫어할 위인이 어디있을까?    결국 이 아이반호도 최종장에 이르러서는 리처드의 귀

환을 통하여 '하나된 잉글랜드'라는 가치를 내보이고 있다.    허나 그 주장을 떠나, 좀더 세세

한 내용을 즐기다 보면, 진정 이 소설의 매력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그 매력엔 무엇이 있을

까?    아마도 그것은 오늘날까지 상식으로 자리잡은 '기사'의 모습과 '관습'에 대하여,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이 소설이 부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현대인이 이해하고 있는 '기사도'가 널리 퍼진 시기 또한 바로 이 소설속 시대와 겹친

다.   명예를 목숨처럼 아끼는 귀족,그리고 각각의 계층간에 공유되고 있는 보다 독특하고, 기

묘한 예법들, 사회에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하여 실행하는 가장 격렬한 시합에 이르기까

지,  그야말로 아이반호의 세계는 현대인의 상식에 걸맞는 중세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그것이 역사를 초월하는 '가상의 가치'가 아님을 이해하자,   비록 역사와 많은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들 모두가그려내는 가치는 그야말로 '기사도의 과도기'를 상징한

다.    주인공 아이반호가 들여다본 '잉글랜드의 모습'이 어떠한가?  이에 영국은 존왕과 리처

드 각각의 왕을 섬기는 가치가 충돌하고, 노르만족과 섹슨족이 서로 대립하며, 더 나아가 나름 

외세에 해당하는 성전기사단의 등장으로 인하여, 보다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모습을 보인다. 


이때 아이반호는 색슨의 기사, 리처드의 신하임을 마음에 새기며,  소위 기사에 걸맞는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해준다. 물론 나 스스로는 이 이야기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지만  이와는

달리, 생각하기에 따라, 이 오랜 역사와 상식의 격차가 가져오는 혼란을 과연 현대인들이 잘 받

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드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표적으로 아이반호와

레베카의 관계를 들여다보자,  레베카는 유대인의 자손이며, 중세시대 가장 핍박받는 계층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이반호를 사랑하지만 결국 모든것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공

주님'을 축복하며, 이 이야기에서 퇴장하는 역활에 머문다.


그러나 레베카의 존재는 분명 소설의 구심점이라 정의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크다.    그렇기

에 '역활에 따른 보상'이 자연적인 현대인의 감성으로 들여다 보았을때,  레베카의 운명은 단순

한 아쉬움을 넘어, 비극적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때문에 나는 생각한다.   한 여인의 행

복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기사도'의 존재가 그 얼마나 비극적인지,   그리고 과도기를 넘허 황

혼에 다가가는 '기사도'가 결국 중세와 현대의 인식차를 벌려놓았는지...     이처럼 아이반호

는 중세의 낭만을 맛보는 소설에 불과 할 뿐, 교훈적으로 배워야 할 가치는 그리 쉽게 발견되

지 않는다. 


때문에 이미 위에서 언급했지만, 이것은 작가가 상상한 가장 중세다운 판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흑기사, 로빈후드, 리처드 ,아이반호... 이 매력넘치는 위인들이 이 한권의 책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며, 심지어는 정의로운 행동을 위하여, 목숨을 건 공성전을 벌이기도

한다... 어떠한가?   그것은 마치 중세판 마블 히어로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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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빵집
김혜연 지음 / 비룡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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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생이 가게와 같다면,  과연 독자들은 어떠한 가게를 차리고 싶은가?    이에 아마도 대다

수의 사람들은 대박집을 먼저 떠올리지 않나 싶다.   번듯한 외관에, 최신식 설비에, 넓은 주차

장을 자랑하면서, 수많은 손님들이 돈을 뿌리고 가는... 그야말로 가게 본연의 역활을 다하는

알찬 가게를 가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점차 꿈과 현실의

차이를 느끼고, 나름 어느것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된다.     오로지 자신의 것을 소중히 다듬어

가면서, 제발 나에게만은 한파가 닥치치 않기를 절실히 빌며 가게를 지켜 나아가는 것.    물론

이는 생각하기에 따라, 조금 우울해지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바로 그것이 나름 평범한 인생

을 산다는 것인데 말이다.


바로 그렇기에 한파의 존재는 그 너무나도 두려운 것이다.    치킨집에 있어서 조류독감이 얼마

나 무서운 것일지? 그것은 아마도 겪어본 업자만이 아는 최악의 이벤트가 아닌가.  허나 무심하

게도 이 책의 가게 또한 인생 최악의 이벤트를 맞이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벤트가 소위 식

중독이나, 독감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    그야말로 가게 뿐 만이 아닌 그에 속한 인

간의 모든것을 바꿀만한 가장 큰 비극의 존재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바다속에 가라앉은 생명


그것만으로도 이미 눈치를 챈 사람들이 많을것이라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낡은 골목길에

세워진 '빵집'  그러나 낡고 허름하기에 존재 할 수 있는 이웃간의 인연과 인간미가 '침몰'로 인

하여 가장 큰 아픔의 원인으로 찾아온다.  그렇기에 주인공에 해당하는 빵집 주인 뿐만이 아니

라, 그 주변의 이웃과 친구 그 모두가 커다란 상실감과 슬픔을 맛본다.

 

어렵지만 온전히 살아 갈 수 있을것이라는 믿음, 바로 그 믿음을 바다가 앗아갔다.  


바로 그이유로 그들은 자신을 삶을 온전히 살 수 없다.    지금 느끼는 감정, 현실적인 부담, 위

기와 같이 극복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갑자기 찾아온 비극은 결국 이들 모두

를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허나 바로 이때,  저자는따끈하게 구워진 하나의 빵을 통

해서,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용기를 주려 노력한다. 비록 언제 망해도 이

상하지 않는 낡은 빵집이지만,  묵묵히 그 속에서 빵을 구워내는 주인공은 주변 모든 사람들에

게 세상의 달콤함을 맛보게 한다.     비록 그 사소한 것 하나가 상대의 모든 상처를 보듬어 주

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지는 않을까?


이에 다른 소설 '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의 주인공들은 그 소소한 행복을 맛본다.    한 가정의

아들, 또는 남편을 떠나보낸 두사람에게 잠시 한 순간이나마 미소를 선사했던 것이 바로 빵

이다.     갓 구워낸 빵의 온기와 냄새...  그야말로 세상의온기와 향에 취한 두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좋은것이 있구나' 하는 나름의 위로를 받는다.


나의 감상에 따르면 아마도 이 소설의 빵도 그와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않나 생각된다.    분

명 등장인물들은 각각 극복하기 어려울만큼 삶과 감정에 짓눌려 있다.   바로 이때 가장 원초적

인 것, 가장 당연한 것이 때로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약이 될 수도 있을것이다.   상실된 무언가

를 잠시나마 잊게해줄 위로의 약...  과연 그 약의 존재를 이 책을 통해서 발견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모두가 그의 처방을 받고, 또 다른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이때 빵집주인과 같이 해보자,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슬프다고 손을 놓지말자,   언제나

처럼 빵을 구워내고, 그 맛을 슬픔을 느끼는 이웃과 나누어보자,   그리고 함께 웃어보자...  아

니 그저 함께 울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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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클래식 호러 4
메리 셸리 원작, 세이비어 피로타 지음, 프랑코 리볼리 그림, 김선희 옮김 / 조선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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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프랑켄슈타인은 나름 유명한 공포소설이자, 고전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면 이 소설은 당시 과거의 사회분위기 뿐 만이 아니라, 초기 생명윤리 또는 생물 모

두가 느끼는 '감정'의 존재에 대하여 보다 철학적으로접근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것을 알

수 있을것이다.


19세기, 과거 과학만능주의를 증명하듯이 인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스스로 한 생명을 창조하

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사는 자신의 창조물을 실패작이라 인식하며, 결사코 외

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흔히독자들은 그 창조물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이해하

지만, 실제 작품속에서의 그는 그저 끔찍한 '괴물'일 뿐 세상에서 그 무엇하나 부여받지 못한다.


그렇다.  이른바 신의 섭리에서 벗어난 생명은 마땅히 부여받아야 할 많은것을 얻지 못한

다.     때문에 괴물에게는 그저 분노만이 싹트며, 결국 그 책임을 박사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때 독자들은 그 분노속에 숨겨져 있는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것이 무엇인가? 에 대

한 나름의 해답을 발견 할 수 있다.


분명히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분노했다.    때문에 그에게 해를 끼치기 보다는 그의 주

변의 소중한 것을 상실시킴으로서, 자신과 같은 철저한 고독함을 맛보게 하려고 한다.   허나

그럼에도 괴물은 나름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비록 자신을 버렸지만, 그는 부모와 같고, 또

그 스스로가 느끼는 괴로운 감정을 해소시켜줄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박사의 존재이니까..

. 그렇기에 그가 내민 화해의 조건은 바로 '사랑의 충족'이다.    


괴물은 반려자를 원한다.   그는 그저 자신과 함께 살아갈 다른 괴물을 박사에게 주문한다.   

그러나 박사는 이 제안을 거절한 뿐더러 그저 그에게 사라지라 주문했다.     마치 어린아이 같

지 않은가?  그는 애써 때를 써 얻어낸 장난감에 쉽게 질려버린 아이와 같다.     먼저 오만이든

호기심이든 결국 그는 괴물을 창조했다.   때문에 그는 괴물을 맞이하며, 나름의 해결책을 내놔

야 마땅하다.    예를들어 그를 받아들이거나, 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괴물을 제거하려는 노

력을 해야했지만,  박사는 그저 눈앞의 끔찍한 존재가 그저 사라져주기를 원한다.    이에 나는

괴물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그야말로 조물주에게도 버림받은 생명이 아닌가?   나름 서양세

계에서의 최고의 가치인 '구원'이 이 괴물에게는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분노했고, 박사를 끝임없이 몰아 붙인다.


그런데 그런 그들 사이에 눈물이 흘려졌다.    박사의 최후를 바라보면서, 괴물은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다.    거의 반평생을 원수처럼 여기며 쫒고 쫒기던 나날... 그런데 어째서 이 두 생명

체 사이에 감정이 형성될 수 있을까?    허나 그것이바로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아무

리 그 모습이 흉측하고 이상해도, 결국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그토록 염원하고, 창조하

려 했던 인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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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우의 전설 클래식 호러 3
세이비어 피로타 지음, 제이슨 주타 그림, 김선희 옮김, 워싱턴 어빙 / 조선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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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이때 누군가는 옛 문화와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주장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대로 '도대체 이건 무엇을 표

현하고 싶은건가?' 하는 의문만이 쌓이는 고전 또한 상당히 많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를 지

루하다, 어렵다 라고 말하며 꺼리게 되는데,   이에 나에게있어 바로 이 책이 내가 꺼리는 책

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 책은 하나의 동화이다.   그리고 출판사 역시,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나 청소년의 자아

발달을 위하여 이 시리즈를 계획하고 출판했다 당당히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

게 있어서, 이것은 무서운 이야기도 아니요,교육적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라는 감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이 작품을 접하며 들었던 가장 첫 감상은 그 마을사람들이 보여준 무지함에 대

한 허탈감과, CSI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냉정한 보안관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라는 나름의 정

의실현 욕구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의 주제인 '머리없는 기사' 는 전설을 넘

어, 이야기속 주인공의 목숨을 앗아가는 존재로 그려진다.그러나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미

독자들은 어째서 '듀라한'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선생'을 습격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게 된다.


그야말로 듀라한의 존재로 큰 이익을 본 사람... 즉 누군가의 계획으로 인하여, 선생은 살해를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때문에 현대인의 상식에서 보면 이는 이미 '오컬트' 의 영역을 벗어

났으나,  이어서 등장하는 다른 주변인물들은 이 사건을 마주하며, 비극적이지만 어쩔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이라 정의하며, 결국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결론을 내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나는 답답했다.   범인이 뻔히 보이는데... 그리고 그 범인이 점점 원하는 그대로 모든것

을 얻어가고 있는데, 독자는 그것을 그저 바라만보고 있어야 한다.    아!  그야말로 고구마 한상

자를 씹어먹는 듯한 답답함이다.   허나 그것은 '어른'이 된 나의 시선일 뿐!    '혹시 어린 아이

들은 다른 감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문득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궁금해진다. 


아쉽게도 나는 휼륭한 솔로부대의 일원으로서, 이를 읽어줄 아이가 없다.    그러나 정말로 듣

고 싶다.   듀라한의 존재 그리고 그에게 피해를 입은 선량한 선생님,  그리고 그를 추억하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마을사람들, 그리고 범인!이렇게 책을 덮은후 한번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거 재미있었니?"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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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선 - 인간의 역사 아우또노미아총서 60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 갈무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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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있어, 소위 대항해시대는 모험과 낭만, 그리고 무한한 호기심과 용기 등과 같이 상당

히 긍정적인 이미지로 통한다.     그러나 점차 유럽사회가 항로개척의 길을 선택하면서부터 가

장 활발하고, 또 큰 이익을 낸 장사는 의외로 후추나 향신료가 아닌 면화, 설탕, 노예 등이 대표

적이였으며, 특히 결과적으로 이것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종과 민족을 아우르는 가장 심각

한 '차별'과 '상식'을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범 인류적 '범죄'

로 생각해도 그리 큰 무리가 없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나 후세의 인식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이미 노예무역은 '역사'의 사실로서 불변의 위치를 점

한다.   때문에 저자 역시도 중.근대의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하여 노예를 소위 상품으로 표현

할 수밖에 없을 뿐 만이 아니라, 이 책의 제목과 같이 노예선을 주제로 한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의의를 설명하면서, 상당히 하드코어한 묘사를 통해 그 심각성을 드러내려 했다.


그렇기에 노예선은 이른바 '노예무역'이라는 소프트웨어와 함께 성장한 '하드웨어' 라고 이해

하면 좋을것이다.   그 증거로 노예무역이 '인기'를 얻음으로서, 당연히 국가와 개인등은 '전문

화' '거대화' 등을 통해 보다 큰 규모의 시장을 형성함과 동시에, '노예를 가장 많이 실을 수 있

는' 선박을 개발하고 건조하는데도 큰 발전을 이룬다. 


이에 쉽게 생각하면 '보통 화물선'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아?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

지만,  이는 어쩌면 가장중요한 것을 간과 한 것이다.   


실제로 노예선 선장이 가장 가지고 싶어한 '선박'은 그저 보통 화물선이 아니다.   먼저 포획한

노예를 많이 실어야 하고,또 보다 빠른 속도를 지녀야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로잡

은 노예들의 저항의지를 꺾는 난공불락의 보안시설과, 유능한 선원들, 그리고 보다 높은 안

정성과 내구성이 보장되어야만 진정 좋은 노예선이라 할 만하다.    그렇기에 노예선은 아마 해

적 다음으로 잔인한 분위기를 지닌 선박이였을 것이다.  이에 기록을 보면, 유럽인들은 '아프리

카 노예'를 거래하면서, 먼저 그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한다.


바로 이때 나는 이 책이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그것은 바로 노예들이 순종적으로 팔려나가는 상품이 아닌 인간임을 다시끔 재확인

하는 것이다.*


책속의 흑인들은 정말 격렬하게 저항한다.   가장 쉽게 생각 할 수 있는 탈출부터 시작해, 선박

의 탈취, 심지어는 무게중심을 바꾸어 선박을 뒤집거나, 화악을 폭파시켜 동반자살을 꾀한 사

건에 이르기까지 그 '저항사'는 무궁무진하다.  그렇기에 선주들은 정말로 할 수 있는것을 다

한다.   구속, 감금, 성폭행, 고문, 협상, 살해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인간의 의지를

꺾게 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책표지에 드러난 '설계도' 의 진정한 의의는 가장 효과적인 '적재효율'을 상징하

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인간성을 가장 철저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 방법을 상징하는 것이라 이

해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이 많은 희생을 발판삼아 유럽사회는 점차 노예매매에 대한 반대의 의견을 쏟아

낸다.   학자, 정치인 일반인, 그리고 일부 상인들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간 '인도주의'   비록

너무 늦었고, 또 뻔뻔하다 생각되는 일면도 있지만, 그나마 그 인식이 떠오름으로 해서, 오늘날

의 상식이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혹시 유럽사회가 그 의의를 통하여 '면죄부'를 얻으려 한

다면 독자들은 이에 강력이 비난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이미 내 스스로가 느낀 것이지만, 많

은 사람들은 지금껏 노예들의 불행을 너무 작게 생각하지 않았나 한다. 


거대한 힘앞에 '어쩔 수없이' 굴복하고 유린당한 흑인들


바로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예매매의 상식이다.   그러나 '같이 유린당하고

강점당한' 민족의 후예로서 이러한 단편적인 상식은 그야말로 독과 같은 것이다.   어째서 '나'

는 이러한 상식과는 반대되는 개념을 떠올리지 못했는가?  그리고 이세상의 많은 지식인들 포

함한 일반사람들에게 있어서, '흑인노예 저항사' 는 그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고 있

는가?   이렇게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그에 대한 정말 깊은 질문과 함께 해답을 발견하는 노력

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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