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전 생활백서
듀자미 지음 / 렛츠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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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드는 생각이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운전'에 대하여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초보시절의 두려움과 떨림을 극복하며 점차 '베테랑'이 되어 가는 것은 당연한 것

이지만, 그래도 그 베테랑이라는 것이 수백킬로를 내달리는 철덩어리를 마치 야생마 다루듯 해

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 나 또한 오랜 운전생활을 하면서, 나름 오만

해졌다고 느낀다.    이때 나의 선배들은 "한번 박아보면 정신이 번쩍든다" 말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소중한 재산을 깨달음을 위해 꼬라박을수는 없는일이 아닌가?


 

그렇기에 이 책은 나에게 있어 나름 초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이 책에 수록된 많은 정보들은 과거 시험을 치루며 마주한 기본적인 것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기본이야말로 정말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속도를 지키고, 법을 준수하며, 끝임없

이 주의하고, 또 차량의 컨디션을 체크해야 한다는 것은 운전자로서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

인 가치라 할 수 있을것이다.    이에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들은 어떠한 자신감으로 운전

에 그리고 차량에 익숙하다 자만하는가?     이에 내 개인적인 기억에 따르면, 정말로 위험하고

또 부끄러운 일 뿐이다.   


이에 '나'는 시험을 통과해 운전면허를 받음으로 해서, 어느 특권을 손에 넣은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과거 뚜벅이 시절과는 달리 하나의 무거운 짐을 하나 얻어냈을 뿐일지도 모르

겠다.     때문에 모범적인 운전자 (차주)라면 이에 대한 공부를 일회성으로 끝마치지 않는 행동

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내다버린 문제집을 다시 사 공부하는 것도 생각에 따라,

시간이 많이 아깝다.     이때!  한번 이 책을 마주하면 어떨까?    비록 워낙 단순한 정보들로 인

해서 조금 식상하다 생각될 수 있지만, 그래도 한번쯤 자신을 진단하는데 있어서, 핸드북만

큼 간단하고, 또 실용적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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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 - 바람과 빛과 모래의 고향
김규만 지음 / 푸른영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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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사막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그것을 극복하

기 위해서 오랜시간 저마다의 노력을 기울여왔고, 또 그 가운데서 활용할 가능성을 발견하기

도 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보면 사막속에서 성장한 인간들은 '뛰어난 자질'을 지닌 사람

이 많다.    예를들면 동.서양의 교역을 상징하는 카라반과 같은 소수민족들이나, 사막을 방벽

으로 찬란한 문명을 건설했던 옛 이집트제국이나, 오스만 투르크의 문명도 말 그대로 사막의

환경을 따르고, 또 이용한 가장 적절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많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사막은 너무나도 낮설다.   그도 그럴것이 현실적으

로 모든 (외국으로 가는)육로가 막혀있고, 또 오랜시간을 푸르른 산과 평지에서 보내는데 익숙

해져 버렸기에, 흔히 사막민족이 말하는 '모래의 바다' 또는 메마름 속에서의 축복을 그리 쉽

게 이해하지 못함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때문에 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사막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기행'으로서 받아들여진다.   그

는 사막을 몸소 여행한사람으로서, 그로 인하여 깨달은 '인문학적 감상'을 이 책에 써 내려가

려 노력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노력에 비해서, 책속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두서없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 독자의 입장에서는 마치 잡동사니를 바라보는 것 같은 거부감이

든다.


실제로 나는 처음 내용을 접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과연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가?'    직접 사막을 체험함으로서 깨달은 사막의 철학을 들려줄 것인가?   아니면 사막을 통하

여 삶을 이어간 많은 문명의 역사를 표현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오늘날 남아있는 사막속의

삶을 독자들에게 드러낼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오늘날 이슬람문제와, 내전, 그리고 초강대국

의 견제와 폭력에 무력한 사막민족들의 눈물을 대변하는 그만의 정의론을 설파할 것인가???


이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에는 위의 내용들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그것도 잡탕과 같

이 어지러이 섞여있는 체로 말이다.    때문에 이 책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

한 책은 되지 못한다.   물론 그 하나하나 어떠한 말을 하고싶은지는 알겠지만, 전체적으로 "작

가님은 뭘 말하고 싶은겁니까?"  라고 되묻게 되는 책...

그야말로 이 책은 사막에 대한 여러가지 '로망' 과 '이념'이 표현된 하나의 혼돈 그 자체다.


물론 사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문명, 가치, 사고방식, 종교! 바로 이 모든것에 대한 저자의 시

선은 나 나름대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생각한다.   그러나 굳이 드러내지는 않겠지만, 

오늘날 힘의 논리를 비판하며, 어느 특정 '사건'과 '현상'을 옹호한 부분에 있어서는 그리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는 감상이다.   혹 이를 정의롭지 못하다 비판한다해도 어쩔 수 없다.   


현실적으로 보았을때, 나에게 있어 역시 사막은 먼 낮선 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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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계획
신세연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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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먹고, 못입고... 그리고 아이를 키울여력이 없어 남의집 대문앞에 버릴수 밖에 없었던 사연

까지.   이처럼 한때 가난했던 대한민국 속의 시대를 바라보면,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일이 많

이 일어났다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나의 어린시절에는 이러한 사연들을 그리고,

또 표현한 대중작품들이 많았고, 또 이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도 나름 획일적인 교육을 받

기도 했다.   '노력하자' '아끼자' 그리고 '잘살자'   이처럼 단순하고도 명확한 구호를 외치며

어른들은 달려왔고, 또 결국 오늘날의 풍요로운 사회모습을 만들어 냈지만, 이와는 반대로,  저

자는 시대가 이 소설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자 또한 드리웠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주문

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속의 부모는 불운하다.   고아로서 자라나 지칭 공순이와 결혼한 매우 서민적인 인

생이 드러나지만, 결국 이들은 하나의 어린자식을 남긴체 시대속 '무관심'과 '안전불감증'에 희

생된다.    그렇기에 독자로서의 '나'는 가장 인간으로서마땅히 누려야 하는 '행복추구' 와 '

권리'가 상실된  당시의 시대가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 뿐인가?  비록 이 전체적인내용

이 나름 '사회파'가 아니라 해도, 그 살아남은 아이가 마주해야 했던 개인사조차도 '남 일이 아

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나름의 메시지 또한 발견한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복수'를 다짐한다.   그러나 그의 대상은 불분명한 사회나 운명같은 것이

아닌, 매우 명확한 목표가 있다. 때문에 그는 성장하면서도 대상을 바라 볼 수 있었고, 또 접근

할 수 있었으며, 사랑과 연민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이용하는 비정한 방법을 서슴없이 사용

한다.    그러나 그 목표를 향한 비정한 삶을 만들어낸 원인을 따지면, 결국 돌고돌아 '시대'

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개인적인 어려움과, 한계를 뛰어넘어 남부럽지 않은 '성공'

을 이루어 낸 '아이'의 반전신화를 바라보면서도, 결국 그 반대에 해당하는 평생 치료받을 수

없는 '한' 또한 바라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아빠, 다음에는 내 아들로 태어나. 그래서 아빠가 못 누리고 산 거 내가 다 해줄게"


이처럼 위의 이미지가 상징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주인공이 죽은 아버지를 추억하며 입에

올린 이 말은 그야말로 과거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과거 그들은 젊

음을 의무와 노동으로 소비하고, 흔히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소모품으로 취급되었다.   그렇기

에 이들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또 한계에 부딛쳐 절망을 맛보았을때  결국 그들에게 손

을 내민 것은 안쓰러움과 자애의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처절한 상황'을 이용해 필요한 욕구

를 채우려는 잔인한 하이에나 였다.


때문에 주인공의 '복수의 대상'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무력하게 하고, 또 이용한 힘있는 자

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제목과 같이 처절한 선택을 한 복수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허

나 독자로서 나는 이를 단순히 사람과 사람사이의 원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 그럴

수 밖에 없었고, 또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준, 과거 대한민국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바라보며 오늘날의 후손들은 가치를 둘로 나뉘어 격렬하

게 반목한다.  


물론 그에 대한 절대적인 해답은 없다.  때문에 독자들 스스로가 이를 시대의 성장통이였다 변

호한다면? 그리고 반성을 통한 성숙함을 이끌어 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였다. 생각한

다면?  이에 나로서는 그다지 반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단 한가지, 그렇다면 이를 위하여 생

겨난 '한'이 만들어낸 비극도 어쩔수 없다 말할 수 있을지?   한번 이 정도 쯤은 되물어보고 싶

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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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정상의 가면을 쓴 사람들 - 뇌과학이 밝혀낸 당신 주위의 사이코패스
나카노 노부코 지음, 박진희 옮김 / 호메로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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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뉴스를 통하여 접하게 되는 '강력범죄'들을 보면, 과연 '사람으로서 이러한 행위를 저지

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등

장하면 왠지 모르게 그 의문은 이해로 급선회하며, 또한 그 특정한 사람을 기피하고 싶다는 자

기방어적인 마음가짐을 품게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마음을 품는다고 해도 사전에 사이코패스를 알아보고 피할 수는 없는 일

이다.   옛말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것이 아니

다!   게다가 과연 '나'는 사이코패스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에 흔히 생각되는 사이

코패스의 이미지는 짤막한 정보를 흘리는 언론이나, 여느 가상의 오락.영화에서 접하게 되

는 것... 그야말로 자신의 자아를 가면속에 숨길줄 아는 한니발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특징이 현실의 사이코패스를 특정하는 대표적인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처럼

책은 많은 질문들을 던지는 동시에, 그 해답을 '뇌과학' 이라는 특정 전문지식을 통하여 바라보

려는 시도를 한다.


그렇기에 독자는 제일먼저 사이코패스란 단순한 '미친사람'이 아니라는 (책의)메시지를 받아들

여야만 한다.  사이코패스는 일종의 공감능력이 결여된 독선적인 인물이며, 물론 그 독선이 '

범죄'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순기능, 즉 개인의 능력향상과 더불어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

는 큰 장점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이코패스들의 직업들을 보면, 의외로 인

정받는 '전문직'이나 '고위직'이 상당하다.    그야말로 개인의 영역에 있어서 사이코패스

의특징은 나름 축복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과거 어떤 작품에서 '사이코패스가 현대사회에서 겪는 어느 가치충돌'에 대한 이야

기를 다루었다. 과거 노부나가, 알렉산더와 같이 오만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실질적인 이익

보다는 감각적인 몽상가의 길을 걸었던 많은 이들은 어쩌면 사이코패스가 아니였을까?   그렇

다면 어지러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지배하고, 죽이며 문명을 이끌었던 사이코패스

들의 존재는 절대악이 아니라, 필요악이 될 수도 있다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이 책

은 읽으면 읽을수록 수많은 질문이 생겨난다.    사이코패스는 단순한 뇌구조의 차이로 보여지

는 하나의 성격의 것이 아닐까?   오늘날 강력한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가 그 다를 뿐인

사이코패스가 살 수 없는 세상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에 대한 정답은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는 않다.   그리고 이 책 또한 많은 가능성을 이야

기할 뿐... 딱부러진 정의와 예방 그리고 근절의 메시지를 전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독자

인 '나'는 이를 통하여 딱하나의 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사이코패스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

닌, 본래 타고난 기질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이는 본래 근절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세상에서 두가지 모습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 세상의 법칙속에서 살거나, 아니면 이를 무시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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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엄마의 태교법 - '기질 바른' 아이를 낳기 위한 500년의 역사
정해은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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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축하하는 것. 

이처럼 위와 같은 가치는 대부분의 가족에게 있어서 당연하게 여겨져야 할 가치라 여겨진

다.    그렇기에 먼 옛날의 조선시대에 있어서도 임신(회임)은 단순한 생명을 품었다라는 것에

서 더 나아가, 집안의 핏줄을 이어준다는 기대를 현실화 한다는 면에 있어서 분명 반가운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명이 태어나며 마주하는 여느 '조건'들은 분명 현대인이 볼때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로 이 태교를 함에 있어서 보여지는 극단적인 남아선호

사상이 그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단순히 회임을 한 여인이 생명을 품으며 피

해야 할 것, 그리고 좋은것만을 접할 것을 권하는 것은 지금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허나 그러

한 조건이 순전히 아들을 얻기 위하여 행하여지고, 또 더 나아가 성별을 뒤바꿀 수도 있을것이

라는 기대속에서 행하여 진 것이라면? 역시 이것은 당시 조선사회가 가진 한계를 분명하게 보

여주는 것이라도 정의 할 수 있다.


허나 그러한 것을 떠나서 순수하게 '태교'를 바라본다면 이 행위에 대한 가치가 대단히 기묘하

게 보이기도 한다.  물론 지금의 한국사회속에서 바라본다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겠지만, 보

다 세계적인 가치로 이를 바라보면, 분명 태교는 극동아시아 세계에서 보여지는 매우 특이한

행위로 비추어 질수도 있는 것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가르친다'


이처럼 어떻게 보면 태교란 '비상식적이다' '기대심리가 아닐까?' '상당히 한국적?이다' 라는

다양한 정의가 가능한 행위로 비추어진다.  허나 현대의 태교는 그 많은 인식을 떠나, 오롯이

영재교육의 시작점이라는 목적의식을 지닌다.  그러나 본래 진실된 태교의 의미는 어떠한 것이

였을까?    이에 이 조선시대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때때로 감탄스러울 정도의 '의식'들이 드러

나  '나' (독자)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의미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부여한

다.


비록 조선시대의 태교라는 것이 산모에게 적지않은 부담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였다 할 지라

도!

결과적으로 그것을 감내하게 했던 '근본'만은 상당히 본받을만 하다.    과거 근대의 유전학적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던 세상에서,  더욱이 의학의 개념조차 완전치 않았던 세상속에서, 태교

는 조선시대의 완벽하지 않은 의학의 한 개념을 차지하여 왔다.   때문에 이들은 산모의

영양상태나, 스트레스와 같은 부분적인 의학적 접근과 더불어, 성리학적인 개념... 즉 수행에

따른 인간성의 형성과 같은 후천적인 변화에 대한 개념까지도 태교에 필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는 분명 근대 서구사회에 등장한 '우생학'보다도 더욱더 성숙하다.    단순하게 유

전적 기질이 결합함으로 인하여 우성,열성이 등장한다면?   이에 후천적인 교육등은 어떠한 방

향으로 흘러 갈 수 밖에 없는것인가?    이때 책 속의 해석은 다르다.  조선시대에서는 생명을

부여하는 본체의 영향력을 (단점 등을) 태아가 외부의 영향 (교육)을 통해 극복 할 수 있다 

믿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단순한 생명의 잉태를 뛰어넘어, 보다 더 앞선 개념을 새 생명

에게 부여하려 한다.   바로 그것이 태교의 본질이 아닐까?


부모는 아이를 위하여 바른 품행을 갈고닦는다.   그리고 사람이 근간이라 생각했던 당시의'

가치'를 끝임없이 학습하며,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흡수할 그 바탕을 만들어주려 했

다.    그렇기에 태교의 진짜 교육은 '효' 와 '예'였다.    비록 그것이 얼마만큼 (실질적인) 효과

가 있었는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조선의 태교는, 조선시대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그 시작점 전부터 '사람이 되는 준비

를 해야 하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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